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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위의 남근석
돌탑 위의 남근석 ⓒ 김대갑
우리나라에서 남(男)성기를 여(女)서낭에게 봉납하는 '성제의'가 많이 행해진 곳은 동해안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을 꼽으라면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와 삼척시 신남면 갈남리, 그리고 강릉시 안인진리 등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들 제의가 경제적인 사정과 농어촌 해체 등에 의해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안인진리의 '성기 봉납'은 지난 1980년대 초반에 일찌감치 단절되었다. 문암리의 성제의는 3~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별신굿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별신굿 자체가 잘 열리지 않기 때문에 거의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삼척시 갈남리에서만 '해신당'과 '성민속박물관'이라는 장치에 의해,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변모한 성제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전통적인 의미의 남성기 봉납 제의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RI@남성기를 봉납하는 이유는 여서낭의 주인이 '손각시'라고 불리는 처녀귀신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은 음양의 결합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불완전한 존재이다.

또한 많은 원한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위험한 존재에게 목제로 만든 남근, 일명 '각좆'을 바쳐서 사후에라도 운우지정을 맛보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바라는 민초들의 소박한 심성이 숨어 있었다. 어찌 보면 해학적이면서도 지극히 말초적인 제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라는 마을에 가면 남성기를 봉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남성기를 신으로 모신 서낭당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우람한 남근석이 불끈 불끈 솟아 있어 지나가는 이방인들에게 기이함과 별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돌탑에 뿌리 박은 남근석
돌탑에 뿌리 박은 남근석 ⓒ 김대갑
서낭당의 남근석은 돌무리에서 일직선으로 삐죽 솟아나온 모습이다. 널찍한 마당의 입구에 자리 잡은 우람한 남근석은 팽팽한 힘줄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또 어떤 남근석은 뭉툭하게 생긴 것이 마님을 사랑하는 돌쇠를 연상시키고, 어떤 남근석은 서낭당 남근석의 복제판이다. 도대체 이 마을에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남근석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을까? 또 마을 사람들이 보란 듯이 집의 입구에 남근석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제비리는 남대천 남쪽 칠봉산 밑자락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형국이 꼭 제비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제비리에는 윗회산, 등고개, 개화대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중에서 윗회산이 가장 위쪽에 있는데 이 마을에서만 남자성기를 수호신으로 모신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의 주된 농작물이 '마늘'이라고 한다. 강장제로, 정력제로 널리 알려진 마늘! 이 마늘이 남성기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윗회산의 특용작물인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냄새가 난다.

초라해 보이는 숫서낭
초라해 보이는 숫서낭 ⓒ 김대갑
윗회산의 남근석이 위치한 서낭당은 말이 서낭당이지 돌무더기 터에 불과한 곳이다. 개울가의 큰 나무 밑에 마치 짓다만 담벼락 같은 돌무더기가 있다. 이 돌무더기 위에 일자로 곱게 뻗은 바위가 바로 마을의 수호신인 숫서낭인 것이다. 무심코 보면 기다란 바위하나가 돌무더기위에 비죽 솟아 나왔을 뿐이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사당치고는 무척 초라한 모습이라 적잖이 실망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숫서낭이야 말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가 와서 마을 전체가 홍수로 떠내려갔을 때도 이 서낭당과 남근석만은 아무런 화를 입지 않았다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그만큼 영험하다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남근석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남근석 ⓒ 김대갑
남성기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 일본만 해도 남성기를 신체로 모시는 신사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전부터 남근석을 문지르거나 숭배하면 아들을 점지해준다고 믿었다. 남근이 지니는 생산력과 돌이 지니는 항구성이 결합되어 불완전한 인간에게 신앙적 대상물로 격상된 것이다.

혹자는 남성기가 신앙의 대상으로 된 이유를 유교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한다.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남성중심주의가 정착된 이후 남근석 숭배 사상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근석은 불경스럽고, 외설스러운 존재로 비하되고 말았다.

제비리에서 남근석을 수호신으로 모신 이유도 이런 전통적인 습속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추론한다면 마늘을 특용작물로 재배한 마을의 경제적인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껍질을 깐 마늘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는데, 그 부드러운 곡선이 꼭 여성의 나체를 연상시킨다. 또한 둥그렇고 매끈한 속살은 여성의 요염한 엉덩이나 젖가슴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낭당 남근석 복제판
서낭당 남근석 복제판 ⓒ 김대갑
그래서 마늘이라는 음기를 다스리기 위해 남근석이라는 양기를 일부러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남근석을 세움으로써 강장제인 마늘의 효능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내밀하게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양기는 언제나 음기에 둘러 싸여 있으며, 음기에 의해 그 신체가 온전히 덮일 때 최고의 생산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마늘이라는 음기로 가득 찬 마을에 외로이 솟아 있는 남근석. 그의 고군분투(?)에 그저 경의를 보낼 뿐이다.

밖으로 솟아있는 높이 약 100cm, 돌무더기에 묻힌 것까지 합하면 약 150cm, 그리고 둘레는 약 60cm인 마을의 수호신인 남근석. 생겨난 연유야 어찌 되었든 제비리 윗회산의 남근석은 마을의 재화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골맥이 할배’이자 ‘수구막이’이다. 보기에는 초라하고 가치 없게 보이지만 그 속에 깃든 민초들의 염원은 세세연연토록 이어질 것이다.

뭉툭한 남근석, 돌쇠야!
뭉툭한 남근석, 돌쇠야! ⓒ 김대갑
마을에서는 이 남근석을 신체로 삼아서 봄과 가을에 고청제(告請祭)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가을에만 고청제를 올리며, 성황신과 토지신, 여역지신을 함께 모신다고 한다. 이 남근석에도 기자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 탑에 치성을 드리고 난 후 바위를 안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제비리에는 이외에도 칠봉산 등산로에 가면 ‘여근석’이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여근석에는 열십자가 그어져 있는데, 이 모습 때문에 ‘열바위’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십바위가 아닌 열바위인 것이다. 열가지 소원도 들어주는 바위라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해안가에서는 남성기를 봉납하고,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남성기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곳. 성산면 위촌리라는 곳에 가면 개의 성기를 닮은 바위와 그 바위를 바라보는 여근석이 있다는 곳. 명주 혹은 아슬라라고 불리던 신비의 땅, 강릉. 참으로 흥미진진한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씨앤비에도 송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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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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