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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북핵 6자회담 5차 2단계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 수도공항에 도착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가 귀빈실 출입문을 통해 자동차로 이동하다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16일 오전 북핵 6자회담 5차 2단계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 수도공항에 도착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가 귀빈실 출입문을 통해 자동차로 이동하다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아이고 추워!"

16일 낮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 청사 밖을 나서자 마자 강풍이 몰아쳤다. 확 끼쳐오는 한기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신음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올 겨울 들어 서울에서는 한번도 맞아보지 못했던 거센 바람이었다.

@BRI@이날 오전 10시를 좀 넘어 인천을 떠난 비행기는 원래 베이징 시간(서울보다 한시간 늦다) 11시 15분께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덜컹하는 비행기 착륙 소리에 놀라 시계를 쳐다보니 11시 30분이다.

가방을 들고 비행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강한 맞바람 때문에 도착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라는 기장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거대한 보잉 747기의 도착 시간을 15분이나 늦게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강한 바람이었을까?

공항 청사 밖의 체감 온도는 영하 15도는 넘어보였다.

베이징의 동장군 앞에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오는 동안 참았던 흡연 욕구도 맥을 못췄다. 적어도 5분 정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이번 회담 기사 구상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고픈 아이에게 시골 아낙네가 서둘러 젖 몇 모금 물리듯 얼른 담배를 몇대 빨고 대기중인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부터 갑자기 베이징 날씨가 추워졌어…. 다음주 내내 추울 것 같은데…."

베이징에 살고 있는 한 지인의 말이었다. 중국 포털 사이트의 날씨 코너를 보니 최소 앞으로 3일간 강추위가 예고되어 있다. 최저 영하 9도까지 내려간다. 혹시나 해서 두터운 옷을 챙겨오길 잘 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16일 오후 천영우 북핵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가 오는 18일부터 재개되는 5차 2단계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 수도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회담의 전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6일 오후 천영우 북핵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가 오는 18일부터 재개되는 5차 2단계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 수도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회담의 전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6자 회담의 전조?

지난해 11월 중단됐다가 무려 13개월만에 열리는 역사적인 6자 회담을 앞두고 겨울이면 으레 하는 날씨 타령이냐는 타박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갑자기 추워진 베이징의 날씨(회사에 전화해보니 서울도 춥다고 한다)가 전망이 더 어두워진 6자회담과 비슷해 보였다.

전날인 15일 오후 6시께 갑자기 외교부 당국자가 긴급 브리핑을 했다.

이 당국자는 "일부 언론에 이번 6자 회담에 대해서 상당히 낙관적인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이러다가 대량 오보 사태가 날까봐 걱정"이라면서 "현재 사전 조정이 잘 안된 상태에서 6자 회담이 열리기 때문에 회담 조건이 아주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의장국인 중국이 연내에 하자고 하니까 열리는 게 이번 회담"이라며 "이번 회담이 안될 이유를 꼽으라면 108가지를 꼽을 수 있다, 가급적이면 굉장히 어렵겠구나는 것을 염두에 두라"고 당부했다.

이 당국자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핵보유국인 북한이 요구하는 몸값과 미국이 생각하는 가격 사이에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폐기를 하면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언할 수 있다고 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언급이나 중간선거 참패와 이라크 전쟁 실패로 궁지에 몰린 미 행정부의 처지는 전반적인 신중론 속에서도 이번 회담에서 의외의 성과가 있을 지 모른다는 예상의 요소였다.

솔직히 기자로서는 15일 외교부 당국자의 언급은 회담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살이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6자회담에서 한국이 할 역할이 별로 없으니 면피하려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김계관-힐 기싸움?

헌데 16일 오전 베이징에 도착한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나 도쿄에서 나온 크리스토퍼 힐 미 6자회담 수석대표의 발언을 보니 상황히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부상은 "핵무기는 미국의 침략에 대처하기 위해 억지력을 만든 것이다, 억지력이 필요한 한 우리는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9.19 공동성명의 다른 공약들은 우리가 논의해볼 수 있다. 그러자면 우리에 대해 가해진 제재가 해제되는 게 선결조건"이라며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평화공존 정책으로 바꿀 때에야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조(북)미 베이징 접촉에서 미국측에 우리 요구를 이야기했고 미국은 알고 갔다"며 "이제 본 회담이 열리면 토의하자 했으니 어떤 대답을 가지고 왔을 지는 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일본에 온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내일(17일)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와 만날 것"이라며 "공은 북한 쪽으로 넘어갔다, 이번 회담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9·19 공동성명'에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김 부상과 힐 차관보의 발언을 보면 이전 두 나라의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전 기싸움 양상이다. 그런데 어째 그 모습이 서로에게 먼저 행동할 것을 요구하던 모습과 비슷하다. 두 나라는 이렇게 10년 넘게 싸워왔다.

남-북한 대표 사전 만남 없어

김 부상의 발언을 보면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고 이것을 바꿨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한 핵폐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의 목표는 북핵 폐기가 아니라 금융제재 해제 문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힐 차관보는 "이번 회담은 '대화'가 아니라 9·19 공동 성명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대화하지 않고 이것을 이행하라고 강조하던 이전의 행태와 비슷하다. 이런 맥락이면 금융제재 문제는 6자회담과 별도라는 이전의 인식과 기본적으로 같아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또 있다. 지난달 말 북미가 만났을 때 미국이 북한이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북핵 폐기시 한국전쟁 종전 선언문에 서명 ▲경제·에너지 지원 ▲궁극적으로 북·미 관계정상화)을 했으며 이에 대해 북한이 검토해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답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16일 김 부상의 발언을 보면 거꾸로다. 북한이 미국에게 무엇인가 제안을 했고 그에 대한 답을 이번 6자회담에서 듣겠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는 "공은 북한에게 넘어가 있다"고 말했지만 김 부상의 말대로라면 공은 미국에게 넘어가 있다.

아무튼 기싸움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꽤나 고약하게 진행되는 것 같다. 북미간 한랭전선이 베이징을 덮으니 이렇게 추울 수밖에.

김계관 부상은 16일 밤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17일에는 힐 차관보와 만난다. 그런데 18일 본회담 전에 천영우 한국 수석대표는 김 부상을 만날 계획이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가장 최근(11월30일)에 북한을 만난 것이 한국이기 때문에 다른 대표단을 만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면서 "6자회담이 시작되면 북한 대표를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궁색해보이는 정도를 떠나 그러잖아도 추운 베이징의 밤을 더 춥게 만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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