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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예루살렘
활기찬 예루살렘 ⓒ 정현순

“베들레헴을 가려면 다른 이스라엘과 분리 되어있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합니다”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다.“어머나, 같은 이스라엘인데 검문소는 왜요?” “여긴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렇답니다.”우린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BRI@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성당’을 가는 길이었다. 검문소 앞에서 까다로운 검문이 있은 후 우린 베들레헴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의 풍경은 같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갈릴래아, 사해 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유도 없는 것 같았고 그곳 사람들보다 사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아무튼 모든 것이 정지 된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우리가 탄 버스가 들어가자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면서 버스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우리도 그 아이를 보면서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누군가가“혹시 저렇게 예쁜 아이도 1달러를 외치는 것은 아닌가? 그럼 너무 안쓰러워서 어쩌지?”한다.

그 말을 들은 가이드가“아니에요. 여기 아이들은 외지인들을 보기가 힘들어 사람을 보면 저렇게 반가워해요. 여기 사람들의 10%만 베들레헴 밖에 나가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베들레헴 밖을 나갈 수가 없어요”한다. 우린 더욱 놀랬다. 그들이 더욱 딱해보였다.

차창 밖으로 높은 벽이 보였다.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또 다른 성지라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여행사 가이드와 ‘예수탄생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6발자국 갔을까? 뒤에서 멈추라는 현지가이드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유는 수상한 사람이 어느 건물 옥상에서 총을 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곳에서 온 관광객들도 그 총격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린 정말이지 이곳은 전쟁이 일어났었고 언제든지 전쟁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란 것이 실감이 났다. 또 베들레헴과 예루살램등 같은 이스라엘과도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도 그날 알게 되었다.

목자들의 성당
목자들의 성당 ⓒ 정현순

우린 농담처럼 “야! 우리가 잘하면 TV로 세계뉴스를 장식 할 뻔 했다. 먼 얘기가 아니네”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했다. 그리곤 다른 곳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우린 ‘목자들의 성당’에서 묵상을 하고 그곳을 나왔다. 주변은 어둑어둑해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베들레햄
어둠이 내려앉은 베들레햄 ⓒ 정현순

또 다시 들려오는 불길한 소식. 옥상에 있던 그 사람이 다시 총 두발을 더 쐈다고 한다. 그렇다고 금세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괜스레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베들레헴에 왔으니 성물(기도할 때 쓰이는 묵주, 성가정상등)판매소를 들리자고 했다.

우리 일행은 올리브씨앗으로 만든 묵주를 제일 많이 샀다. 그 외에도 성가정을 비롯한 오지 못한 가족, 친지, 이웃들을 위해 작은 선물들을 사가지고 그 상점을 나왔다. 상점 앞에는 중년은 넘은 듯한 초라한 옷차림의 남자가 여성용 가방을 들고 “두개에 10불”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버스에 올랐다. 잠시 후 현지가이드가 그 가방을 들고 와서는 “3개에 10불입니다. 이것을 팔아야 그 가정의 한 끼 저녁식사가 해결 된다고 하네요. 3개에 10불입니다”한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우리들은 그 가방을 3~4명이 샀다. 나도 샀다.

난 이번 여행 중에 물건을 거의 사지 않았다. 그곳 중동지역을 다니면서 물건들을 보아하니 우리나라 물건들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10불에 가방을 사면 한 가족이 밥을 배불리 먹는다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방을 산 것이다.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가방이 모두 팔렸다.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가 가방을 모두 팔았다면서 현지가이드는 "여러분이 한 가정의 몇끼의 식사를 해결해 주었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곳 사람들은 경제활동이 제한 되어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한다. 하여, 그곳 사람들은 기회만 되면 그곳을 탈출 할 생각만 한다고 한다. 그곳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우리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 많다. 하지만 폐쇄된 그들보다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우리나라가 그리워졌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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