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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도서출판 글꽃
근세기 들어 가장 위대한 교육가인 페스탈로찌는 인간학교의 기초를 가정과 초등학교에서 추구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동의 자발적 활동을 통하여 여러 능력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직관적 방법을 제창하였다. 이는 사회개혁의 근본 기능을 전인적(全人的) 교육에서 찾은 것으로써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혜안이 돋보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세 번 변하고 또 삼 년이란 세월이 흐를 동안 오로지 초등학교에서 몸 담아온 정근영 선생님. 그 선생님이 33년 동안 자연스레 터득한 교육관을 담은 책을 펴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말경에 도서출판 글꽃에서 나온 이 책은 교육 수요자와 교육 공급자가 진정한 인간화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근영 선생님은 초등학교라는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담당한 실천가이지 페스탈로찌 같은 교육이론가는 아니다.

@BRI@그러나 모든 교육이론은 교육실천을 떠나서 나올 수가 없다. 페스탈로찌도 무수한 교육 사업의 실패를 통해 교육 철학을 하나 하나씩 정립해 간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그 위대한 교육철학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정근영 선생님 같은 교육자의 소중한 경험이 하나의 사례로, 살아 있는 교육철학으로 정리되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정근영 선생님 같은 분의 실천적인 경험이 쌓이고 쌓여 올바른 교육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정근영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교직 생활 33년째에 접어들어서야 교육이 무엇인지 어슴푸레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좋은 교육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을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결국 좋은 교육이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며, 좋은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소담스럽게 고백한다. 개인의 타고난 적성과 소질을 중시하는 교육, 그리고 소질을 발굴하고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교육, 적성과 소질을 적절하게 발굴하여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힘이 되게 하는 교육. 바로 이런 교육이 좋은 교육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낯익은 교육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교육관을 직접 현장에서 체험한 이가 다시 한 번 강조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직도 학교 현장에서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구태의연하고 낡은 사고방식이 학교에서 횡행한다는 것이다. 정근영 선생님은 이런 낡은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좋은 교육과 좋은 세상이 올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평범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주제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는 그 하나 하나가 독립된 책의 역할을 할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이치에 맞도록 잘 구분되어 있다. 내용도 평이하고 문체도 시원한 터라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다. 일종의 교육 수필이면서 교육 이론을 배경에 깔고 있는 책인 셈이다.

제1부와 2부, 3부에서는 선생님이 교육 현장과 생활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정겨운 시골길처럼 구수하게 펼쳐진다. 이 구수한 길을 따라 걸어가니 초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은하수가 폭포처럼 쏟아지던 한 여름밤의 추억이 생각나기도 한다.

실제 정 선생님도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폐교의 잔디밭에 누워 별을 바라보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 선생님은 그런 에피소드들의 행간 속에서 교육 현장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대안 제시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공교육 정상화의 한 방편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 전담제 같은 방안은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또한 교원의 직급을 7단계로 구분하여 승진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 교원복지나 교육양극화 해소 방안, 작은 학교 설립 안 등도 귀담아 들을 만한 제안이었다. 무엇보다도 제3부의 마지막에 나오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는 포복절도와 숙연함, 많은 생각거리들을 안겨준 명언이었다. 가장 생각나는 구절 하나.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참, 멋진 말이다. 역설의 법칙을 아주 완곡하게 표현한 말임에 틀림없다.

제4부와 5부, 6부는 전반부와 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의 문제점을 교사의 자격, 승진제도 등을 통해 정면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엄정한 비판들은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고, 심각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정근영 선생님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교육 모형과 대안들이 가지런하게 제시된 장이기도 하다.

책의 말미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가 첨부되어 있다. 이 부분은 후기를 대신한 것이며 지은이의 총체적인 생각이 집약되어 있는 장이기도 하다. 참여정부의 대통령 자문 1기 교육혁신위원을 지낸 지은이답게 교육개혁에 대한 지은이의 지론이 차분히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혁신위원으로써 애쓴 노력의 편린들을 다시 볼 수 있으며, 위원회 활동을 하느라 교감 자격증을 받고도 여태 승진하지 못한 지은이의 소회가 슬며시 깔려 있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과 전담제, 대교사(1급)와 수석교사(2급), 전문 교사 등을 골자로 한 교원 조직 구조, 직업 유형에 따른 학교 제도 개선 등을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 정근영 선생님이 33년의 세월동안 가졌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독자들의 정수리를 뜨겁게 달굴 것이다. 결코 티 나지 않게, 결코 튀지도 않게, 잔잔하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지난 세월의 이야기들을 풀어 가는 소박한 정성이 독자들의 가슴에 선연하게 파고 들 것이다. 인간에 대한 교육, 인간을 위한 교육, 인간을 만들어 가는 교육. 좋은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며, 좋은 세상이란 이런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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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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