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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듯 그렇게
봄이 여름이 되고 가을이 겨울이 되듯
그렇게.

30년 전 아버지의 시절이
묵은 사진들 위의 먼지처럼 가라앉듯이
너의 시간도 그렇게.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번민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단지 녹아 흐르는
침묵일 뿐, 아들아,
시간은 유장히 흐르는 강물이구나.

너의 청춘도 언젠가는 네 삶의
귀퉁이를 돌고, 박박 깎은 네 국방부시절도
언젠가는 네 빛나는 삶의 유성으로 흐를 거야.
시간은 그렇게 거침없이 흐른단다.

- 졸시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전문


아들이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옷가지 등속이 소포로 왔다. 아내는 아들의 내의와 진흙이 가득 묻은 신발을 보고는 기어이 눈물을 뿌렸다. 나 또한 소포 상자 안의 골판지에 쓰인 아들의 절절한 마음을 읽고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군대,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이란 무엇인지….

@BRI@내가 입대한 것은 30여 년 전인 1977년 4월이었다. 따라올 만한 가족이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머니께 하직인사를 고했다. 어머니는 버스터미널까지라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늙은 어머니의 고단한 모습과 젊은 날의 치기가 함께 어우러져 따라나오지 마시라고 끝내 우겼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힁허케 집을 나섰다. 광주에 도착해 머리를 박박 깎고 부대 앞 여인숙에 들어 맥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육십이 다 된 몸으로 막노동을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첫 휴가를 나왔던 날 알았다.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어머니가 나를 가만가만 뒤따르셨다는 것을. 그리하여 고랑을 건너다가 넘어져 크게 다리를 다쳤으나 쩔뚝이면서도 끝까지 내 뒷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그것이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 아들로부터 온 소포 꾸러미.
ⓒ 고성혁
박스를 벗기니 두 통의 편지가 하얗게 들어 있었다. 한 통의 수신자는 우리였으며, 나머지는 여자친구였다. 겉옷과 속옷이 뒤죽박죽 섞였고, 특히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신발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편지를 통해서도 부족했던지 골판지 안쪽에 급히 휘둘러 추신을 써 놓았다. 아, 거기에 그 아이의 절절한 진심이 폭포수처럼 묻어 있었다.

- 아부지, 엄니 2월에 뵐게요, 건강히 계시고요. 빨리 제대하겠습니다.
아, 사랑해요, 엄마, 아부지, 한새도.


그림도 그려 놓았다. 목이 터져라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훈련병을. 세상에 그 무심한 내 아들놈이 어찌하여 그런 말과 그림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인지. 목이 메는 한편으로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함께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비록 그것이 본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강요된 것이라 해도 고진감래, 고통의 신비는 만고의 진리이지 않는가. 더욱이 아이들의 가슴 안에 감춰진 절절한 진심을 알 수 있게 해 주다니, 어찌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쏘냐. 그리하여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 아들이 쓴 편지 둘.
ⓒ 고성혁
내 아들아,
지금 아버지는 네가 보낸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구나. 네가 보낸 박스 안에 쓰인 '메리 크리스마스' 'happy new year'를, 그 안에 담긴 네 힘듦과 고통을 유추하며 이렇게 편지를 쓰는구나.

내 아들, 사랑한다. 정말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구나. 잘 이겨내고 있어 고맙고, 네 가슴 안에 담긴 가족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 또한 더 없이 고맙구나.

네가 보낸 옷가지 등속을 개봉하는 순간 네 엄마는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 두 통의 하얀 편지, 그리고 박스의 골판지에 담긴 네 의지와 가족과 연인을 향한 절실한 사랑-

그래, 그것이란다. 늘 아버지가 얘기했잖니? 가족 간에는 '사랑의 기'가 넘쳐야 한다고….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약제라고….

▲ 흙 묻은 신발과 옷가지.
ⓒ 고성혁
네 여자친구에게도 전화했구나, 하루에 한통씩의 E-mail이 가능하니만큼 '네 편지를 가장 기다릴 테니 네가 먼저 쓰라'고 말이다. 아마 우리 가족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랑이 듬뿍 담긴 네 여친의 얘기를 들었을 거야.

거의 30년 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내 아들, 총검술과 제식훈련, 그리고 목소리가 작다는 교관의 고함에 핏대를 올리며 군가를 부르고 있겠지. 아들아, 그래도 국방부세계는 꾸준히 돌아가고 있단다. 거꾸로 매달아놔도 '국방부시계'는 힘차게 돌고 있지.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봄이 여름이 되고, 가을이 겨울이 되는 것처럼.

기억하고 있겠지만, 박박 깎은 머리의 네 모습을 아버지의 휴대폰에 담았었지. 너를 데려다 주고 나오던 순간부터 휴대폰을 꺼내면 너를 보곤 하지. 너를 생각하다가 30년 전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날 다치셨던 네 할머니의 마음을 짚어보고, 이내 세상의 모든 부모마음을 떠올리고 있다.

▲ 골판지에 쓴 그림과 추신.
ⓒ 고성혁
오늘 아침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엄마와 함께 네 사진을 보며 네가 지난밤 잘 잤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간밤의 내린 눈을 보며 너를 걱정했지. 네 곁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을 거야, 네가 잘 있을 때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네가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는 반드시 우리가 함께 해줄게, 진심으로 약속하마. 하지만 너는 지금 단지 조금 고통스러울 뿐이지 외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잘 알고 있지?

네 여자친구 또한 딸처럼 앞으로도 잘 대할게, 걱정마라 이 녀석아! 가끔씩 전화하고 아픈 데는 없는가, 먹고 싶은 것은 없는가, 잘 살펴 줄 테니 너도 그 아이에게 결코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려무나.

세밑 잘 보내고 황금돼지의 새해에 보자. 돼지처럼 살쪄 와야 한다. 내 아들, 건강하고 씩씩하게, 파이팅!

2006. 12. 28. 아버지가.

덧붙이는 글 | 군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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