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존의 노인 이미지를 벗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들. 왼쪽부터 홍 영감(<열아홉 순정>)·이순재(<거침없이 하이킥>)·남달구(<소문난 칠공주>).
기존의 노인 이미지를 벗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 인기를 얻고 있는 캐릭터들. 왼쪽부터 홍 영감(<열아홉 순정>)·이순재(<거침없이 하이킥>)·남달구(<소문난 칠공주>). ⓒ KBS·MBC·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한 인간으로서 욕망을 내비치는 일이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원초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다보면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다" 혹은 "나잇값을 해야지"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그래서 왠지 노인들은 점잖아야 하고, 욕망 앞에서는 초월한 듯 보여야 하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인의 의무라도 다하지 않은 듯 본인들 스스로 자제하는 경우가 흔하다.

@BRI@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덧 노인들도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 성의 개념에 따라, 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고 본능에 충실해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수용력이 넓어졌고, 개개인의 인권이 신장되다보니,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를 입증하듯 TV 속 노인들의 모습이 본능에 충실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새로운 노인 모델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행동에서도 범위가 넓어졌고, 그들의 캐릭터도 그저 인자하고 온화한 할아버지나, 혹독한 시어머니로서의 할머니가 아니다. 때론 귀엽고 때론 얄미운 그들이 몰려오고 있다.

더욱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캐릭터들은 중장년층의 연기자들이 연기하기 때문에 더욱더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대부분의 반응이 '귀엽다'로, 친숙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 대표적인 인물이 <열아홉 순정>의 홍 영감을 연기하는 신구와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를 연기하는 이순재, <소문난 칠공주>의 남달구를 연기하는 나문희이다.

이들의 욕망은 서로 갖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모습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신구] 노인이라고 사랑을 모르나

극중에서 '엄지여사'(가운데)를 놓고 아들과 삼각관계에 빠졌으나 결국 사랑을 쟁취한 홍 영감(맨 오른쪽). 홍 영감은 황혼의 로맨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극중에서 '엄지여사'(가운데)를 놓고 아들과 삼각관계에 빠졌으나 결국 사랑을 쟁취한 홍 영감(맨 오른쪽). 홍 영감은 황혼의 로맨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 KBS
<열아홉 순정>에서 홍 영감은 자식들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어느 정도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며느리 친구와 결혼을 감행하는 과정에서는 더욱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홍 영감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캐릭터로 자신의 인생과 사랑에 있어 어느 누구보다도 대단히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젊은이들보다도 열정적이다. 이미 극중에서는 아내를 맞이했지만 아내를 사모할 당시, 작은 아들과 경쟁하며, 치사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그녀를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펼쳐보였다.

그 과정에서 젊은 작은 아들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홍 영감이 승리했다. 그런 모습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황혼의 로맨스다. 간간이 이런 모습은 특집극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와 소재로 일일극에서 이야기 한 축을 담당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열아홉 순정>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모습으로 이야기 되었고, 이제는 시청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는 홍 영감을 연기한 신구라는 대배우가 중심에 있다. 신구의 경우 사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이미 심술궂은 할아버지 역을 하면서 이미지가 젊은 세대와 친숙해졌다는 장점이 작용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얄미울 수도 있고 주책이라고 느껴질 만큼 원초적 본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인데도 불구하고 공감을 얻어낸 것은 신구의 연기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한 아내와 며느리와 소소한 다툼에서 항상 자신의 아내 편을 들고 아내에게 질투를 느끼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가정의 할아버지기 이전에 인간인, 남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 초기 비난이 많았던 것을 공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그러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신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순재] 야동보는 할아버지... '야동순재' 별명까지 얻어

