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6일 백악관에서 이라크연구그룹과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라크연구그룹 대표 자격으로 헤밀턴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이 과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참석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6일 백악관에서 이라크연구그룹과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라크연구그룹 대표 자격으로 헤밀턴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이 과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참석했다. ⓒ 백악관 홈페이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이라크연구그룹(Iraq Study Group) 보고서가 12월 6일 오전(미국시간)에 발표되었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리 해밀턴 전 민주당 의원이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해 작성된 이 보고서는 미국 국내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 실패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다.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알-카에다와의 연계설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이 났고, 부시가 이라크인들에게 약속한 '더 나은 내일'은 후세인 치하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오늘'이 되고 있으며, 미군 사망자 수도 이미 9.11 테러로 쌍둥이 빌딩에서 숨진 사람들 수를 능가했다.

@BRI@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이라크 보고서는 부시의 실패에 대한 "명백한 고발"이라는 <뉴욕타임즈>의 평가는 정곡을 찌른다.

둘째는 이라크 문제로 양극화되고 미국 국내 정치에 대한 처방책이다. 미군 사망자와 전비(戰費)가 폭등하면서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미국 국민의 지지는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다. 지난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의 참패는 부시의 정책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는 'My way'를 고집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거물급 인사들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해 작성된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는 '분열된 미국을 재통합하자'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묘책은 없다. 그러나 최선은 다하자

수백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이라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거쳐 작성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이라크 보고서는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과 이라크를 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고서에서도 명확히 밝힌 것처럼 '묘책'은 없었다. 양극단에 있는 방법인 미군 철수와 미군 증강으로는 이라크의 미래를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시의 정책을 그대로 나둘 수도 없다. 미국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의 핵심적인 요지는 미국은 이라크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최악의 상황을 막는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이를 위해 보고서에서는 부시 행정부에게 이라크의 미래를 이라크인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 2008년 상반기까지 대부분의 전투 병력을 철수하겠다는 입장과 석유를 탐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라고 권고했다. 이라크의 민심을 얻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란 및 시리아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지역적, 국제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권고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라크 문제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레바논 사태, 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중동 문제들과 연계되어 있는 만큼, 미국은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No, Thank you.

보고서가 나오자 부시 대통령은 79개에 달하는 권고안을 검토해 취사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반응은 한마디로 '고맙지만, 사양한다'(No, Thank you)로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에서 권고한 핵심적인 두 가지 요구 사항, 즉 철군 일정 공표와 이란, 시리아와의 직접 대화를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부시가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라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재앙은 미국의 다음, 다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판에 박힌 얘기의 되풀이뿐이었다. 이미 실패로 드러난 정책을 부여잡고 '이길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부시의 초라한 모습은 3년반 전에 전투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내려 '이라크 전쟁 승리'를 외쳤던 오만함에 이미 잉태되어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기실 이번 이라크 보고서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어떠한 반성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후세인 제거'라는 목표는 옳았지만, 점령 이후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미국 주류 사회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79개에 달하는 정책 권고안 대부분도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에 나온 것들을 정리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이 보고서의 핵심적인 정책 권고안을 거부했다. 이는 이라크 보고서 발표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이라크연구그룹은 부시의 썰렁한 반응을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를 통해 만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잠잠해질 것으로 보였던 워싱턴의 '이라크 논쟁'이 다시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