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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독자기술로 생산하는 리판자동차의 '리판 520'.
100% 독자기술로 생산하는 리판자동차의 '리판 520'. ⓒ 모종혁

"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최대 경쟁자는 한국과 일본 업체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나아간다면 8~10년 이내에 중저가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거침이 없었다. 깡마른 체격에 고희를 바라보는 노구이지만, 젊은이보다 더 활력이 넘쳤다. 인밍산(尹明善·68) 리판그룹(力帆集團) 회장.

@BRI@그는 중국 붉은 자본가들 중에서도 신화적인 존재다. 1958년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반혁명 우파분자'로 몰린 인 회장은 22년간 강제수용소와 교도소 살이를 했다. 개혁개방정책이 시행되서야 출소한 그는 공장 노동자를 전전하다가 감옥에서 독학한 영어를 발판삼아 인기 대학 강사가 되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1992년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단돈 20만 위안(약 2400만원)으로 직원 9명과 오토바이 제조회사를 창업한 때가 인 회장의 나이 54세. 그 뒤 10년여 만에 그는 13개 계열사와 1만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리판그룹을 일구었다. 리판기계는 연간 100만대의 오토바이와 200만대의 엔진을 생산하는 중국 최대의 오토바이 제조업체.

지난 2003년 민간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정치협상회의(政協) 충칭시 부주석으로 발탁되었던 인 회장은 올해 또다른 업적을 이루었다. 중국만의 100% 독자기술로 만든 '리판(力帆) 520'을 중국과 러시아·나이지리아·알바니아 등 신흥시장에 출시한 것.

100% 독자기술로 생산한 '리판 520'

중국의 대표적인 붉은 자본가 인밍산 리판그룹 회장. 그는 독특한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붉은 자본가 인밍산 리판그룹 회장. 그는 독특한 인생 역정으로도 유명하다. ⓒ 모종혁

중국 충칭(重慶)시의 신시가지인 베이부신취(北部新區) 자동차단지(汽車園). 중국 제4위의 창안(長安)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기도 한 이 곳에 리판자동차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연간 15만 대의 완성차와 20만 대의 엔진을 생산하는 리판자동차의 공장단지를 들어서면 오른쪽의 물류센터 바로 옆에 한창 공사 중인 장소가 보인다. 바로 올해 시공하여 2009년 완공을 목표로 한 연간20만 대의 완성차 라인 공사 현장이다.

주요 생산공장의 왼쪽에는 연구개발(R&D)센터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기자가 들어선 공장 조립라인에는 수백명의 노동자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2003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든 리판자동차가 현재 생산하는 모델은 '리판 520' 1300cc와 1600cc 소형차. 이미 여러 종의 다양한 모델을 내놓은 치루이(奇瑞), 지리(吉利), 화천(華晨) 등 중국내 여타 토종 자동차 회사들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하지만 리판에게는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부러워하는 특별난 기록이 있다. 올해 브라질에 있던 크라이슬러의 캄포라르고 엔진공장을 통째로 사들였고 상하이 통지(同濟)대학과 산학협동으로 100% 독자기술의 '리판 520'을 생산한 것이다.

리판이 사들인 것은 캄포라르고 공장만이 아니다. 수십 가지의 특허와 20여 명의 핵심 기술자까지 인수받았다. '리판 520'을 개발하면서 리판은 191개의 독자기술을 전매특허로 전 세계에 등록했다.

새로운 자동차산업정책 '자주창신' '토종상표'

전세계 10여개국으로 수출할 차량 생산에 여념이 없는 리판자동차 생산 조립라인.
전세계 10여개국으로 수출할 차량 생산에 여념이 없는 리판자동차 생산 조립라인. ⓒ 모종혁

1986년 중국정부의 끈질긴 읍소에 독일 폭스바겐이 구형 산타나를 첫 생산한 이래 중국의 자동차산업 정책은 일관되게 내려왔다. 바로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 외국 자동차 회사에 중국 시장을 내주고 기술을 받는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20여 년 지속되어 오던 이 전략은 2004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자주창신(自主創新, 외국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기술로 혁신을 이룬다)'과 '토종상표(自主品牌, 중국산 토종 브랜드)'가 새로운 중국 자동차산업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듯, 2004년 6월 '자동차산업정책'이 공포되고 2005년에는 '차구성 특징과 자동차 수입부품 관리방법' '자동차 상표판매관리 실시방법' '자동차무역정책' '수입자동차의 진입과 세금정책' 등이 잇따라 실시됐다.

