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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고향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게 중학교 때입니다. 그 전까지는 등잔불을 켜고 살았지요. 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람결 따라 요동치던 등잔불, 등잔불 따라 까맣게 올라가던 그을음, 어쩌다 잘못 건드려 등잔이 방바닥에 나뒹굴어 쏟아진 석유가 방바닥을 적시면 온 방안에 퍼져가던 석유 냄새 등등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어쩌다 양초라도 생겨 등잔불 대신 켜면 그렇게 밝을 수 없었습니다. 온 방안이 대낮처럼 밝아지면 마음도 따라 환해졌습니다. 그래도 문 여닫을 때마다 흔들리는 모습은 등잔이나 꼭 같았지요.

마을길도 넓어지고 초가 대신 슬레이트 지붕으로 변했어도 우리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 사는 동네에는 다 전기가 들어왔다는데 유독 우리 동네만 제일 늦었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들을 특별하게 부러워한 적도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문과 함께 마을 여기저기에 전신주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드디어 전기로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위에 나온 사진과 꼭 같은 모습입니다. 천장을 따라 내려온 굵은 전선 끝에 매달린 소켓에다 백열등을 끼우고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돌리면 불이 켜졌습니다.

등잔불 켜다 촛불 켠 세상이 별천지 같았는데, 이젠 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밝은 백열등이 방마다 매달려 있었습니다. 방문을 여닫을 때마다 등잔불 꺼질까 조심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전기가 있다는 게 두말할 이유 없이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기 때문에 아찔한 경험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부엌에 달린 전구가 나가 새 전구로 갈아 끼우다가 감전이 된 것입니다.

전구를 다 끼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구와 소켓을 쥐고 있던 두 손이 사정없이 떨리며 온 몸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적 공포감이 밀려들며 죽을힘을 다해 뿌리치고 부엌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나동그라졌습니다.

@BRI@밖에서 웬 짐승 소리가 난다며 방문을 열어보던 아버지가 기겁을 해서 맨발로 달려 나와 내 몸을 부축해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별다른 후유증은 없었지만 그 뒤로 상당 기간 동안 전구를 만지는 것조차 겁을 내며 살았습니다.

전기가 들어온 뒤 따라 들어오는 게 많았습니다. 과수원을 하며 잘 살던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TV와 냉장고가 들어왔습니다. 가난해서 일찌감치 아이들을 공장으로 일터로 내보낸 집에는 이따금 찾는 자식들이 네 발 달린 TV를 사서 버스에 싣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도 저도 없는 집 아이들에겐 그런 변화가 남의 일일 뿐이었습니다.

집 외벽에 매달린 계량기를 검침하러 검침원이 올 때마다 전기세 많이 나올까 마음 졸이며 어머니는 전기 아껴 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그렇게 아끼고 알뜰살뜰 살아온 힘이 오늘의 우리들을 있게 한 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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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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