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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온다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것은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산타클로스가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선물에 대한 기대는 매년 반복되곤 했다.
어머니. 노부모 두 분을 모시고 30년간 병 수발을 들어야 했던 남편과 철없는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추운 겨울날에도 시장 길바닥에서 좌판을 해야 했던 어머니. 선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부담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에 그저 동네 아이들이 받았다는 성탄절 선물을 사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은 숨길 수 없었다.
"엄마, 우리 집에는 왜 산타클로스가 안와?"
"그게 무슨 소리니?"
"아니, 다른 애들은 매년 성탄절마다 선물을 받는데 난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잖어"
어머니는 그해 성탄절을 앞두고 다락에 올라가 여름내 준비했던 고사리 등을 주섬주섬 챙겨 장보따리를 쌓고 길을 나섰다. 새벽부터 내린 눈이 신작로에 쌓여 버스조차 설설 기며 운행했던 매서운 날이었다. 겨울의 짧은 해는 어둑어둑해지는데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저녁이 됐는데 돌아오지 않으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배는 꺼져갔다.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리는 것 때문에 어린 형제는 싸우고 있었다.
'삐그덕'
육중한 나무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이미 방 앞에 올라와 계셨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한손에는 당시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주간 만화책 두 권이 들려 있었다. 어머니가 밤까지 좌판에서 장사를 하신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 형제는 엄청난 지청구(=꾸지람)를 받아야 했다. 집이 어려울수록 형제끼리 우애를 강조하셨던 어머니가 그토록 화를 내셨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던 그해 성탄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돌아보면 그날 어머니가 화를 내셨던 것은 추운 겨울 좌판을 하며 아들의 성탄절 선물을 사기 위해 고생하셨던 것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탄절은 가족간의 사랑을 되새기는 날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루하루의 삶이 피곤하고 척박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성탄절 전날 밤 되돌아보니 가슴 한 편이 따뜻해져 온다.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올해도 성탄절은 다가왔다. 오늘 내 옆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만큼이나 포스근한 한 사람이 있다. 오늘은 결혼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성탄절의 의미가 '사랑'이라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날이 아닐까? 창 밖에 눈은 내리지 않지만 내 마음에는 소복소복 흰 눈이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