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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주택 단지 전경 을씨년스러운 컨테이너 주택 단지에는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칼바람만이 지나칠 뿐이었다.
컨테이너 주택 단지 전경 을씨년스러운 컨테이너 주택 단지에는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칼바람만이 지나칠 뿐이었다. ⓒ 선대식

하천 수해 복구는 언제쯤... 수해가 발생한 지 5개월, 아직 평창 진부면의 하천에는 수해 복구가 한창이다.
하천 수해 복구는 언제쯤... 수해가 발생한 지 5개월, 아직 평창 진부면의 하천에는 수해 복구가 한창이다. ⓒ 선대식
수해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평창은 스키장에 가려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다시 찾은 눈 쌓인 평창 진부면의 수해지역은 여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 기온 -0.4℃의 평창에서 33.5℃의 잔해를 느낀 것이다.

@BRI@지난 13일 평창 진부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해가 잊혀진 쌀쌀한 겨울, 문득 지난 여름 내가 취재했던 사람들의 겨울나기가 궁금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무너진 집 앞에서 눈물을 쏟던 그들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나에게 진부는 7월 18일, 8월 5일, 8월 9일에 이어 네 번째였다.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일대는 인제와 함께 수해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다. 평창군에 따르면 지난 7월 수해로 11명이 사망했고 5075억원의 재산 피해가 있었다. 현재 40% 정도 복구가 됐다. 평창군 재난관리과의 박관순 씨는 "쓰레기 제거, 농경지 복구는 파종기 이전에 마무리하고 나머지는 6월말까지 끝낼 예정이다"고 밝혔다.

아침 7시 1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해 9시 10분 진부에 도착했다. 일기예보는 따뜻한 아침이라고 했지만 곳곳에 눈이 쌓여있는 진부는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겨울 한가운데였다. 3개월 만에 내디딘 겨울의 진부는 분명 여름과 다른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바람에 수재민들에 대한 걱정부터 앞섰다.

[컨테이너 주택 #1] 내 손에 꼭 쥐어준 비타민 드링크제 한 병

컨테이너 주택 모습  컨테이너 주택들은 파란색 지붕에 황토 빛 단열재를 입은 모습이었다.
컨테이너 주택 모습
컨테이너 주택들은 파란색 지붕에 황토 빛 단열재를 입은 모습이었다.
ⓒ 선대식
곧장 컨테이너 주택이 모여 있는 강변체육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전체 컨테이너 주택 51개동 중에서 38개 동이 모여있다. 컨테이너 주택들은 파란색 지붕에 황토 빛 단열재를 입은 모습이었다. 창문은 이중창으로 바뀌었고 현관도 패널이 씌워져 있었다. 공동 샤워장과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을씨년스러운 컨테이너 주택 단지에는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칼바람만이 날 지나칠 뿐이었다. 곧 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다가가니 지난 여름 때 만난 김연성(71) 할아버지였다. 김 할아버지는 날 컨테이너 주택으로 이끌었다.

혼자 살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수해 나기 전, 밭뙈기도 없이 품팔이를 하며 살았다. "춥지 않으세요?"라는 말에 김 할아버지는 "전기 패널이 따뜻하고 벽은 단열도 잘돼"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대뜸 '사랑의 집' 이야기를 꺼냈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가난한 수재민한테 '사랑의 집'이란 걸 줬어. 난 땅이 없어서 못 받았어. 땅이 있어야 집을 짓지. 얼마 전 군 소유지에 '사랑의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땅값 떨어진다고 반대했나봐. 우리가 무슨 몹쓸 병에 걸린 사람도 아니고…."

할아버지는 한 달 전 인근 하천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와 나무를 제거하는 일을 하다가 갈비뼈를 다쳤다. 할아버지는 "안 그래도 일감이 없는 요즘, 지금까지 일을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1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나오려니 할아버지는 그제야 "(취재하던) 기억이 나는구먼"이라며 따뜻한 아랫목에 더 있으라고 권했다. 취재하러 나가야 한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비타민 드링크제 한 병을 꼭 손에 쥐어 주셨다.

[컨테이너 주택 #2] "천년 집에 가는 것 밖에 없어"

고제남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는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어"라는 말을 계속했다.
고제남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는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어"라는 말을 계속했다.
ⓒ 선대식
김 할아버지의 주택 맞은편에는 고제남(78)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시다. 할머니의 집을 찾은 건 오전 10시 30분. 할머니를 따라 콘테이너 주택에 들어서자 냉기가 느껴졌다. 할머니는 "(앞으로 나올) 전기세가 무서워서 전기 패널을 반쪽만 틀어"라며 나를 따뜻한 이불 속으로 밀었다.

