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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며느리 삼총사'로 불리는 미칠·영조·현정(왼쪽부터)
'싸가지 며느리 삼총사'로 불리는 미칠·영조·현정(왼쪽부터) ⓒ KBS·MBC·SBS
미칠이(최정원-KBS 2TV '소문난 칠공주'의 셋째 딸), 현정이(이상인-SBS 주말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며느리)그리고 배영조(지수원-MBC 아침 드라마 '있을 때 잘해'). 최근에 종영되었거나 방송중인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소위 '싸가지 없는 며느리 삼종세트'다.

추석날 시댁부터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당당하게 남편을 데리고 친정행을 강행한 미칠이, 시어머니에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바득바득 대들며 심지어는 시누이마저 '그 기집애'로 전락시켜버리는 영조, 결혼을 하기 전부터 시어머니는 물론 시집식구 모두를 하녀 부리듯 부리면서도 늘 불만과 투정만 일삼는 현정이.

이들 싸가지 며느리 삼총사 때문에 오늘날의 며느리 상에 대해 말들이 많다. 과연 이들이 요즘 며느리들의 모습일까?

70년대, 오직 희생과 눈물로 가정지키는 며느리상

착한며느리 콤플렉스의 원조 '여로'의 분이
착한며느리 콤플렉스의 원조 '여로'의 분이 ⓒ KBS
1970년대 드라마 '여로'에 등장한 며느리 분이(태현실)는 핍박받는 며느리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안보고 삼년, 입 닫고 삼년, 귀 막고 삼년이라는 말처럼 단지 며느리라는 이유로 시집식구들에게 욕설은 물론이고 구타까지 당하면서도 오직 사랑과 희생으로 가정을 지켜가는 분이의 인생은 그 시절 많은 며느리들에게 공감어린 눈물을 자아내게 했었다.

엄한 시어머니와 얄미운 시누이, 엄습하는 가난과 고난의 날들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 낸 '여로'. 시청자들의 눈물 선을 자극했던 해피엔드의 대단원은 며느리 분이의 인간승리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여로' 이후 한동안 며느리라는 존재는 인내와 희생으로 가정을 지켜내는 초인간형의 캐릭터로 묘사되기도 했다.

@BRI@1980년도에 들어서면서 드라마 속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극심한 갈등구도 대신 화합과 안정의 관계를 보여준다. 고부관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분 것일까 1982년 방송된 인기드라마 '보통사람들'에 등장하는 며느리(김민자)와 시어머니(황정순)의 관계는 사랑과 이해로 서로를 감싸고 도와주는 바람직한 고부간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가족구성원 내에서 조심스럽게 한마디 씩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던 며느리들의 목소리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1990년대 한층 커진다.

90년대,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동지'

'사랑이 뭐길래'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동지가 된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동지가 된다. ⓒ MBC
1992년 방송되어 5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사랑이 뭐길래'에 등장하는 며느리(하희라)는 시어머니와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돕는 조력자의 관계에 있다.

가부장적인 남편(이순재)의 권위에 맞서 싸우는 시어머니(김혜자)를 도와 가정 안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며느리는 어느새 시어머니와 동지가 되어있다. 70년대 드라마에서라면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드라마 속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당당하게 할 말은 하고 산다는 2000년대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도 어려운 존재도 아니다. '며느리 살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도 역시 이 시기이다.

70년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며 온갖 악역을 도맡아 해왔다면 2000년대의 며느리는 그 기세가 지나친 나머지 시집식구들에 대한 태도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없는 악녀로 등장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선악구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상전벽해식 관계역전은 지난해(1995년) 방송되었던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극치를 이룬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패륜적인 장면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충격을 받았고 드라마 속 왜곡된 며느리상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혹자는 드라마는 허구이며 드라마일 뿐이라고 하겠지만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입은 옷을 입거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음악을 찾아 듣고 드라마 속 대사나 말투들을 따라한다. 드라마 주인공과 자신을 혼동해 그들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며느리의 모습이 문제가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며느리들 "드라마 며느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가장 평범한 며느리로 꼽히는 '열아홉 순정'의 옥금
가장 평범한 며느리로 꼽히는 '열아홉 순정'의 옥금 ⓒ KBS
그렇다면 드라마 속 막나가는 며느리들처럼 실제로도 며느리들의 입지가 그렇게 당당하고 거세어졌을까?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왜곡된 며느리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여로'의 분이와 같은 며느리가 있을까? 인간이라기보다는 부처에 가까운 인내의 경지를 보여주는 며느리들은 대부분의 며느리들에게 며느리 콤플렉스를 안겨준다. 오르지 못 할 나무 때문에 "나는 나쁜 며느리인가봐"와 같은 자괴감과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와 시집을 향해 거칠게 항의하는 '싸가지 삼총사' 며느리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나쁜 며느리들을 냉혹하게 단죄하기 때문이다. 여로의 분이처럼 지고지순한 천사표 며느리가 등장하는 드라마든 시어머니에게 할말 못할 말, 패악질을 해대는 며느리가 등장하든 결론은 하나인 것이다.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편해." "싸가지 없는 며느리의 끝은 몰락과 후회야."

언뜻 보기에 1970년대 이후 며느리상은 변화와 개혁을 거듭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양새만 달라졌을 뿐 착하고 순종적인 며느리를 기대하는 것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남성적 시각과 환상이 방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주의적 시각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드라마 속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즐겁게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가족시청시간대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왜곡된 며느리들 때문에 보통의 며느리들은 피곤하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왜곡되고 희화되어 가족들 내에서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희화와 왜곡만 있고 리얼리티가 없는 요즘 드라마. 우리시대의 정상적인 며느리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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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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