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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결심공판이 있었다. 이날 공판에서 검사는 이례적으로 피고인들에 대한 구형을 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을 구한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피고인석에 있어야 할 8명의 피고인들이 이미 사형집행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 자리는 비어 있었고, 피고인들을 대신하여 재심을 청구한 유족들이 간단한 최후진술을 하겠다고 요청하였으나 재판부는 법률에 근거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사의 구형과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없는 결심공판은 그 자체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가지는 비극성을 보여준다.
잘못된 판결 바로잡기는 너무 어렵다
@BRI@과거 유신독재 정권 하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검찰과 법원은 권력의 들러리가 되어 불법을 저지르거나 명백한 불법에 대하여 눈을 감았고, 그로 인하여 민주·통일운동에 가담한 평범한 사람들이 북한과 연계하여 학생운동을 배후 조종한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지목되어 판결 선고 후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검찰은 구형을 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을 구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잘못을 시인하였지만, 불법적인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죽음을 당한 피고인들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피고인들이 법정에 설 수 없는 재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살이 패인 유족들의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서른 남짓한 나이에 남편을 잃은 아낙네들이 30년 넘도록 겪었을 고통과 분노를 생각하면서, 국가가 개인의 삶을 이처럼 처절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한번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는 이토록 어렵다. 불법구금과 고문, 중앙정보부의 개입과 유례없이 신속한 사형집행 등 국가의 불법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났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된 이러한 사건조차도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기까지 이처럼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판결을 바로 잡더라도 그로 인하여 왜곡된 개인의 삶은 원상태로 회복될 수 없다.
그래도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길은 올바른 판결을 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법부가 재심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개가 넘는 과거사 관련 정부위원회가 있고, 진상규명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다. 아직 초기단계이기는 하지만, 그 중 몇몇 사건은 조작사건이라는 점이 밝혀져 재심을 청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진상규명이 되는 사건들도 줄지어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재심개시의 요건은 지나치게 협소한데다가 법원도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렵게 재심을 개시한 이후에도 새롭게 진행되는 재판절차에서 사실상 피고인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책임을 지게 되는데, 시간이 오래되어 기록이 멸실되거나 사건의 중요한 증인들이 사망한 경우에는 기존의 재판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잘못 인정해야 권위 서는 것
증인들이 법정에 출석하더라도 기억이 흐릿해지고, 관련 증거들이 멸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법원이 증인의 증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지 여부도 의문이다.
만약 법원이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일반적인 사건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증언의 신빙성을 배척하거나, 수사·재판기록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판단한다면, 수많은 사건들이 재심의 문턱을 넘지도 못한 채 주저앉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판결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일이 될 것인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법원이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 하에서 벌어진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하여는 정부 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에 대하여 수사기관에 의한 조사결과와 비슷한 정도로 높은 증거능력을 인정하여야 한다. 또 재심의 요건을 완화하여 해석함으로써, 불법적인 수사관행이나 잘못된 판결로 인하여 고통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일은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원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법원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바로잡는 만큼 법원의 권위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법부의 과거청산 의지를 밝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새해에는 법원의 창고 안에 보관된 채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사건 기록들이 밝은 빛을 보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유정 변호사는 법무법인 자하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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