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노래 소리가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시선을 돌려보니 휴대전화를 파는 대리점이었다. 이 골목에는 유난히 휴대전화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거리 곳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국에 전화할 수 있도록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에 처음부터 외국인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산업화가 본격화한 1980년대 초, 반월공단이 세워지면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묵을 거주지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러나 IMF가 닥친 후 한국인들은 차츰 이곳을 떠났고,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반월공단이나 시화공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다보니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나 향신료 따위를 파는 식료품 가게들도 많다. 타이, 중국,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등 각국 특유의 향신료나 음식들을 파는 식료품 가게가 많고, 식당에서도 식료품을 같이 파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경 없는 마을, 국경 있는 삶
"몽골, 러시아 애들도 심하지만 중국 애들은 더 심해. 음식 같은 거 사가려고 와서는 코에다 대고 냄새 맡고 손으로 막 만지고. 무슨 일만 나면 칼로 찔러 죽인다고 난리여. 무서워 죽겠어 아주. 저기 저 가게는 '중국인 사절'이라는 간판까지 써 붙일 정도라니까."
'국경 없는 마을'의 골목어귀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김두희(56)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생각해보기 전에 그들이 마을에 끼친 해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특히 중국 애덜, 걔네들은 쓰레기도 맘대로 버리고. 일도 성실히 하는 줄 알어? 지들 맘에 안 들면 그냥 나가버리고. 버릇없어. 아주 못됐어."
쓰레기봉투에 버리라고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지 자꾸 공원이나 길거리에 내다 버린다고 한다. 안곡동에 사는 한국 주민들도 가끔 쓰레기를 길바닥에 버리는 경우가 있지만, 봉투에 쓰레기를 넣어 길거리에 내놓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먹은 음식과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봉투에 넣어 전봇대 밑에 놓는다고 김씨는 주장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인 대표와 외국인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대화는 힘들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나 외국인들을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라 모두 서둘러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술에 취한 외국인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김두희 씨를 인터뷰한 포장마차로 다시 돌아왔을 때 마침 스리랑카 부부가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한국 사람들, 좋아요"라는 말로 운을 떼고는 "어딜 가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데 그래도 우린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인이 좋고 크게 불편하거나 피해 보는 건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김씨도 그 말에 동의하며 "진짜 어딜 가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어, 외국인이냐 한국인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외국인이더라도 마음이 착하고 성실하면 도와주고 싶고 그런 거여"라고 말했다.
"그냥요, 다 똑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안산 외국인 노동자 센터'가 있는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센터 앞에는 40명 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안산의 정한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나오는 길이란다. 평소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더니 곳곳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그냥요, 다 똑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처음엔 좀 무섭고 그렇긴 한데요, 말 나눠보면 착해요."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이니까…. 원래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요."
혹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해를 입은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제가 아는 언니가 버스를 탔는데요. '아가씨, 예뻐요 예뻐요'하면서 계속 쫓아왔대요. 그 언니가 진짜 무서워서 막 뛰어서 도망쳤대요."
"밤에 집으로 가다가 외국인들 보면 무서워요. 그래서 뛰어서 집에 가요."
방금 전 대답과는 상반된 말이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비율은 2000년 이후 매년 약 20%씩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과 외국인 노동자의 공존을 모색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살기 위한 다문화 교육도 좋은 예이다.
'안산 이주민 센터'를 운영하는 박천응 목사는 지난 7월 8일 유네스코 다문화 심포지엄에서 "다문화 정책의 목적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가는 국제결혼이민자와 이주민, 난민들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다양성 존중,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세계화에 따른 지역화의 상호 관련성과 현실적 변용, 지구 시민사회의 노동과 인간 소외 관계 규정, 시민권의 보편적 가치와 공동체의 특수적 가치의 종합, 노동 문화 생태적 이해관계의 조화, 다원적 정의가 구현되는 전 지구적 다문화 공동체"의 경우를 들었다.
또한 다문화 교육이 "소수자 문화를 차별하는 다수자들에게 타자 이해 및 존중을 가르치는 것, 소수자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 다수자와 소수자가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도록 지원하는 일" 등 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2005년 9월 시도교육청에 외국인학생 입학상담센터를 설치했다. 또한 외국인학생의 국내 학교 편입학 원활화 정책을 펴고 있다. 민간단체도 내국인 학생들에게 외국의 역사와 전통, 풍습, 생활양식을 이해하게 하고 외국의 전통의상, 무용, 음악 등을 소개하거나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 등 방문, 이주노동자 자녀 캠프 참가 등 행사를 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 없이 무조건 낯선 사람, 범죄자 취급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소통을 위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아랍어, 중국어를 비롯한 외국어 간판들의 불빛이 환했다. 아까 들어오던 골목을 나오면서 보니 낮에 보던 거리와는 또 달랐다. 노래방 문을 열고 나오는 외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하거나 길거리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있었다.
'국경 없는 마을'이 생긴 지 7년이 되어간다. 정착기, 활성기를 지나 재도약의 시기가 왔다. 외국인 노동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동 행사를 추진하거나 정기적인 모임을 열어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을 '타국인'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불편함까지 감수할 여유가 필요하다.
올해 10월 1일부터 11월 19일까지 열린 '이주노동자 영화제' 는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포천, 안산, 서울 등을 돌며 영화제를 열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영화도 상영했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 외국인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행사나 언어교실을 여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