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학도들의 눈에 비친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 포럼'의 역사교과서 시안의 주요 골격입니다. 이 때문인지 지난달 30일 서울대에서 열린 시안 발표 심포지엄은 '역사 왜곡'에 격분한 4·19단체 회원들에 의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건 4·19 단체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70~80년대 돌을 들거나 넥타이를 메고 거리로 나섰다면, 이 교과서는 당신의 그 행위를 '국가를 혼란케 한' 행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교과서가 채택된다면 당신의 아이들은 젊은 날의 당신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또 당신이 만약 효순·미선이의 추모 집회에 촛불을 들었거나, 심정적으로 호응을 했다면, 과거 미국의 시혜적인 역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미-친북적 행위' '배은망덕한 행위'로 매도될 것입니다.
또 당신이 '일제의 만행과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면 이 역시도 수정돼야 할 것입니다. 일제는 한반도를 침탈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도하면서 근대화에 기여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이들의 비틀린 역사관은 '4·19 혁명'을 '4·19 학생운동', '5·16 군사쿠데타'를 '5·16 군사혁명'으로 바꿔 표기한 것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당신의 역사와 역사적 판단을 뒤흔드는 이런 역사책을 당신의 아이들에게 안겨야할까요.
교과서포럼이 최근 공개한 '미완의 역사책'은 총 23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역새책을 네티즌들게 전면 공개하기에 앞서 젊은 역사 연구자들로부터 '촌평'을 들었습니다. 이 역사책의 역사왜곡 체크포인트입니다.
네티즌 여러분,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과거로 되돌아가 빨간줄을 그어가며 교과서포럼이 만든 역사책 시안의 역사왜곡 지점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항기] 민중이 생략된 엘리트 역사관
@BRI@역사학자들은 진실된 역사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등을 다룰 때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용이나 형태 그리고 분량 등이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치되고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교과서 시안에서 개화기는 그렇지 않다. 시각도 엘리트주의적이다.
가령, '동학농민봉기'의 경우 '정부와 휴전하였던 농민군은 ~ 중략 ~ 부적을 지니면 총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오합지졸의 농민군이 ~ 중략 ~일본군을 이길 수는 없었다 ~ 중략 ~'라고 동학농민들을 '오합지졸'로 폄하하고 있다.
김종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이에 대해 "민중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비중을 작게 두고 국가의 움직임에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중들의 커다란 항쟁이었고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의병운동이 지역적, 단기적 한계를 지닌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분량으로 배치되어있다. 또한 고종이 을사조약에 저항했다는 내용이 의병운동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민중적 움직임을 인정하지 않는 엘리트적 역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기] 침탈자가 아닌 지도자 일본
일제 침탈기에 일본은 조선을 '다스렸던'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다. 즉 일본은 지배자로서 조선을 근대화시키고 발전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다. 그렇기에 민중들이 겪은 징병, 징용, 위안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Ⅲ 식민지적 근대의 전개'에서 '1. 일제의 지배체제' 부분을 살펴보면 소주제에 '국가지배의 전면화', '지배체제의 기초정리' 등 '지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 시안 곳곳에 '지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 교과서에서 일본이 조선을 '통치'했다고 표현하는 서술과 다르다. '지배'는 사람들에게 적법하게 복종을 요구할 수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역사서에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력을 배경으로 소수가 지배한다는 개념의 '통치'를 사용한다.
이외에도 '국가지배의 전면화' 부분에서 '일제는 ~ 중략 ~ 국가권력을 확장했다'는 일본의 시각에서 조선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조선토지조사사업' 부분에서는 '신고제가 농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 중략 ~ 많은 조선인 농민이 조선총독부에 토지를 빼앗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중략 ~ 토지의 약탈 주장은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부분은 일본의 토지조사사업이 조선농민들의 땅을 잃게 만들고 소작농, 영세농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는 현 교과서와 어긋난다.