2005년 중국시장 자동차 판매업체
순위업체명판매량
(증가율)
순위업체명판매량
(증가율)
1第一汽車 (장춘)98.3 (9.5)6廣州汽車 (광저우)23.7 (13.2)
2上海汽車 (상하이)91.8 (23.7)7哈飛汽車 (하얼빈)23.0 (12.2)
3東風汽車 (우한)72.4 (11.0)8奇瑞汽車 (상하이)18.9 (118.5)
4長安汽車 (충칭)63.1 (1.7)9江淮汽車 (장시성)15.4 (63.1)
5北京汽車 (베이징)59.7 (10.5)10吉利汽車 (저장성)15.1 (56.5)
  자료원: 중국자동차공업협회, 한국무역협회 재참조
  주: 1) 증가율은 전해 대비임
 2) 순위 7, 8, 10위의 회사는 순수 독자기업임. 나머지 기업들은 외국기업과 합작한 회사들임.
ⓒ 성주영
지난 8월 17일에는 보시라이(薄熙來) 중국 상무부장이 "중국산 자동차 및 부품의 수출확대와 자체적인 특허권, 토종 브랜드의 자동차 수출을 촉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정부는 이 날 지린성 창춘(長春)·상하이·톈진(天津), 후베이성 우한(武漢)·충칭, 광둥성 샤먼(廈門), 안후이성 우후(蕪湖), 저장성 타이저우(臺州) 등 8개 도시를 '국가 자동차 및 부품 수출기지'로 선정했다. 또한 띠이(第一)·치루이 등 160개 자동차 회사를 '자동차 및 부품 수출기지 기업'으로 지정했다.

보 부장은 "중국의 자동차 수출 발전의 잠재력은 거대하지만 토종 브랜드가 없고 자신만의 특허권을 가진 제품이 적어 질과 이익이 높지 않다"면서 "중국 자동차공업의 전체적인 수준과 국제경쟁력을 높여 반드시 자동차공업 강국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선 개발도상국 장악, 후 선진국 진입"

중국 최대 오토바이 회사를 가지고 있는 리판은 기술 본위로 중국의 '혼다'를 꿈꾸고 있다.
중국 최대 오토바이 회사를 가지고 있는 리판은 기술 본위로 중국의 '혼다'를 꿈꾸고 있다. ⓒ 모종혁

중국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책 변화는 리판에게 축복이었다. 외국 자동차 회사들과 합작한 중국내 여타 회사들과 달리 리판은 순수 독자기업이다.

인밍산 회장은 독자기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더 낫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합작한 외국 업체들은 제대로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고 핵심 기술을 절대 노출시키지 않는다"며 "띠이·상하이·동펑(東風) 등 중국 3대 자동차 회사들이 아직 변변한 독자모델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수출마저 막힌 것은 이러한 연유에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해마다 영업매출액의 4% 이상을 연구개발에 쏟는 리판의 장래를 인 회장은 일본 '혼다' 자동차에서 찾는다. 오토바이에서 출발해서 기술 본위의 자동차 회사로 우뚝 선 혼다의 길을 뒤쫓겠다는 것이다.

리판은 판매전략 또한 독특하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은 '선 농촌 장악, 후 도시 포위'로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에서 승리했다. 우리도 전세계에 깔려 있는 기존의 리판 오토바이 판매망을 이용하여 저가의 소형차를 구입하려는 개발도상국 시장을 먼저 진출해 발전한 뒤 차츰 선진국을 공략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 회장은 "늦어도 2020년에는 세계 중소형 자동차 시장을 장악한다는 목표 아래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기술자들을 유치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 파도가 모래를 밀면, 모래는 흘려가 버리지만, 금(기술)은 그대로 남는다(大浪淘沙, 是沙自流, 是金自存)'.

리판자동차 생산공장의 한 편에 매달려있는 구호처럼 독자기술로 무장한 리판과 중국 토종 자동차가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KBS 스페셜 취재팀과 함께 리판자동차를 취재해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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