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함박눈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바로 창밖에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바로 창밖에 있었습니다. ⓒ 김관숙
성탄 미사를 보고 나온 사람들 속에 끼여 성당 마당에 마련된 마구간 구유 앞에서 기도를 하고 나서 남편과 같이 성당 마당을 나서는데 젊은 엄마인 이웃이 뒤따라오며 말했습니다.

"형님, 뭐 하나가 빠진 기분 안 드세요?"
"글세, 혹시 하얀 눈?"
"맞아요, 하얀 눈이 펑펑 왔음 좋겠어요. 그럼 딱인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BRI@역시 저학년 초등학생을 둔 젊은 엄마입니다. 그 이웃은 이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와야 해요"하면서 아쉬워하는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도 자식들이 어렸을 때는 자식들의 눈높이로 사느라고 성탄절 하면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과 산타 할아버지, 선물, 카드,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순서로 떠오르고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늘그막을 사는 지금은 성탄절 하면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만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가만가만 흔들리고는 합니다. 가슴 속에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는 소리가 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이 흰 눈 가지에 싸여 있습니다.
성당이 흰 눈 가지에 싸여 있습니다. ⓒ 김관숙
오늘 역시 미사 중에 다 같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는데 가슴이 가만가만 흔들렸습니다. 그러면서 구유에 아기 예수에게 한 번 더 경배를 드리고 싶고 한 번 더 기도하고 싶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내 디카 속에는 눈 풍경이 여러 장 담겨 있습니다. 함박눈이 쌓인 지난 17일 아침에 푹푹 운동화 발을 빠져가면서 디카로 우리 동네 풍경들을 찍어 두었습니다.

노랗게 아름답던 은행나무 길이 흰 옷을 입었습니다.
노랗게 아름답던 은행나무 길이 흰 옷을 입었습니다. ⓒ 김관숙
산수유 열매가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산수유 열매가 눈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 김관숙
한 폭의 그림입니다. 나도 그 길을 걸어가 보았습니다.
한 폭의 그림입니다. 나도 그 길을 걸어가 보았습니다. ⓒ 김관숙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디카 속에 눈 풍경들을 컴퓨터에 띄워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함박눈이 만든 멋진 크리스마스트리도 있습니다.

남편이 그 사진을 보고 "와∼ 거 참 좋네, 멋있어!" 합니다. 우쭐해진 나는 계속해서 다른 사진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다른 사진들은 별로인지 더는 말이 없더니 슬며시 방을 나가 버립니다.

집안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안 하고 산지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자식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식들이랑 둘러앉아 색종이와 반짝이 종이들을 예쁘게 오리고 접고 뭉쳐서 별도 달도 만들고 방울이며 등도 만들면서 재미있어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사온 작은 트리에 장식을 하고는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줄 카드와 선물은 아이들 모르게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아예 트리를 장만하지 않았습니다. 달랑 카드 한 장과 선물만을 아이들에게 주고는 했는데 아이들이 그러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서 휘황한 크리스마스트리며 분위기를 만끽하다가 보니까 집에서 만든 것은 시시해져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성탄절인 오늘, 집안에는 여전히 크리스마스트리는커녕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무엇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와도 카드도 주고받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아침밥을 먹으면서 남편과 병원을 자주 가는 이웃 어르신을 걱정하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어르신 미사에 나오실까?"
"나오시겠지, 성탄절인데. 요샌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던데."

작년 성탄절 전날에는 남편이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들어왔었는데 올해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단 음식을 안 먹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 이유를 알면서도 공연히 섭섭합니다.

나는 함박눈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사진을 하루종일 화면에 띄워놓기로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싶어졌습니다.

그 사진을 한참 보고 있자니까 지금 창밖에는 눈이, 함박눈이 펑펑 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탄 가톨릭 성가 모음 테이프가 생각났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부터 '하늘 높은 곳에 영광'까지 들어 있습니다.

먼저 함박눈이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사진을 화면 크기로 확대를 해 놓습니다. 이제 성탄 성가 모음 테이프를 찾아 그 노래들을 흐르게 하면 성탄 분위기가 집안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 분위기에 흠뻑 젖은 나는 아마 또 가슴이 작게 흔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잊지 못할 이런저런 아름다운 추억들도 떠오르면서.

그런데, 그런데 테이프 상자에서 그 테이프를 찾아서 막 손에 들었는가 할 때입니다.

"어, 뭐해? 거, 점심 어떻게 된 거야? 감자수제비 먹는다구 했잖아?"

남편의 큰 목소리가 산통을 깼습니다. 나는 피식 웃다가 테이프를 놓고 돌아섰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