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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 43번지에 살고 있는 구세군 후생원 아이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으로 이주할 계획이지만 주민 반대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43번지에 살고 있는 구세군 후생원 아이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으로 이주할 계획이지만 주민 반대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 오마이뉴스

"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구세군 후생원에 살고 있는 황호범이에요. 저는 지금 상암동 기와집에 살고 있는데요. 얼마 후면 천연동 아파트로 이사 간데요.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는 낡고 오래된 집에서 천연동의 새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니 기대가 커요. 아저씨, 아주머니! 저희가 그곳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구세군 후생원 원생 주경섭입니다. 저희가 천연동으로 이사 가는 걸 반대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저희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과 매우 다릅니다. 저희가 천연동으로 이사 가더라도 주민들에게 어떠한 피해는 없을 거예요. 저희가 가는 걸 반대하지 말아주세요."

@BRI@"안녕하세요. 김상진입니다. 보육원이 천연동에 생긴다고 하니 주민 여러분들의 시선이 많이 따갑고 차가울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주민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들 다 따뜻하고 착한 친구들이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상암동에 살면서 아무 사고 없이 주민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천연동 주민들과도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거예요. 하시는 일 잘 되시기 기도드리며, 건강하십시오."

"안녕하세요. 구세군 서울 후생원에 살고 있는 6학년 이하영입니다. 저희가 처음 상암동으로 이사 갔을 때도 많이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매우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천연동에 가더라도 잘 도와주시고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세요. 저희가 천연동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게 도와주시고 지역주민 여러분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상암동 구세군 후생원 아이들이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고 있다.
서울 상암동 구세군 후생원 아이들이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고사리 같은 손이지만 스스로 빨래 개는 소년들

올 들어 처음 큰 눈이 왔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길거리는 간밤에 내린 폭설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무릎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날씨였지만 서울 상암동 구세군 후생원 꼬마들은 언 손을 호호 불며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코가 새빨개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뭇가지에 하얗게 쌓인 눈을 만지고 노는 것은 아이들의 특권이다. 선생님의 야단도 먹혀들지 않는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먼 산의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올 정도로 아이들의 웃음은 청명했다.

여자 '초딩'들이 밖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동안, 남자 '초딩'들은 방안에서 종이놀이와 빨래개기에 바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속옷을 똑바로 다 갠 민규(가명·5세)는 서랍장에 잘 넣어두었다. 얼굴에 장난이 가득한 정민(가명·7세)이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개구쟁이 짓을 하고 있었다.

중·고등학생 언니들은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텔레비전 드라마에 열중하고 있었다. 몇몇은 컴퓨터게임에 풍덩 빠져 귀로만 드라마를 즐기고 있었다. 너른 방 한 가운데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는 한 무더기의 귤이 쟁반 안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갑작스런 기자의 방문에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효정(가명·고2)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정말 집값이 떨어져요? 그렇다면 할 말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짜 짱 나는데..."

효정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다현(가명·고1)이는 천연동 주민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다현이는 "우리가 나쁜 짓하는 애들이라는 건 편견"이라며 "쓰레기장 들어오는 것 반대하듯이 우리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정말 어른들에게 실망"이라고 씁쓸해했다.

명주(가명·중3)는 "우리도 천연동으로 이사 가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고 걱정했다.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 적응하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명주의 생각이다. 명주는 "만약 천연동 주민들이 우리 이사 가는 것 계속 반대하면 서울역에 나앉는 것이냐"며 한숨을 토하기도 했다. 애나 어른이나 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큰 시름거리인 것이다.

"힘깨나 쓰는 사람 살면 고아원같은 혐오시설 들어오겠나"

서울 상암동 43번지 구세군 후생원이 새로 이주할 서대문구 천연동 건물. 이 건물 앞 천연 뜨란채 아파트 주민들은 이들의 입주를 반대하고 있다.
서울 상암동 43번지 구세군 후생원이 새로 이주할 서대문구 천연동 건물. 이 건물 앞 천연 뜨란채 아파트 주민들은 이들의 입주를 반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서울 서대문 천연동 뜨란채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11월 중순 이 동네에 구세군 후생원이 이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줄곧 반대해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네 이미지가 나빠지고 '그런 아이들'과 내 아이가 어울리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거부감이 있는데다 혐오시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용숙(57) 천연 뜨란채 부녀회장은 "이 동네에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살면 고아원 같은 혐오시설이 감히 들어올 수 있겠냐"며 "주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강력 반발했다. 그는 "예전에는 이 동네에 김구 선생 생가가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도 살아서 함부로 못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사니까 주민들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다"고 분개했다.

최 회장은 "동네 골목 시작부터 아파트 입구까지 사회복지기관들이 줄지어 있다"며 "S교회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매주 화요일 500원씩 돈을 줘 노숙자들을 불러 모으고, 구세군 미혼모시설에 노인복지관까지 있는데 여기에 또 고아원을 추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서대문구청장과 서울시장에게 고아원 입주 반대를 탄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마포구에 있던 시설을 왜 서대문구에 옮기려고 하느냐"며 "마포구 혐오시설은 마포구에 지으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육탄전을 벌여서라도 동네 한복판에 고아원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낼 의지가 충만한 상태"라고 최 회장은 전했다.

그는 "불우이웃 돕기 차원에서 구세군 냄비에 돈 만원 넣을 수는 있지만 우리 동네에 고아원이 들어서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동네에 고아원이 들어서면 주민들이 떠나게 될 것이고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도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동복지시설 입주는 동네 이미지와 집값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는 게 최 회장의 견해다.

