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인생 전체는 하나의 구유입니다. 그 구유에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말로는 좋아하지만 삶으로는 싫어하는 사랑과 자비, 나눔과 희생, 정의와 평화일까요? 아니면 말로는 싫어하지만 삶으로는 좋아하는 시기와 질투, 불의와 타협, 돈과 권력, 불신과 전쟁입니까? 저승으로 가는 날 내 이승의 구유에는 무엇이 가득할까요?
인생은 하나의 구유입니다
우주는 하나의 마구간
인생은 하나의 구유입니다
어떤 나무도 거부하지 않는
그 산처럼 구유가 되고 싶습니다
어떤 씨앗도 푸르게 키우는
저 들처럼 구유가 되고 싶습니다
낮추인 육신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큰 바다처럼 구유이고 싶습니다
썩어서 향기로운 산 구유의 거름
죽어서 탐스러운 들 구유의 꽃들
녹아서 보이지 않는 바다 구유의 소금
산 들 바다 우주는 당신의 마구간
태초의 말씀이 들어온 사람은 구유
세상을 향한 사랑이 구원을 맞이하는 마구간
가난한 이웃을 향한 연민이 영원한 생명을 보듬는 구유입니다
가난한 내 구유에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당신의 구유에 내 영원히 숨 쉬고 싶습니다
구유처럼 편안한 성탄과 새해,
아기 예수의 달덩이 미소가
가득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성탄은 기다림입니다. 아이들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선물을 기다리고, 어른들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기다립니다. 우리 성당은 반원들이 모여서 대림환에 초를 밝히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반은 매일 밤에 모여 기도하고 배정된 성서말씀으로 성극을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구유와 추리를 장식하는 자매님들과 형제님들의 모습에서, 성탄 예술제를 준비하는 초중고 아이들의 모습에서 기다림은 무르익어 갔습니다.
초라한 마구간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의 성탄은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서로 기쁨을 나누는 시기가 아닐까요? 병원에 근무하는 고교동창생이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라며 쌀 40kg짜리 열 가마를 보내왔습니다. 모악산 대원사 주지스님은 성탄축하 동양란 화분을, 서울에서는 한 교무님이 서양란을 보내왔습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의 진리는 서로 통하는 길임을 동서양의 꽃들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탄은 안쓰러움이 아닐까요? 초중고 아이들을 보면서 그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기적의 마구간' 유치부 아이들의 춤과 재롱은 성탄의 설렘과 기쁨을 온전히 보여주었습니다. 행복 그 자체였다.
"몇 번 더 연습할까요?"
"세 번요! 다섯 번요! 열 번요! 열 번요!"
"성탄특별간식으로 통닭과 김밥과 오뎅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열 번 연습할 거예요?"
"열 번요! 열 번요!"
아이들은 반복된 연습을 싫어하는데, 이처럼 성탄은 상식을 초월한 기쁨인가 봅니다.
두 줄로 연습하는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 간격이 너무 좁아서 율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조립식 성당 폭이 2m만 넓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제대 앞 의자가 2개만 없었으면 아이들이 세 줄로 연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식당으로 쓰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성탄 예술제 연습을 하는 중고 아이들의 상황도 같았습니다. 성당이 좁다고 비닐하우스가 춥다고 불평하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는 유치부와 초중고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탄의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어른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5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에 한 반씩 배정되었습니다. 많게는 20명의 반원들이 서거나 바닥에 앉아서 성탄예술제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조립식 작은 성당이지만 반별로 성극을 하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성탄예술제는 행복만점의 잔치였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 처녀인 제가 남자를 모른디 어떻게 애를 밴 다요?"
"하-하-하"(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폭소)
"아야, 긍게 성령으로 말미암은 일 이제. 애를 밸 거여 말 거여?"
"하-하-하"
"어쩌그써요. 이미 애를 배 부렸는데."
"그려 그것이 순명이제!"
"돌리고 돌리고 있을 때 잘 해."(반원들이 함께 춤을 춘다)
"가난한 이웃에게 잘 해!"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먼 일이 대요. 제가 세례를 받아야 허는디."
"요셉씨 플래시 좀 잘 비춰요!"
"하-하-하"
1부가 끝나고 유치부 아이들의 기적의 마구간 율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치부 아이들의 재롱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중고 아이들의 율동에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어른들의 얼굴에 함박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연예인들에게 열광하는 청소년처럼 자기 아들딸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부모들.
성탄전야 미사 공지사항시간에 성탄예술제 시상식과 초중고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오늘 밤은 돼지김치찌개가 준비되었습니다. 내일 성탄 미사 후 점심 메뉴는 탕수육입니다. 두 개 본당의 신자들이 성탄선물로 고기와 소스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중고 아이들과 엄마들이 수고해 주실 것입니다. 내일 오전 미사에 나오셔서 60세 어르신들은 신부님이 준비한 성탄 선물 목도리 하나씩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미사 후 유치부 아이가 제대 앞에 마련된 구유 앞에 쪼그려 앉아 아기천사처럼 종알거립니다.
"아기 예수님이 귀엽네!"
"예수님 내년에도 또 오세요! 내년에는 예쁜 인형을 선물 받고 싶거든요."
자정이 넘은 시간, 마당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신자들과 먹는 돼지김치찌개에 밥 한 술, 소주 한 잔에 '카-!' 그 맛을 누가 알리요. 그 맛을 찾아 서울에서 내려온 자녀들.
2006년 성탄의 가장 큰 선물은 초등부 아이들의 율동, 기적의 마구간이었습니다. 그 가사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손에서 드넓은 우주에서 수많은 별 중에 지구에서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에서 마구간에서
이 천년 전에 구유아기 예수님 낮은 자로 탄생하셔서
사랑 주시러 나를 구원하시려 오늘 내 맘을 두드리네
성령님에게서 성모님 품속에서 기적의 임마누엘에서
열두 사도에게서 성인들에게서 오늘날 신부님에게서
영원 사랑 평화 내려주시니 나의 마음 두렵지 않죠
세상 그 누구보다 세상 그 무엇보다 주님 날 사랑해요
기적의 마구간 기적의 마구간 세상의 빛 되어 오신 그 곳
기적의 마구간 기적의 마구간 세상의 희망 시작된 그 곳
이제는 제가 세상 천사가 되어 주님 품에 달려갑니다
사랑합니다. 예수님, 하느님 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