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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때 음악 PD를 꿈꿨다. 사람들을 관리하며 신명나게 놀아보고 싶어 실제 지상파 라디오 PD에 지원도 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고 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10대시절엔 HOT에 미쳐 콘서트와 공개방송은 모조리 휩쓸고 다녔고, 그 시절 통신에 올렸던 '팬픽'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단다.

공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전부 배울 수 있게 해준 엄마 덕에 장구, 단소, 통기타, 컴퓨터, 수영, 피아노 등등 안 놀아 본 것 없이 골고루 다 놀아봤다는 그녀. 그녀는 이제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3년 전쯤 한 대중문화평론가가 '젊은 세대 읽기, 새로운 삶의 코드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모 일간지에 기고했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만 알고 있던 그녀, '이효인'을 처음 대면하게 된 건 석 달쯤 전이었다.

그녀, '챕터투'로 인생의 이막을 열다

기사로만 만났을 때는 제1회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참가를 계기로 힙합과 랩에 심취해 여성 힙합팀을 결성하고, 각종 여성주의 행사며 반전 집회 공연도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아직 삶을 관통할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 보였다. 그래서 방송국 PD 시험도 봤지만 떨어지고 난 후 다시 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짐짓 고민하고 있다는 듯한 인터뷰 기사였다.

그런데 직접 만나고 보니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그녀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삶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굳이 운동이라는 방식이 아니어도, 혹은 의식으로 통제하지 않더라도, 표나지 않게, 유쾌하게,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 이미 터득한 듯한 모습이었다.

몇 번인가 자신의 음악을 교유할 팀을 만들고 해체하는 과정도 겪었고, 그 과정 속에서 홍대 앞 언더 밴드들과 섞여보려고도 했지만, 언더 그룹들만의 권력관계를 뚫고 들어가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 그런 그녀가 인생의 1막을 접고, 드디어 동년배의 친구와 함께 '챕터투'라는 이름으로 보다 많은 대중을 향해 삶의 두 번째 막을 재개하고 나선 것이다.

하여, 그녀들은 노래한다. 고시원 한 평에 몸을 구겨 넣어도 싸구려 술 한 잔과 이런 삶을 비웃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그것이 완벽한 인생이라고.

그녀들은 또 노래한다. 계약직으로 착취당하며 인터넷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일자리가 없어 술집으로 흘러들어가 빠져 나오고 싶어도 정작 갈 곳 없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온갖 루머들에 파묻히는 인생에 대한 반성을.

무수한 장애를 뚫고 '일류 마이너'로 자리 잡으라

물론 그녀들 앞에 장애물은 무수하기만 하다. 당장, 야심차게 제작한 앨범을 들고 찾아간 방송사들에서 그녀들,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공중파 방송사 사전심의 생리에 맞을 리 만무한, 독립 레이블판 그녀들의 노래들. 결국 KBS 2곡, MBC 3곡, CBS 4곡, SBS 5곡만 이 겨우 심의를 통과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던 것이다.

몰랐던바 아니지만 앞으로 그녀들이 겪어내고 부대껴야할 대상이 얼마나 저열할지,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할지 보여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부조리 하고 불합리하고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그나마 SBS가 절반에 가까운 5곡을 통과시켜주다니, 상업방송의 파격이 차라리 존경스러울 다름이다.

병 주고 약주는 방송과 정부의 엇박자는 더욱 코미디다. 얼마 전 그녀들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단다. 문화관광부가 챕터투를 12월의 우수음반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물론 문광부의 선정이 이들의 대중적 활동을 담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라건대 부디, 대한민국의 수많은 '이효인'과 수많은 '챕터투'들이 이 같은 현실과 잣대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HOT나 동방신기처럼 수많은 팬클럽을 거느리지 않더라도, 세상은 온통 핑크빛으로만 가득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전해줄 수 있는, 그리하여 그 불편한 진실을 개선하는데 결정적 순간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저변과 저력을 확대하는데 유의미할 수 있는, 도무지 대체가 불가능한, 그녀들만 할 수 있는 노래를 하는, '일류 마이너 가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지연 작가는 모방송국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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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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