91명 아동시설 입주... 주민 사이에 찬반 양론

이 아파트의 입주민인 방인순(75)씨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방씨는 "애들이야 불쌍하고 딱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손자가 그 아이들과 휩쓸리는 것은 안 된다"며 "고아원 때문에 동네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김수연(40)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김씨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들을 사회가 함께 감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상암동 아이들이 천연동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고아원'이라는 말보다는 아동복지시설이나 아동복지센터 같은 단어로 바꿔 썼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서기정(31)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서씨는 "동네에 사회복지시설들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아파트 입구에 현수막이 붙기 전까지는 이 같은 이슈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앞으로는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구세군 서울 후생원측은 지난 7일 이 동네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었다. 91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후생원에 대해 소개하고 후생원 이주에 대한 동네주민들의 동의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공청회는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미리 준비해간 아이들의 편지나 동영상은 꺼내지도 못했고 '왜 마포구 시설이 서대문구로 오려고 하는 것인가'에 대한 난상토론만 이어졌다.

최동식 구세군 후생원장은 호소문을 통해 "우리 집 아이들은 고아가 아니라 연고자나 보호자가 있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생활이 어려워 일시적으로 보호하게 된 아동들"이라며 "옛날처럼 수십명의 아동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집단구호시설이 아니라 한 가구당 6~7명의 아동들과 교사가 함께 생활하는 그룹홈 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육안상으로는 아동시설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연동 마을 주민들이 아동복지시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아예 '천연동 빌라'라고 써붙이고 외관상으로는 '아동복지시설'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UN아동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대로 대규모 아동양육시설을 '그룹홈' 형태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처럼 수십명의 아동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방식은 절대로 아니다"는 점도 덧붙였다.

최 원장은 "사회복지 측면에서 볼 때 아동들이 지역사회와 유리되는 것보다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며 "다른 아이들이 일반가정에서 자라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가정같은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출하거나 비행청소년으로 외부에서 조사를 받았거나 학교폭력에 연루된 적이 단 한번도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라며 "술·담배로 문제를 일으킨 아이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지어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음악치료를 하던 교사는 '일반가정 아이들보다 훨씬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 음악치료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며 "음악치료 교사가 당분간 수업을 중단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올바르다"고 말했다.

특히 최 원장은 "천연동 117번지 건물은 이미 15년 전 건축 당시 사회복지 용도로 허가됐다"며 "애당초 후생원이 들어가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당시 여러 어려움 때문에 이주를 미뤄오다 최근 새롭게 리모델링을 통해 입주계획을 밝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동시설과 집값 하락 상관관계 없어"

서울 상암동 43번지 구세군 후생원 전경.
서울 상암동 43번지 구세군 후생원 전경. ⓒ 오마이뉴스 장윤선
현재 상암동에 위치한 후생원 시설은 겉으로 보기에도 많이 낡았다. 단층짜리 건물이 마치 군대 막사처럼 줄지어 있고, 남자 소변기가 있는 숙소에서 여자아이들이 생활하는 등 생활환경이 열악하다.

상암동 부지는 내년 2월말까지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구세군 후생원이 천연동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무엇보다 현재 살고 있는 상암동 건물은 1969년에 지어진 뒤로 제대로 리모델링이 안돼 개보수가 필요한 상태다. 냉난방에 과도한 비용이 들어 운영상 어려움이 많고 기본적인 생활 편의시설이 부족해 아동들이 생활하기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것도 이사해야 할 이유다.

최 원장은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곳 아이들이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며 "전인적인 인격형성과 자존감 회복, 가정 해체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할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에서 아동시설의 이전으로 부동산 시세가 하락한 일은 단 한건이 없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지금까지 서울시내의 아동시설 및 유사 시설 이전 사례를 조사한 결과 아동복지시설의 입주 이후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되거나 영향을 받은 사례가 결코 없었다"고 설명했다.

"내년 봄 아이들은 새로 옮긴 터전을 찾아 이삿짐을 옮기는데 아파트 주민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게 된다면 너무 참혹할 것 같다"는 최 원장은 "어딜 가든 우리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끝으로 "조금만 소외된 아이들을 배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뜨란채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13일 아파트 입구에 플래카드를 걸고 '구세군 서울 후생원 입주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뜨란채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13일 아파트 입구에 플래카드를 걸고 '구세군 서울 후생원 입주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서대문구청, 민원제기에 난감... 집단이기주의적 발상 비판도

서대문구청은 지난 13일 뜨란채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민원을 접수했다. 주민들이 낸 민원내용은 '후생원 시설의 천연동 입주 반대'와 '리모델링 공사 중단' 요구다. 이같은 주민들의 민원제기에 서대문구청측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선옥 서대문구청 가정복지계장은 "뜨란채 1008세대 가운데 650세대 입주민 의견을 모아 구청에 제출했다"며 "650세대 가운데 617세대가 입주반대·30세대가 입주찬성·기권 3세대"라고 전했다.

김 계장은 "구세군측이 적법한 절차를 밟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청대로 공사중지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구청이 이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끼어들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의 민원에 대한 회신은 금주중으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천연동 뜨란채 입주민들의 발상은 집단이기주의"라며 "위기가정이나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도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아동들이 예전처럼 대규모 시설에서 양육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소숙사나 가정위탁, 그룹홈 형식으로 보호받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아원이라는 명칭도 없어진 지 이미 오래인데 플래카드에 '고아원 반대'라고 써붙인 것은 '위기 가정'으로 상처받은 아동들에게 이중 상처를 주는 것에 다름아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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