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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만 보고 걷다보니 아침햇살 가시기 전에 주문진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이동환
▲ 너울마다 부서지는 햇살이 한숨 쉬게 만든다. 눈만 부신 게 아니라 마음도 부시다.
ⓒ 이동환
▲ 바닷가 여인들은 그저 존경의 대상이다. 한참 붙박여 해녀의 자맥질을 유심히 보며 탄성을 질렀다. 저 이처럼 나도 삶에 더 치열해야 한다.
ⓒ 이동환
이레 째 여행. 걱정하던 일이 생겼다.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어제 강릉시 연곡에서 머물고 일어나자마자 걷기 시작했다. 아침햇살 까라지기 전에 주문진 항구에 도착하려고 걸음을 재촉한 것이 화근이었다. 주문진에 거의 도착해서 그만 삐끗, 보기 좋게 자빠지고 말았다. 크게 다친 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휴대전화에 SOS 설정을 해놓은 것이 문제가 됐다.

옷에 묻은 흙을 터느라 정신없었는데 주머니 속에서 이놈이 제멋대로 SOS 발신을 해버렸다. 마누라부터 난리, 설정에 들었던 지인들 모두 법석…. 수습하느라 한참 애먹었다. 그래도 행복하다.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절룩거리면서도 어쨌거나, 부둣가 양미리 잔치가 파하기 전에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어 그나마 보람이었다.

하기야 일주일째 여유 없이 강행군을 해왔다(나를 닦달하려고). 잠시 쉬어가라는 모양이다. 일정도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 집 나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슬슬 그립다. 때마침 동료강사 두엇이 수업 끝나고 응원하러 온단다. 이 여행 종착지는 속초 아바이 마을이다. 멀지 않지만 이곳저곳 들러가며 하루 15km씩 걷기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면 결코 쉽지 않다.

싸고 영양 많고 맛 좋은 양미리 사러 오세요

▲ 부둣가에 양미리가 지천으로 널려 발 디딜 틈이 없다. 양미리는 잡는 것보다 그물에서 뜯어내는 게 일이란다. 갈매기 손길이라도 빌려야 할 판.
ⓒ 이동환
▲ 부두고 배고 어디고 양미리 천지다. 갈매기들이 막 물어가도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그물에서 빨리 떼어내 건조시키는 일이 급하기 때문이다.
ⓒ 이동환
▲ 12월말까지 딱 제철이라는 양미리는 지금이 최고 맛 좋을 때란다. 만 원 한 장에 150마리, 반 건조 시켜 상자에 잘 담아놓은 일등품조차 한 마리 백 원 꼴도 안 한다.
ⓒ 이동환
부두에 접어들면서 나는 기함을 했다. 아무리 제 철이라지만 부두 이쪽 끝에서 저 끝까지 온통 양미리로 진을 쳤다. 그물에서 떼어내는 일이 장난이 아니다. 깨끗이 행군 뒤 반 건조 시켜야 상품으로 나가는데 값이 싸도 너무 싸다. 그래도 어쩌랴. 바다가 주는 선물을 몰라라할 수는 없는 법. 아낙들의 손길이 마냥 분주하다.

"이게 다 서울로 가나요?"
"전국으로 가지여."

"야! 이게 다 큰돈이네요."
"돈이여? 이기 다 돈이믄 부자 되라구여? 너무 싸서 일하는 기…, 흥이 안 나구만. 양미리 값도 모르는 기 보이 서울샌님인가 보네여."


이을 말이 없다. 양미리 진과 핏물이 흘러 반지르르한 부두를 조심스럽게 걸어 한참을 가서야 다시 멈췄다.

"이거 바로 잡은 것 구워 먹어도 맛있겠지요?"
"맛만 있나여? 이기 얼매나 영양 많은데여. 이래 좋은 걸 서울사람들은 싸구려 취급만 하니 참 답답하지여. 공은 또 얼매나 들어가는데여. 이기 보래여. 이기 그물코마다 걸린 거이 빼 내리믄 얼매나 쎄가 빠진다구여. 서울사람들더래 많이 사잡수라구 해여."


인심 좋고 정 많은 우리 땅, 우리 바다, 아! 우리나라

배가 고파 언저리 식당에 찾아들어갔다. 백반 한 그릇 시키는데 창가 식탁에 앉아 있던 어르신 한 분이 나를 유심히 본다.

"혼자 다니셔?"
"네!"

"이래 오셔. 숟가락 하나만 노믄 되는데…."
"아, 괜찮습니다."


뜻밖의 합석 제안에 한사코 예의를 차리는데 어르신이 막 잡아끈다.

"아, 우리 여그 손님 아니래. 다 동네사람이여. 맛있는 거 나눠 먹으려구 모있잖소. 아즘마! 여그 밥만 하나 갖다 줘여."

오징어 배 선장이라는 어르신은 새벽 무렵 항구에 도착해 한잠 주무신 뒤, 문어랑 붕장어랑 따로 잡힌 것들을 굽고 무치고 삶아 조촐한 무사귀환 잔치를 벌이는 중이었다. 자꾸 사양하는 것도 결례라 합석했다. 그야말로 진미였다. 역시 바다에서 나는 것들은 바로 먹어야 제 맛이다.

"아따 젊은 양반, 잘 먹네. 보기 좋네."
"제가 이 먹는 품새 하나로 장인어른 승낙 받아 장가들었습니다."


젓가락질 몇 차례 겨루고 나니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 같았다. 사는 게 힘든 이야기, 좋은 이야기, 슬픈 이야기…. 밥값이라도 내겠다니까 주인아주머니까지 한사코 사양하신다. 자꾸 돈 내려고 하면 화내겠다고, 여행 잘 마치라고, 늙으면 마누라밖에 없으니 잘 하고 살라고, 주문진 오면 꼭 들러 가라고….

@BRI@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계획 짤 때 제일 먼저 외국을 떠올렸다. 작전 끄트머리, 이십대에 도보여행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걷자고 마음 굳혔을 때 사실 좀 겁이 났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낫살 적지 않으므로. 걱정만큼 힘들었다. 아니 힘들다. 그런데 신난다. 멍 든 어깨 파스 붙이면서도 너무 잘 했다 싶다.

우리 땅, 우리 바다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고 눈빛이 통하고 가슴이 통한다. 도시는 그렇다쳐도 회색 숲만 벗어나면 정(情)이 넘친다. 동과 서니, 어디 어디 편 가르는 건 일신 영달 욕구에 사로잡힌 정치꾼들 못 된 입심 때문이다. 우리 땅, 우리 산, 우리 바다는 원래 '쪼갬'이 없었다. 눈 마주치면 안부 묻고 사투리 달라도 가슴으로 알아듣고, 아프면 같이 아프고 좋으면 함께 흥감했다.

여행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목욕탕에 들렀다. 동료강사들이 응원하러 차 몰고 내려온다는데 좀 다듬어야지. 그래도 직장에서 보여주던 모습이 있는데(이것도 어찌 보면 위선이다). 아무튼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오늘은 그러고 보니 여행 첫날과 마찬가지로 8km밖에 못 걸었다.

덧붙이는 글 | 11월 말부터 나는 들떠 있었다. 3년여 만에 황금휴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나갈까? 어디 좋은 데 없나? 이런저런 계획을 짜던 나는 결국 포항에서 시작해 해안선을 따라 북진여행을 하기로 했다(하루 15km씩 걷고 나머지는 차로 이동). 한겨울에 도보여행이라니 주변에서는 걱정 일색이다. 내가 속한 지역모임에서는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어쨌거나 나는 12월 5일(화), 서울역에서 아침 7시 40분발 포항행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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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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