극중에서 단순한 성격의 할아버지로 나오는 이순재. 최근 방영분에서 몰래 야동을 보다 가족들에게 들키는 해프닝이 그려져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극중에서 단순한 성격의 할아버지로 나오는 이순재. 최근 방영분에서 몰래 야동을 보다 가족들에게 들키는 해프닝이 그려져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 MBC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인물이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순재 역이다. 이순재는 극중에서 대가족의 가장으로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이며 아내와 아들, 손자들에게 엄격하다. 말을 안 들으면 거침없이 하이킥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노트북에 야한 동영상을 다운 받아 흐뭇한 표정으로 보는 모습이 등장한다. 급기야 가부장적인 모습에서 180도 변신하며, 기존 이미지를 확 탈피했다. 더 나아가 그가 '야동'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장면은 나이가 들어도 성욕이 남아 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열아홉 순정>의 홍 영감을 한 발 뛰어 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기존 여타 드라마에서도 노년의 사랑을 황혼의 로맨스로 국한시켜 다루어 왔지만 노년의 성생활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 인간으로서 한층 높은 노인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극중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이며, 본격적인 노년의 성생활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직은 미완성의 단계이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의도가 사뭇 불순하더라도 새롭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한 우리 주변의 노인들을 나이라는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그 모습이 보통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엄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어 더욱더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엄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때 묻지 않은 사춘기 시절 소년의 모습도 남아있음을 새삼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문희] 있을 때 나한테 잘혀~ 후회하지 말고!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는 남달구 여사. 항상 '돌리고 춤'을 추며 "있을 때 잘혀~ 후회하지 말고"를 외친다.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는 남달구 여사. 항상 '돌리고 춤'을 추며 "있을 때 잘혀~ 후회하지 말고"를 외친다. ⓒ KBS
이 두 인물을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 <소문난 칠공주>의 남달구 여사. 그녀는 홍 영감이나 이순재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유유자적 즐기는 캐릭터로, 여성으로서 사랑받고 싶고, 부모로서 대접받고 싶은 욕망, 말년의 인생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다소 극중에서는 철없는 모습으로 등장하고는 있지만 그녀가 늘상 부르고 다니는 노래 가사 '있을 때 잘혀~ 후회하지 말고!'라는 말처럼 젊어서 부모로 살아오며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것을 보상받아야 하는 당위성과 말년의 삶을 즐겨야 하는 권리를 남달구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녀가 자식을 건사하는데 소홀해 자식인 명자에게서 볼멘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없이 자식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말한다.

"내가 살면 얼메나! 산다고~ 나 같으면 엄마! 내가~"라는 멘트를 날리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효도 받기를 원하며, 당당하게 요구하고 관철시키고자 노력한다. 또한 춤을 추며,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머니이기 전에 여성이라는 점을 표출한다.

그러면서도 남달구 여사는 늘 '쿨'하다. 카바레에서 같이 춤추던 남자들이 추파를 던지자 남달구 여사는 말한다.

"집에 부인들 있제~ 여기 나와서 실컷 재미나게 놀았으니,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겁나게 잘해줘! 사람은 질질 끌면 못써, 매력 떨어져~."

그녀는 여성이자 노년이지만 확 깨어있는 사고를 가진 모습을 선보인다.

그동안 친정어머니 하면 드라마에서 딸만 생각하면 눈물이 저절로 흐르고 딸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아파하는 그러한 지고지순한 어머니의 모습이 등장했다. 물론 남달구 여사도 마음속으로는 딸 명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모습이 방송에 나오긴 했지만 헌신하는 어머니 상과는 달리 자신의 인생을 중요시하는 모습이다.

이 점은 분명 극중이지만 이제까지 정형화된 모습에서 탈피한 새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며, 솔직한 어머니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우리는 어머니하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강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만큼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더욱이 말년인 노년에는 더욱더, 젊어서 자식을 위해 고생했으니 어느 정도 자기의 인생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남달구 여사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있을 때 잘혀 ~ 후회하지 말고!" 라고.

이 세 명의 인물이 새로운 노년의 모습을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저마다 공감을 얻고 있다. 이것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노년을 한 인간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데일리안과 e조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