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울산의 이궁로 시인이 첫 시집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을 도서출판 고요아침에서 상재(上梓)했다. 시집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집 맨 뒤쪽에 싣고 있는 '내 시를 위한 고백'이라는 시인의 산문에서 그 단서를 엿볼 수 있다.
사는 것이 부끄럽고 존재 자체가 상처였던 혼란의 1980년대, 시인은 늘 신경 안정제를 책상 서랍 깊숙이 감추고 그것으로 삶의 위안을 얻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이란 세상과의 불화에서 오는 쓸쓸함과 상처가 시인의 기억 속에 화인(火印)처럼 남아 있는 삶의 무늬이다.
짙은 안개는 가족사家族史의 표지였다.
그 첫 장을 넘기면 비탈진 산기슭 들깨 심으며 들깨 풍년들어 뱃속병 수술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던 할머니 모습. 또 한 장 넘기면 할머니 떠나가고 들깨 꽃 하얗게 피어났지만 다른 이데올로기의 길을 걸어가던 할아버지와 아비 불화의 길은 여전히 만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다. 다음 장에는 남편 얼굴을 보지 못하고 결혼한 어머니. 다음 장에는 남편 얼굴을 보지 못하고 결혼한 어머니. 생아편 삼키며 더 이상 아이는 낳지 않으려고 했으나 언제나 만삭인 어머니. 또 한 장을 넘기면 습기 찬 뒤란과 장독대 밑으로 짝을 찾지 못한 뱀이 불온한 혓바닥을 날름거릴 때 서울의 꿈을 꾸며 밤마다 피리를 부는 고모의 얼굴. 열여섯의 나이로 성장을 멈추어 버린 임로야. 너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니? 뒷산에서 밤마다 부엉이는 울고 꽃 지는 자리마다 새들은 날개를 펼쳤지만 배경은 언제나 안개뿐이다.
그대. 이 사진 앞에서 누구나 한 시절의 아픔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마라. 서 있는 땅이 모두 가시였던 시절이 저 안에 있으니, 손에 들꽃을 들었지만 늘 이마 찡그리고 서 있는 계집아이는 아직 인화되지 않은 채 안개 뒤편에 서 있다.
- '가족사진' 전문.
어린 시절에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통해 이궁로 시인은 그의 힘겨웠던 삶의 가족사(家族史)를 훌륭히 복원해내고 있다. 인용한 이 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다 지우고 있는 짙은 안개가 가족사의 표지였다, 라는 단정형의 진술로 시작되고 있다. 위 시에서 서술되고 있는 신산(辛酸)스럽고 불우한 가족사의 이력(履歷)이 이궁로 시인의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을 구성하고 있는, 다시 말하면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내면의 상처를 이루고 있는 질료들이다. 인화되지 않은 채 안개 뒤편에 서 이마 찡그리고 서 있는 계집아이, 이궁로 시인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이궁로 시인은 "어차피 삶 자체가 유배인 것"이어서 "견뎌냄이란 오래도록 상처를 보듬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궁로의 첫 시집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은 삶의 상처를 오래도록 보듬고 견뎌온 그 내면의 무늬를 슬픔의 언어로 한 장 한 장 인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궁로의 시를 두고 안도현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궁로 시인의 시는 슬픔의 열매 같다. 그 슬픔을 한 입 깨물어보면 시집의 제목처럼 '만질 수 없는 슬픔의 안쪽'이 보인다. '언젠가,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듯 시인은 시를 기다리며 슬픔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고 말을 끊고 중얼거리듯 이어지는 '…는데'라는 아득함의 길이다. 유년과 가족과 가정의 뒤편에 서 있는 그녀의 초상은 슬픔의 시안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긴장이 끊어지지 않고 우리를 몰입의 세계로 이끈다."
나는 그의 첫 시집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 4부를 주목해서 읽었다. 슬픔의 열매를 직접적으로 노래하기보다는 경주의 신라 유적과 삼국유사의 기록들을 시의 제재로 빌려와 생(生)의 심연을 노래한 작품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에밀레종 소리를 보다' '만파식적-감은사지에서' '그때-제망매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내' 등의 작품이 갖고 있는 시적 형상화는 빼어나다.
빈 절터 가득 풀은 키를 높여도
천년 세월 막막하게 길어도
동해의 물길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아도
신라 사내가 된 탑은 직립의 세월이 서럽지 않다
소리를 앉고 찾아오는 여인은 만파식적이 되어
제 몸에 소리의 구멍을 열고
동해 불결 따라 높고 낮은 소리 내며
탑 속을 휘돈다
달아오른 탑은 스스로 불 밝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둥근 달과 함께
동쪽바다 가장 먼 곳까지 찾아가
사랑의 노래를 전하는 것이다
-'만파식적-감은사지에서' 부분.
시인 이궁로는 자신이 시를 향해 걸어간 곳, 그곳이 타클라마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막 한 가운데를 벗어나 누란(樓蘭)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한다. '만질 수 없는 삶의 안쪽'과 누란(樓蘭)을 향해 모래바람 일렁이는 사막의 길, 시인의 길을 걸어가려는 이궁로 시인에게 응원의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 길이 "가도 가도 좁혀지지 않는 길/ 길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달아"('가을, 그 긴 길') 나는 길일지라도 그는 꿋꿋이 걸어갈 것이다. 그것이 시인이라는 천형(天刑)을 타고난 그가 가야할 길임을 잘 알고 있기에.
덧붙이는 글 |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