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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아침엔 소리가 사라져 버려요. 이 세상 같지 않은 고요함이 느껴지죠.
눈 내린 아침엔 소리가 사라져 버려요. 이 세상 같지 않은 고요함이 느껴지죠. ⓒ 이승숙
눈은 내릴 때는 낭만이지만 나중엔 고통이 되죠

차가 많이 다니는 큰 도로는 문제가 없었다. 올림픽대로는 제설 작업을 했는지 좀 질퍽할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포를 거쳐 강화로 들어가는 48번 국도는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그런지 속도를 늦춰서 살살 가니까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는 강화에 들어와서 생겼다. 국도를 벗어난 지방도는 2차선 도로인지라 길 폭도 좁고 굽은 곳도 많다. 또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길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봤지만 자칫 잘못 하다가는 길 밖으로 미끄러져 나갈 것 같았다.

4차선 길에서는 만약 미끄러진다 해도 다른 차선으로 미끄러지기 때문에 길 밖으로 내동댕이쳐질 염려는 별로 없다. 하지만 2차선 도로에서는 미끄러지면 길 밑으로 처박히게 된다. 그래서 차를 안전한 곳에 세워두고 택시를 불러서 집으로 타고 갔다.

질경이 씨대궁이 눈 속에 꼿꼿하게 서 있네요.
질경이 씨대궁이 눈 속에 꼿꼿하게 서 있네요. ⓒ 이승숙
눈이 와서 길도 안 좋은 데다가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는지 택시가 한참 만에 왔다. 늦은 밤 시간에 택시를 부른 내가 궁금했는지 기사가 물어 온다.

"어디 갔다 오시꺄?"

기사는 강화 본토박이인지 강화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예, 서울 나갔다가 오는 길이에요. 서울은 길이 아무렇지도 않던데 강화는 도저히 안 되겠던데요. 운전하다간 큰 일 내겠다 싶어서 차를 세워뒀지요."
"그렇지요? 서울이나 큰 도시는 눈 오면 그냥 둡니까? 그냥 뒀다간 시민들 원성을 바가지로 들을 텐데…. 눈 오면 바로 바로 염화칼슘 뿌리고 제설작업 해버리죠. 집에 가시면 강화군청 홈페이지 들어가서 글 좀 남겨 주세요. 서울과 김포는 길에 제설작업 했던데 왜 강화는 안 하냐고 글 좀 올려 주세요."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인지라 사람들은 신문고 두드리듯이 불만 사항을 게시판에 올려 버린다. 그러면 즉각적인 반응이 오고 시정이 된다. 택시 기사도 그런 사실을 아는지 내게 그런 부탁을 한다.

눈 덮인 고갯길에 모래 좀 뿌려 주세요

택시 기사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골 길은 산을 넘는 고갯길도 많은데 그런 곳에는 바로 제설 작업을 해줘야 한다. 모래를 뿌려주거나 아니면 불도저를 동원해서 눈을 밀어 줘야 한다. 평지에서도 미끄러운데 하물며 고갯길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모래를 뿌렸거나 눈을 민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운전하는 데엔 도사인 택시 기사마저도 언덕을 넘을 때엔 벌벌 기면서 운전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우고개'를 넘으면서 보니까 버스 한 대가 길을 벗어나서 처박혀 있었다. 다행히 산 쪽이라서 길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반대 차선이었다면 언덕 아래로 굴렀을 텐데, 그러면 대형 사고가 날 뻔하였다.

집 안은 훈훈하지만 집 밖은 냉동고입니다.
집 안은 훈훈하지만 집 밖은 냉동고입니다. ⓒ 이승숙
시골에서 살려면 필히 운전을 할 줄 알아야 된다. 도시에서는 집 문 밖만 나서면 아무 때나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대중교통이라는 버스도 하루에 몇 번씩밖에 안 다니는 곳이 많다. 그리고 버스가 일찍 끊겨 버린다.

버스가 끊긴 시간에는 택시를 불러서 타야 되는데 요금이 많이 나온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 예를 들면 약 6킬로미터 정도 거리도 택시를 타면 요금이 7천 원 정도 나온다. 그런데 시골에선 6킬로 정도는 이웃집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10킬로를 넘어서 15킬로 이상을 택시를 타야 한다. 그러니 택시비도 만만찮게 나온다. 그래서 차를 남편용, 아내용 해서 두 대씩 가진 집이 한두 집이 아니다.

전에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한 집에 보통 차가 두세 대씩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영화 보면서 '이야, 잘 사는 나라는 한 집에 차도 저렇게 많은가보다' 했는데 그게 잘 살아서 그런 거도 있겠지만 그거보다는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다 보니 이동할 때 차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 수 따라 차를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시골도 마찬가지다. 이동 거리가 멀다 보니까 차 없이는 살기가 아주 어렵다. 그래서 남편 출퇴근용 차에다가 아내가 아이들 학교 등하교 시켜주고 또 볼일 보러 다닐 때 쓸 차를 한 대 더 장만하는 것이다.

눈아 오지 마라. 방학할 때까진 제발 오지 마라

형편이 이러다 보니까 가계 지출의 상당 부분을 기름 값이 차지한다. 차 두 대 굴리는 기름 값에다가 기름보일러 돌리는 등유 값까지 합하면 겨울에는 50만원은 기본이고 많게는 백만 원에 육박할 때도 있다.

울도 담도 다 덮어 버렸습니다. 쓰레기 더미도 눈담요를 덮어 썼습니다.
울도 담도 다 덮어 버렸습니다. 쓰레기 더미도 눈담요를 덮어 썼습니다. ⓒ 이승숙
하우고개를 겨우 넘은 기사는 "다른 데는 몰라도 이런 가파른 길은 모래를 뿌려줘야 되는데 한 번 보십시오. 우리도 이렇게 벌벌 기면서 운전하는데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길을 넘겠습니까? 하여튼 눈 오면 고통이라니까요"하면서 비로소 긴장을 푸는 듯했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속으로 빌고 빈다. '제발 겨울 방학 전에는 눈 오지 마라. 눈 오지 마라' 눈이 오면 운전하기 어렵고 그러면 많은 수의 아이들이 등하교 길에 먼 길을 걸어서 가거나 아니면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오가야 된다.

눈이 내린 뒤에 다행히 날이 춥지 않아서 길은 얼어붙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올 겨울도 무사히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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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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