'일본이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한 것은 ~ 중략 ~ 근대적 토지제도 및 재산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서술은 조선토지조사사업이 수탈경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현재의 역사관과 배치된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일제 식민기와 관련 "교과서 시안은 1910년에 마치 조선에 외부에서 온 새로운 지배자가 교체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며 이러한 침략을 지배로 대치한 시각은 민족해방운동과 저항적 민족주의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현대사]독재정권 찬양...사회운동은 "친북"
"결과론적 시각만을 가지고 해방기 이승만을 찬양할 수 있는가. 또 분단정부를 합법화할 수 있는가. 김구 등 전쟁을 막기 위해 북으로 갔던 인물들을 이상주의자, 공산주의자에게 이용당한 자로 격하시킬 수 있는가."
교과서 포럼의 시안에 대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소감이다. 박 교수는 "교과서 시안은 해방 후의 역사에 대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을 찬양하여 현재 한국 현실을 기준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잘된 것만을 지적하고, 청산해야 할 문제들을 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교과서 시안 'Ⅳ국민국가의 건설'에서 '1. 대한민국의 성립' 부분을 살펴보면 2005년 '광복 60년 이후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 3위로 뽑힌 김구에 대해 '김구와 김규식은 단독선거를 막기위해 ~ 중략 ~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라고 폄하하고 있다.
또한 4·3 사건에 대해 '좌파는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 ~ 중략 ~ 신생 정부의 안정을 위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서 4·3 사건은 국가의 잘못이라고 인정한 것과는 배치된다.
5·16과 관련해서는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군부엘리트가 주도한 위로부터의 산업화는 보기 드문 역동성을 과시했다'고 찬양하고 있다. 또한 4·19 이후 사회운동에 관해 '사회적 무질서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 중략 ~ 민족통일연맹과 민족자주통일협의회 등은 ~ 중략 ~ 통일론을 부추겼고 ~ 중략 ~ 공산주의체제를 미화하는 단체들의 숫자도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등의 내용을 기재함으로서 당시 사회운동의 주체를 친북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4·19 이후 민중의 통일논의, 사회운동은 대부분이 합법적인 틀 안에서 활동했다"면서 "하지만 교과서 시안에서 이들의 활동을 친북운동, 반체제 운동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교과서 시안을 비판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시안 'Ⅴ. 고도 경제 성장과 권위주의 정치'에서 '2. 고도 경제성장 체제의 전개' 를 살펴보면 '정치는 강하게 권위주의적 속성을 띠면서 ~ 중략 ~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기도 한다. ~ 중략 ~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면도 있다는 것을 ~ 중략 ~ 집단사이의 갈등 ~ 중략 ~ 효율적 통제를 위해 비상한 방식의 권력행사가 필요했다는 점에도 ~ 중략' 등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Ⅴ. 고도 경제 성장과 권위주의 정치'의 '4. 민주주의를 위한 진통'에서는 '5·18 광주민주항쟁'에 대해 '광주에서 신군부 대두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발생한 것은 그동안 발전과 중앙권력으로부터 소외가 누적 된데다 ~ 중략 ~ 이라고 설명해 독재에 대항해 일어난 광주민주항쟁에 대해 왜곡하고 있다. 또한 '6·10 항쟁'을 '중산층의 시위'로 격하시켜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도 시안은 '유신체제'를 "행정적인 차원에서는 국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라 규정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발전국가를 계승했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봄을 짓밟은 신군부'라는 현 역사교과서와는 명백하게 다른 관점이다.
이같은 교과서포럼의 현대사 관점에 대해 김종훈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개발이 마치 박정희 정권의 전유물인 것처럼 교과서 시안에는 언급하고 있다"면서 "경제개발을 위한 민중들의 노력이나 부의 집중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 등에 대해 서술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과서 시안은 민중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을 폄하, 비난하면서 국가주의에 의한 독재를 옹호하고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젊은 연구자들의 평가다.
김정인 교수는 이러한 교과서포럼의 사관을 '민족주의나 민주주의라는 보편가치를 거부하는 수구적 역사관'이라고 꼬집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모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리고 민중의 힘으로 축출당하거나 굴복해야 했던 지도자들이다. 이들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것은 결과와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국가지상주의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보편적 역사관을 배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획득하기는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