할머니에게는 근처에 사는 작은 아들이 있다. 하지만 작은 아들도 이번 수해 때 고추, 감자 밭이 모두 떠내려갔다. 특히 망가진 집은 융자를 채 상환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들 얘기에 할머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집을 둘러보니 요강이 보였다. 컨테이너 주택 단지에는 화장실뿐 아니라 공동 샤워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이 때문인지 거동이 불편해서 화장실에 못가"라고 밝혔다. "씻는 것도 싱크대에서 얼굴정도만 씻어"라고 덧붙였다.

"늙은이를 어디다가 버려야지.", "죽게만 해줬으면 좋겠어.", "방법이 천년 집에 가는 것(죽는 일)밖에 없어."

할머니는 손자뻘인 기자와 이야기하는 내내 "살 일이 걱정이야, 죽고 싶어"는 얘기를 몇 번이나 계속하셨다.

[컨테이너 주택 #3] 수재민을 한숨짓게 만드는 두 가지 걱정

진부에 다시 오면서 가장 걱정이 됐던 정승교(80) 할머니 댁을 찾았다. 낮 12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정 할머니는 수해 때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당뇨합병증과 고혈압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던 분이다.

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고 모습을 나타낸 정승교 할머니. 다행히 할머니는 웃으며 맞아주셨다. "할머니 지난여름에 왔었는데 기억하세요? 걱정이 돼서 왔어요"라고 말하자 정 할머니는 "그럼 기억하지, 젊은 사람이 고생이 많아"라고 답했다.

할머니의 모습은 지난 여름보다 나아보였다. 지금도 당뇨합병증과 고혈압에 매일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건강은 좋지 못하지만 구호단체에서 받은 옷 때문인지 몰라도 한결 깔끔한 모습이었다.

정승교 할머니의 모습  지난 13일 만난 정 할머니(오른쪽 사진)는 지난 여름 때(왼쪽 사진)보다 건강해 보였다.
정승교 할머니의 모습
지난 13일 만난 정 할머니(오른쪽 사진)는 지난 여름 때(왼쪽 사진)보다 건강해 보였다.
ⓒ 선대식
할머니의 얼굴이 밝아보였던 건 오랜만에 누군가가 방문해서였을까, 기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할머니는 전기세 걱정부터 했다. 정 할머니는 "내년 1월부터는 전기세를 내야하는데, 30만~40만원 되는 전기세를 낼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수재민에게는 1월 중순까지만 전기세가 면제된다. 그 이후엔 직접 내야 한다. 하루 종일 전기 패널로 난방을 해야 하는 컨테이너 주택은 보통 한 달에 30만~40만원 정도의 전기세가 나온단다. 모든 재산을 잃고 수입도 없는 수재민에게는 너무나 큰 돈이다.

컨테이너 주택 문제도 할머니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정 할머니는 "이게 6개월만 임대라 내년 1월에 나가야 해"라며 걱정했다. 지난 여름 취재 때 할머니는 빚을 져서 집을 짓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러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할머니는 "살아봤자 얼마나 산다고…"라며 말을 흐렸다.

"정부에서 설마 어르신들을 거리를 나앉히겠냐"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김성옥 마을 대표를 찾아갔다. 김성옥씨는 "어르신들의 걱정은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 말에 다소 안심이 됐다. 김씨는 "정부에서 설마 어르신들은 거리를 나앉히겠냐"고 내게 반문했다.

이에 대해 최근익 평창군 주택복구팀장은 "컨테이너 주택은 기한이 완료됐다고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세에 대해서도 최근익 팀장은 "한전과 상의 중"이라며 "잘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어느 정도의 전기세를 지원해주는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평창으로 떠난 건 취재 때문이었지만 취재수첩보다는 가슴 속에 더 많은 것을 채우고 있었다. 힘들게 겨울을 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무덤덤한 취재를 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오후 1시, 무거운 마음으로 컨테이너 주택 단지를 떠나 수해 현장인 하진부6·9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또 다른 수재민들과 걱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수해의 흔적  강변체육공원 인근에는 지난 7월 수해 때 떠내려 온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지워지지 않는 수해의 흔적
강변체육공원 인근에는 지난 7월 수해 때 떠내려 온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 선대식

덧붙이는 글 | 선대식 기자는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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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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