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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07 2월22일상' 수상자로 강인춘 김보성 김용국 김은식 김현자 문만식 박철현 안윤학 윤새라 이정근 이태경 이화영 최종수 등 13명의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2월22일상'은 <오마이뉴스> 창간일을 기념해 지난 2002년 제정된 상으로, 한 해 동안 꾸준히 좋은 기사를 송고한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2월22일상' 시상식은 <오마이뉴스> 창간 7주년 기념식(2007년 2월22일)에서 치러지며,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30만원, 부상을 드립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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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풍 진 자리에 '윤풍(?)'뜨다
[2007 2월22일상⑩] 미국통에서 러시아통으로, 윤새라 기자
2005년 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을 때, 세계 곳곳에서 함께 분주하게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오마이뉴스>의 해외통신원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 거주하던 해외통신원들은 각국의 줄기세포 권위자 취재에 열을 올렸다. 국내보도가 너무 비이성적으로 흘러간다는 게 이들을 움직인 이유였다. 미국 인디애나에서 유학 중이던 윤새라(35) 기자도 황우석 폭풍에 뛰어들었다.
"'황우석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란자 박사에게 접촉했는데 바로 연결이 안 돼서 우선은 뉴욕 본사를 통해 인터뷰 요청을 넣었다. 요청을 전해들은 란자 박사가 곧바로 나에게 전화했는데 정작 내가 전화를 못 받았다. 그랬더니 란자 박사가 몇 번이고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까지 접촉했던 취재원 중 가장 '화끈'했다."
덕분에 윤새라 기자는 황우석 박사의 강력한 라이벌이자 당시 국내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던 란자 박사를 독점 인터뷰할 수 있었다. 지난 2002년 잡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의 표지 기사로 실린 란자 박사를 봤을 때는 직접 인터뷰를 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며, 꽤 유쾌한 경험이었음을 비친다.
윤 기자는 이어 <사이언스> 부편집장 인터뷰를 비롯해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취재를 도맡았다. 어느덧 황풍은 잠잠해졌지만 '윤풍'(?)은 2006년까지 이어졌다. 윤새라 기자는 영화·대학·스포츠 등 분야를 막론하고 미국의 최대이슈의 이면을 들춰내는 솜씨를 발휘했다. '미국인들은 왜 <나니아연대기>에 열광하나'나 '문선명 목사는 미국 최대 생선장수?' '올림픽 금메달이 뭐길래?'등이 그렇게 탄생한 기사들이다. 여타의 외신보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기사 쓰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던 해외통신원 생활은 지난 8월로 막을 내렸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것. "이제 귀국했으니 전공인 러시아와 구소련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다"는 게 윤새라 기자의 바람이다. 그의 제2의 활약을 기대하시라.
- "배반포기술? 기록·검증 없으면 무의미<네이처>서 반려됐던 사실 몰랐지만..."
- 문선명 목사는 미국 최대 생선장수?
대추리 주민 공식지정 '대추리 리민 기자'입니다
[2007 2월22일상⑪] 평택 대추리로 이주한 문만식 기자
<오마이뉴스> 2006 올해의 인물과 2007 2월 22일상에 동시에 선정된 기자가 있다. 바로 문만식(38) 시민기자. 평택 대추리가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싸움을 벌인 이후 문만식 기자는 삶의 터전을 아예 대추리로 옮기는 이주를 감행했다. 평택 대추리 주민들은 <오마이뉴스> '2006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그는 왜 대추리 행을 택했을까?
"수많은 언론과 기자들이 대추리를 취재하지만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고 이곳 주민들의 구체적인 사정이나 이 곳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배 맛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입에 가져가 씹어봐야만 한다. 그 말을 상기하면서 대추리 모습을 알리게 됐다."
