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판소리축제(대표 안숙선)가 비주류 예술장르에 희망을 제시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이틀간 열린 판소리축제 둘째 날(15일)에 공연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없는 두 관객이 한 데 어우러진 데서 그 희망을 확인했다. 판소리 애호가와 무용애호가들은 판소리와 무용이 결합된 공연에 환호를 보냈다.
전날 ‘판소리1050’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안숙선 명창을 중심으로 판소리 흥보가를 세대별로 나누는 흥미로운 소리판을 선보였던 판소리축제는 판소리와 무용과의 결합을 통해 ‘듣는 판소리에서 보는 판소리’로의 변화를 꾀했다. 그것은 비단 무대 위의 공연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객석 또한 판소리와 무용을 좋아하는 관객이 서로에게 다소 낯선 장르를 감상하게 된 효과를 거두었다.
이날 공연을 통해 달오름극장에는 세 부류의 관객이 객석을 채웠다. 판소리와 현대무용, 발레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와 함께 판소리를 들으며 깜짝 놀라는 모습들이었다. 이색적인 공연에 흥미를 가지고 왔다는 한 관객은 “솔직히 무용은 자주 보러 다녔지만, 판소리는 너무 어려워 공연장을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무용과 함께 보니 판소리도 잘 이해되고 무용도 이해하기 좋았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한국사회에서 비주류 장르로 전락한 순수예술분야의 가장 큰 고민은 스스로의 예술적 발전보다는 관객개발이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판소리축제는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춰 판소리와 인근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하고 그것을 비주류연합이라고 명명하였다. 비주류연합은 순수예술의 활로에 대해 희망적 요소를 제시하였다는 것이 판소리축제를 지켜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이날 공연은 판소리 적벽가와 현대무용의 만남인 ‘적벽가-불타는 적벽’부터 문을 열었다. 국립창극단 오민아 씨가 적벽가 중 군사설움, 적벽대전, 새타령 대목을 불렀고 김성한 세컨드네이처무용단 13명이 주로 군무를 중심으로 춤을 구성했다. 흔히 무용공연이 녹음된 것을 쓰는 반면 판소리축제의 공연은 모두 생음악을 배경으로 진행됐는데, 특히 적벽가 연주자 4명은 무대에 마련된 또 다른 무대에서 연주하여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전통적으로 공연예술은 기본적으로 가무악(歌舞樂) 일체인 것으로 판소리축제는 전통에 근간 하는 공연이므로 현대무용이라는 낯선 장르와 만남에도 원칙을 지켜나가고자 했다. 적벽가의 경우, 판소리를 부른 오민아가 특정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적인 극의 진행에 따른 변화를 보여줌으로 해서 춤을 추지 않았음에도 마치 춤을 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적벽가는 노래와 춤과 연주가 잘 어울린 공연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안무가 김성한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판소리 적벽가를 처음 접했다. 판소리의 원형을 지켜야 한다는 주최측의 요청도 있어서 적벽가를 이해하기 위해 삼국지를 다시 읽었다”라면서 “판소리 적벽가 속에서 반전 상생의 이미지를 살리고자 했다”고 안무 취지를 밝혔다. 적벽가는 이번 공연을 위해 적벽가를 현대음악터치로 김성국이 새로 작곡해 피아노, 아쟁, 대금, 퍼쿠션이 연주에 사용됐다.
판소리를 부른 오민아는 “이번 공연은 힘들었지만 보람이 남는다.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연습 때마다 노래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고 지난 부분들을 춤을 통해서 느끼게 됐고, 색다른 경험이 됐다”고 했다.
한편 중간휴식 없이 넘어간 2부에는 판소리 춘향가와 발레가 만난 ‘판소리 발레춘향-사랑 그리고 이별’이 이어졌다. 이 공연 역시 국립창극단 이연주와 김선희 발레앙상블이 무대에 섰다. 국악가무악단체인 가무악코리아 지휘자 이상균이 편곡한 발레 춘향은 현대무용과는 조금 달리 판소리사설(가사)을 충실하게 표현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판소리와 고전발레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안무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김선희 교수는 “판소리에 발레를 더하는 정도로 이번 작품의 경계를 정했다”면서 “외국인과 어른 세대들에게 독특한 소재로 다가서는 보는 판소리, 듣는 발레가 될 것이다” 고 했다.
작곡가 이상균으로부터 요절한 천재소리꾼 안향련의 성음이 엿보인다는 극찬을 받은 이연주는 아직 서른이 안된 젊은 소리꾼으로 "젊기 때문에 색다른 공연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는 이연주는 "발레춘향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다"고 즐거워했다.
판소리축제가 지향한 비주류연합은 아직 확실한 성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루만의 공연이었고, 또 아직 한번의 시도이기에 향후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과학적인 데이터를 축적했을 때 비로소 확정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듣는 판소리에서 보는 판소리로의 발전 가능성만은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판소리는 본래 민중 속에서 발로된 예술로써 발생과정 속에서 다른 음악, 문학(구비문학적)과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현대에 이르러 서양예술과 결합을 시도하는 것은 어색한 일은 아니다. 특히 국내에서 활로를 찾기 어려운 국악의 경우 오히려 해외 문화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경향이 최근 생기고 있는데, 판소리와 무용과의 하이브리드 결합은 서구시장에 다양하고 친숙한 접근방법이 될 수도 있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