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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상큼하다. 어찌 이렇게 감칠맛이 날까."
"캬~예술이네. 안 되겠다. 라면 끓여라!"
"이건 막 지은 밥에 얹어서 먹어야 되는데, 밥 할까요?"
오늘(22일) 오후 사무실로 배달된 한 통의 소포 때문에 한창 조용하게 근무하던 사무실이 들썩거렸다. 군것질거리가 생각나는 오후 4시, 직원들은 앞다퉈 시장함을 달래느라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내 앞으로 온 소포 상자를 보며 "뭐지? 누가 보냈지?"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잠시였다. 보내는 분의 성함 '똑순이 식품'에 이어 보낸 주소 '여수시'를 보고 바로 한 녀석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었다. 친구는 다짜고짜 내게 "사무실 주소 좀 불러봐"라고 물었고, 난 "뭘 보내려고?"라는 당연한 물음도 생략한 채 아무 생각 없이 그에 응했다. 그런데 오늘 보내 온 것은 친구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그 이름도 유명한 '여수 갓 김치'였다. 그것 참, 유부남이 총각을 위해서 김치를 보냈다는 거야? 지금?
연인 없는 난, 소주잔 기울이며 긴 겨울밤 이겨내야 하나?
@BRI@사흘 후면 크리스마스. 예수를 믿건 안 믿건, 서양의 기념일이든 아니든, 연말에 자리 잡은 크리스마스는 나누고 베풀 수 있어 좋은 날이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한 아름 가득 안을 수 있고, 청춘남녀들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연애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가족들은 오순도순 모여 앉아 긴 겨울밤 내내 웃음꽃을 피우겠지.
그럼, 연인도 없는 나 같은 총각은 어째? 그저 속절없이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이나 기울이면 긴 겨울밤을 이겨내야 하는 거야? 그런 거야? 그러고 보니 연애를 하지 않았던 지난 몇 년간 나는 크리스마스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었다. 그러니 선물은 무슨 놈의 선물, 구경 못한 지 한 참 됐다.
그런데, 오늘 그 선물타령을 멈추게 됐다. 친구가 보내 준 갓 김치 때문에. 이거 웃어야 해? 말아야 해? 친구 어머니의 정성만 아니었으면 화도 내고픈데, 참아야지 별 도리가 없다.
한 참 글을 쓰고 있는데 사무실에선 "라면 끓여? 밥을 해?"하며 한 동안 고심을 하던 우리 팀장님 2분이 기어코 밥과 라면에 갓 김치를 곁들여 맛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곤혹스럽다. 라면과 막 뜸을 들인 새하얀 밤 냄새에 향긋한 갓 김치의 유혹이 더해져 저녁 약속이 있는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다. 사실 그 약속도 그 친구와 한 것이니, 이 녀석이 약을 먼저 주고 병을 주는 셈이다.
코로 들어오는 냄새도 참기 힘든데 잘 버무려진 갓 김치의 초록빛깔은 눈까지 어지럽힌다. 게다가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니 입에서는 속절없이 군침이 감돌 수밖에. 그냥 저녁 약속을 포기해 버려? 그래도 할 말은 있잖아?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말이야.
현재 시각 5시 35분, 소포를 받은 지 2시간 정도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갓 김치에 밥을 먹어 말아' 심히 고민 중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고민이 제법 심각하다. 아흐.
뱀꼬리 : 소포를 보내 온 친구는 <오마이뉴스>에서 만나게 된 김용국 시민기자이다. 이동환 시민기자가 마련한 자리에서 알게 됐는데, 따져보니 동갑내기이기에 말을 놓고 친구로 지낸다.
얼마 전에는 김용국 시민기자가 근무하는 조직 내에서 모 선거가 있었다. 당시 김용국 시민기자는 선거본부에서 사무국장을 맡았고, 나는 회사에서 선거본부의 홍보물을 제작해 주며 새벽까지 함께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욱 친해졌는데(나만의 생각?) 선거가 끝나자 김용국 시민기자가 돈도 많이 못 주는데 고생했다며, 계속 술 한 잔 하자고 그랬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는데, 기어이 총각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웬 갓 김치냐고!
사실 이런 내용을 공개하면 김용국 시민기자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나는 왜 안 줘'라는 원망이 쏟아질 테니. 하지만 어쩌랴. 난 시민기자고 쓰고 싶은 이야기는 써야 하는 걸. 그러면 이렇게 딴죽 걸겠지? 자기가 나 보다 대학교를 1년 먼저 들어간 선배라고. 아무렴 어때,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아이가? 아무튼 중요한 건, 갓 김치는 정말 예술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