하지만 문만식 기자에게 시민과 기자의 경계는 매우 불분명하다. 가끔은 상황에 따라 한쪽을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한다. 그는 주민들과 지킴이들 사이에게 '대추리 리민기자'로 통할 정도로 탁월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대집행이 있던 5월 4일에는 다급한 현장 상황에 기자이기를 포기하고 대추리 주민을 택했다. 그 대가로 철창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대추리 주민들의 몸부림은 항상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 그런 몸부림을 기록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작가들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 한 문장으로 문만식 기자의 모든 행동은 설명된다. 수상 소식에 "대추리에 있으면서도 소식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고 생각돼 상을 받는다는 게 낯설게 느껴진다"면서도 "물론 기쁘고 고맙다"고 밝혔다. 평탄하지 않은 한해를 보냈던 평택 대추리, 그곳에 작은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 경찰, 주민 1명씩 사지 들어 연행 논둑 깔아뭉개고 농수로 메우다
- "싫어요, 강제로 지문 찍지 마세요"
예비언론인, 종교 사학과 맞짱 뜨다
[2007 2월22일상⑫] 기획취재 전문, 안윤학 기자
'끈질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안윤학(25) 시민기자. 그는 올 한 해 동안 '현대판 종교재판에 멍드는 사학'이라는 기획기사로 종교사학과 한판 싸움을 벌였다.
불상 앞에서 절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강남대 이찬수 교수 사건에서 시작한 기획기사는 10편을 넘어가면서 강남대 내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종교사학의 문제점까지 확장됐다. 강남대 측의 반발도 상당했을 텐데 그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강남대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반 협박성의 전화도 자주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건 학교와 종교 권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 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사를 써서라도 학교의 어리석은 판단을 꼬집어 주고 싶었다."
안윤학 기자 말처럼 정말 끝까지 가고 싶었지만 그의 취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찬수 교수는 아직 복직되지 않은 것. 그의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찝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신문지국들의 불법적인 경품 판촉을 고발하는 <고맙다! 조·중·동> 기획을 다른 시민기자와 함께 맡고 있다. 어째 맡는 것마다 뽕을 뽑고 끝장을 봐야 하는, 징글징글한 사안들이다. 때문에 기사 하나 출고하려면 전화를 몇 통씩 돌려야 하고 기사 출고도 만만치 않은 산고를 겪어야 한다.
지금 안윤학 기자는 '백수'다. 올 여름 조기 졸업 후 언론사 취업을 목표로 부지런히 공부를 하고 있다. 때문에 가끔은 언론고시 준비해야 하는데 <오마이뉴스> 때문에 영 짬이 나지 않는다며 툴툴거리기도 한다.
"물론 시험 준비를 못하니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그래도 이찬수 교수나 사람들이 기사 잘 보고 있다, 고맙다, 수고한다는 얘기를 해줄 때마다, '아무것도 못하고 이것만 하고 있다'는 그런 심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는 기자가 되기도 전에 '기자질'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 '미션스쿨'인가, '종합대학'인가그 곳에서 종교의 자유를 묻다
- 안성기·정진영·최민식이 부른 '농민가'문경식 의장 "스크린쿼터는 우리의 집"
십자가 대신 펜을 든 신부님
[2007 2월22일상⑬]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한 최종수 기자
"테러 진압 전경들이 농성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진입했을 때 들려오던 비명소리, 경찰의 집단 폭행으로 걸을 수가 없어서 양쪽 어깨를 부축 당한 채 나오던 학생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포클레인에 무참히 파괴되는 학교를 보고 오열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또한 잊을 수 없다."
최종수(42) 시민기자는 지난 5월 4일 있었던 평택 대추리 대추초등학교 행정대집행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기사를 쓰겠다"고 말했다.
2006년 가장 아팠던 사람들 중 하나인 평택 대추리 사람들. 최종수 기자는 그들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었다. 때로는 십자가를, 때로는 펜을 쥐고서 말이다. 전주 팔복동성당의 주임 신부인 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일꾼인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그는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 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로도 유명하다.
"군산미군기지에서, 새만금에서 아무리 집회를 해도 중앙 언론에서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시대의 아픔을 겪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함께 하면서 그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물론 기사가 올라가도 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언론의 한계를 느끼지만 계속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새만금에서, 평택에서 벌였던 최종수 기자의 싸움이 승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패배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을까. 지금은 성당으로 돌아갔지만 최종수 기자는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의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임했던 것처럼 말이다.
- 안중근 의사를 반일운동가라 하더냐
- 쪽빛 희망 '햇빛발전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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