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황진이’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황진이’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영화가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또 몇 해 전부터 ‘황진이’를 주제로 한 만화와 소설이 여러 권 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내가 어제, 밤을 꼬박 새우고 읽은 책은 열매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정비석의 <황진이>라는 소설이다. 이 책은 1974년부터 <조선일보>에 4년간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정비석의 <명기열전(名妓列傳)>(1989년 고려원에서 <미인별곡>으로 재출간)이 그 원전이다. 이른바 ‘정비석의 역사인물소설’ 제1권으로 나온 것이 바로 <황진이>이다.
장편 <자유부인>으로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저자 정비석은 60∼70년대 대표적 인기 작가였다. 나는 그의 수려한 문장을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산정무한'이라는 금강산 기행문을 통해서 처음 읽었다.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보이는 듯한 정황 묘사와 물 흐르듯 유장하고 원숙한 그의 문장으로 그려진 <황진이>를 나는 밤을 꼬박 새워서 단번에 다 읽어버렸다.
저자는 <황진이>를 포함한 <명기열전(名妓列傳)>을 쓰게 된 동기를 “완고한 시대의 천민 계급 여성으로서 떳떳이 눈부신 자기 실현을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또한 열 살 전후부터 교방(敎坊)에 들어가 가무(歌舞) 서예(書藝) 시가(詩歌) 등 온갖 예기(藝伎)를 익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예술을 꾸준히 지켜 왔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이 단순한 일개 기생으로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기생(妓生)들도 당당히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창조자다. 황진이는 특히 그러하다.
@BRI@조선 중종 때 송도(개성)의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 성(姓)은 황(黃)씨, 명(名)은 진(眞) 또는 진이(眞伊)이다. 아명은 명월(明月), 기명(妓名)도 명월(明月)이라 했다. 그는 호탕한 성품으로 재예(才藝)가 절륜하고 용모가 절세가인(絶世佳人)이다. 게다가 음률(音律)과 시문(詩文)에도 도통하여 명기(名妓) 중의 명기였다. 자연을 애호하여 명산대천을 섭렵하며 당대의 명사들과 추축(追逐)하는 동안에 수많은 시(詩)와 일화(逸話)를 남겼다.
황진이는 죽어서도 평양으로 부임해 가는 평안도 도사를 임지에서 파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가 바로 조선 중기의 뛰어난 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다. 임백호는 평양으로 가는 길에 평소 흠모하던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주고, 그를 그리워하는 시조를 남겼다. 그 시조가 빌미가 되어 그는 파직되었는데, 시인은 그 일을 추호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조가 우리가 잘 아는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으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어하노라”는 작품이다. 무애자재한 풍류객이었던 황진이가 백호 임제 같은 또 다른 풍류객을 만들었던 것인가.
이웃 마을에 사는 박수재라는 청년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었는데, 그 상여(喪輿)가 황진이 집 대문 앞에서 꼼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그 죽은 청년의 외로운 혼백(魂魄)을 위해 황진이는 기꺼이 제사를 지내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황진이는 끝내 기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명기(名妓) 명월이가 만난 사내야 수도 없이 많겠지만 정비석의 <황진이>에는 그리 많지 않다. 여색(女色)에 초연하다고 자랑하던 벽계수 이창곤과 지족암의 만석선사를 골탕 먹인 일 외에 다섯 명의 멋진 사내와 진정한 교분을 갖는 것이 나온다.
황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멋진 다섯 명의 사내는 첫 운우지정을 나눈 부운거사(浮雲居士) 김경원, 금강산 여행을 함께 떠난 이석, 대문장가 소세양, 송도삼절의 도학자 서경덕, 그리고 6년간 계약 동거를 나눈 명창(名唱) 이사종이다. 이들은 수만금을 들고 황진이의 진분 냄새를 쫓아 달려드는 시정잡배들의 사내와는 달리 맨몸으로 풍류(風流) 하나만을 들고 황진이와 참다운 사랑을 나눈 이들이다. 이 가운데 화담(花潭) 서경덕은 황진이의 사내가 아니라 학문과 배움의 스승으로서 황진이가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하고 사랑했던 이다.
기생 명월이 황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다섯 사내와의 만남과 헤어짐이 정비석 소설 <황진이>의 주된 내용이다. 나는 황진이와 이 다섯 명의 멋진 사내들이 나눈 아름다운 사랑, 품격 높은 풍류를 일일이 그려낼 자신이 없다. 기생이 된 황진이가 수많은 한량들이 머리를 얹어주겠다는 것을 다 뿌리치고 제 스스로 몰래 머리를 올려 기다린 지 3년만에 만난 풍류객 김경원, 그와 황진이가 처음 만나 풍류를 나눈 한 장면을 여기에 옮겨다 본다.
“자, 오늘밤은 달뜨기를 기다리며 취하도록 마셔 보자구.”
“그러다가 술이 취해 잠이 오면 어떡하옵니까?”
“취해서 잠이 오면 풀밭에 누워 버리면 그만 아닌가. 이태백의 시에,
술에 취해 산속에 누워 버리니 醉來臥空山
하늘땅이 그대로 이부자리라. 天地卽衾枕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명월도 별빛에 술잔을 기울이며,
“이태백의 시에는,
달뜨기를 기다리며 노래를 부르니 浩歌待明月
노래가 다함에 시름도 잊었노라. 曲盡已忘情
라는 구절도 있사옵니다. 이태백의 참된 풍류를 오늘밤에야 깨달은 듯하옵니다.”
명월은 너무도 신기로워서 소리 내어 감탄하였다.
부운거사는 달을 그윽이 우러러보면서,
“발이 없으면서 달은 밤하늘을 잘도 걸어 올라오네. 옛날에,
달은 발이 없어도 하늘을 거닐고 月無足步天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를 흔든다. 風無手搖木
라는 말이 있으렷다.”
하고 중얼거린다. -(123쪽∼124쪽)
이처럼 책 속에는 황진이가 특히 좋아했다던 이태백을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시, 고려속요, 가사 등 70여 편의 시(詩)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 서정과 풍류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그리고 정비석 소설 <황진이>에 빠져 읽다보니, 표지 그림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박연폭(朴淵瀑)>의 장대한 물줄기가 아니 옛사람의 풍류가 내 몸에 건너오는 듯하다. 어, 시원하고 조오타!
덧붙이는 글 |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