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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이런 때도 있었는데 (며느리 딸과 함께 하신 외할머니)
그 옛날, 이런 때도 있었는데 (며느리 딸과 함께 하신 외할머니) ⓒ 조명자
엄마가 모처럼 친정 나들이를 하고 오셨다. 올 해 구순이 되신 큰 올케 그러니까 내게는 큰외숙모 님이 되시는 어른의 생신에 다녀오신 것이다. 4남3녀, 칠 남매 형제 중 딸 셋과 큰외숙모 님만 남고 몽땅 돌아가셨으니 4형제 부부 8명 중 결국 큰외숙모 혼자 대표주자로 남은 셈이다.

@BRI@16살에 시집 와 50대 중반에 남편을 떠나보냈으니 홀로 사신 세월이 반 백년에 가까워 온다. 아흔 살을 잡숫도록 지팡이도 없이 노인정을 왕래하시고, 정신 총총하실 정도의 건강이시니 복이 아주 없으신 편도 아니건만 외숙모는 엄마 손을 붙잡고 눈물을 보이셨단다.

“늙은 것이 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해요. 자식이 칠순이 되었으니 저희들도 늙은이 대접받고 살 나인데… 맨날 늙은이 치다꺼리하느라고 편히 살아보지도 못하고….”

딸, 사위. 자식 넷 앞세우고 당뇨다 고혈압이다 당신보다 병을 더 끼고 사는 큰아들이 마음에 걸리셨던 탓에 오래 사시는 것이 염치없고 미안하셨던 것이다. 외숙모님 말씀을 전해 듣다 보니 몇 년 전 외사촌 오빠가 술김에 토해놨던 넋두리가 생각난다.

“정말 속상해 죽겠어. 아, 딸년이 둘씩이나 그것도 서른이 넘은 것들이 시집 갈 생각을 하나? 노인네는 저러고 계시는데 며느리라는 건 아파 죽는다고 난리를 치고. 내가 수십 년 갖다 바친 돈 반절도 못 받아요. 허! 반절이 뭐야. 3분지 1이나 들어오면 다행이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한 오빠. 그 동안 쏟아 부었던 경조사비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 것이다. 하기야 오빠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할까? 십 수년간 공무원으로 재직할 동안 셀 수 없이 찾아다녔던 동료들의 애경사. 그렇게 뿌린 돈이 얼마건만 이제 퇴직을 한 처지니 받아먹을 일이 난망해진 것이다.

빡빡한 살림에 뭉턱뭉턱 빠져나가는 경조사비. 다 아는 처지에 연락 받고 시치미 뗄 수도 없고, 형편이 좋지 않다고 평균 액수에 절반으로 툭 분지를 수도 없고. 이래저래 경조사비만큼 ‘준조세’ 성격을 띤 돈도 없을 텐데 다시 받을 희망이 없다면 얼마나 속이 쓰리겠는가.

경조사비 들고 다니면서 이런 말 하기는 낯간지럽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경조사비가 곧 ‘적금’이다. 다른 사람 애경사에 정성을 보탰으면 내 애경사에도 그만큼 되돌아와야 함은 당연한 일. 그러나 아무리 자기 애경사에 부조를 했더라도 퇴직한 옛 동료 애경사까지 성의 있게 챙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퇴직금 받은 것 곶감 빼먹듯 쓰다 보니 오빠네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러나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은 늙은 남자들을 받아줄 일자리가 있겠는가. 오빠는 쌓이는 울화를 술로 풀었다. 그 때마다 화살은 서른 넘도록 시집 갈 생각을 안 하는 두 딸년에게 날아갔지만 구십이 되도록 돌아가실 생각을 않는 어머니의 자리도 오빠에겐 고통이었을 것이다.

“너무 오래 살아 자식들에게 미안한” 부모의 마음, 외숙모의 눈물이 가슴 아프다. 장수하시는 부모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복’일 텐데 그 ‘복’을 고통으로 밖에 느낄 수 없는 오빠의 박복함은 더더욱 가슴 아프다. 알면서 행할 수 없는 ‘인간의 도리’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는 이 풍진 세상에서 다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는 못해줄망정 소금을 뿌리는 잔인함만은 조심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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