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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태씨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다른 직장 찾을 때까지 힘들텐데 퇴직금은 어떻게 지급할까요?"
지난 8월 31일 14개월간 다니던 공장을 그만뒀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면서 총무부 담당자가 이렇게 말을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쉽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첫마디가 "퇴직금은 없는 것 아시죠?"였습니다. 퇴직금은 급여에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에 서명, 날인했으니 퇴직금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BRI@입사하면서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급여에 퇴직금을 포함한다고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전인수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한 사용자 자신의 생각일 뿐, 사실은 퇴직금을 지급해야 된다는 것을 사용자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용자나 사용자를 위해서 일하는 관리직들은 일반적으로 근로자를 우습게 봅니다. 특히 중소기업체나 소규모 공장의 경우 더욱 심합니다.
사실상 그런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중에는 근로기준법과 퇴직급여보장법 등은 도외시하고 오직 다달이 주는 봉급이나 제대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순박하게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퇴직금을 받지 못할 경우 해당지역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고발하면 받을 수 있다고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근로자들은 행정관청에 간다는 것을 꺼리거나, 다니던 회사를 어떻게 고발하느냐는 생각에 퇴직금 받기를 포기합니다. 기업주들은 이런 점을 악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받았습니다. 제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자 회사측은 저에게 "퇴직금 문제를 노동부에 진정하려면 서류준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아느냐, 노동부에서 오라 가라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지급명령을 받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줄 아느냐"고 은근히 겁을 주더군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9조에 보면 퇴직금은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장에게 확실히 지급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지금 당장 고발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이 경우는 아마 회사가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근속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으니 30일분 급료만 지급하면 되는데 그걸로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용자측은 퇴직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들이 근로감독관을 찾아가더라도 이런 서류 가져와라 저런 서류 가져와라 하며 이리저리 다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근로자도 있을 테고, 그 중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로자에게는 그때 가서 지급한다는 기가 막힌 발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울면 주고, 울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는 부도덕한 생각입니다.
퇴직금 받으면 실업급여 못 받는다?
퇴직금을 주지 않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퇴직금을 받으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고 회유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다 받으면 불법을 저지르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둘 중에 하나만 받아야 된다고 점잖게 말합니다. 그러면 근로자들은 마음이 약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실업급여를 받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하고 갑니다. 둘 중에 하나만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는 제가 그 회사에 다닐 때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퇴직금과 실업급여는 서로 관계가 없는 급여입니다. 다만 실업급여는 수급사유에 해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큰 사고를 쳐서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그로 인해 징계해고를 당하거나, 자영업을 하기 위해 자진퇴사 했다거나, 다른 회사로 옮기기 위해 퇴사를 했다면 수급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진퇴사를 했더라도 그 사유가 출퇴근거리가 너무 멀다거나, 급여가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거나, 근로자의 연령이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업무일 경우는 수급사유에 해당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것을 증빙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퇴직의 귀책사유가 회사에 있느냐 본인에게 있느냐에 따라 수급대상자가 가려진다는 말입니다.
이 글의 서두에 근로계약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퇴직금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고 된 계약서에 서명 날인을 했어도 회사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회사가 다음에 기술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충족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노동부 지침에 2006년 7월 1일 이전에는 급여에 퇴직급을 포함시키는 식으로 중간정산(매월 분할 지급하는 방식)을 하는 경우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설사 근로계약을 받아들여 미리 지급을 받은 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 동안 퇴직금명목으로 받은 총액이 퇴직 당시의 평균임금으로 계산한 퇴직금에 미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봉제인 경우는 연봉액에 포함될 퇴직금의 액수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2006년 7월 1일부터 적용된 신규지침에는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고자 하는 근로자의 별도의 요구가 있어야 하며 ▲중간 정산금을 매월 분할하여 지급한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어야 함(근로계약서나 연봉계약서에 기재 시 불인정) ▲중간 정산 대상기간은 중간정산 시점을 기준으로 기왕에 계속근로를 제공한 기간만 해당됨(근속기간 1년 미만자는 법정퇴직금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중간정산도 불가함) ▲또한 연봉제 하에서는 연봉액에 포함될 퇴직금의 액수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하며 ▲매월 지급 받은 퇴직금의 합계가 중간정산 시점을 기준으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제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산정된 금액보다 적지 않아야 함(법정 퇴직금 수준 이상이어야 함)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법은 사용자 편? 권리를 누리려는 사람 편
지금껏 이야기한 것을 간단히 말하면 회사의 말처럼 퇴직금을 미리지급한 것으로 하려면 근로계약서와는 별도로 근로자가 먼저 퇴직금 중간 정산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퇴직금이란 1년 이상을 근속한 근로자에게 평균임금 30일분(한 달치)의 퇴직금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미래에 퇴직하고자 하는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또는 1년도 안 된 근로자에게 어떻게 퇴직금을 지급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이러니 선량한 기업가들까지 도매금으로 기업 하는 인간들은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근로자는 사용자에 대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회사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해야지 노동부에 들락거리면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는 근로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힘이 들더라도 이 땅에서 기업 하는 사람들에게 퇴직금은 탄력성 경비가 아니라 경직성 경비라는 것을 알려주어 다음에 퇴직하는 근로자들은 좀더 인간답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된다고 봅니다.
법은 사용자편이라고 말하며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법이라는 철봉에 매달려 있거나 아니면 철봉에 매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법 위에서 잠자는 권리는 보호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신경 쓰기 싫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르는 것이나 궁금한 점은 각자가 관할 노동관서에 문의해서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돈 없는 근로자들이 퇴직금 모아서 돈 많은 사장 외제승용차 사준대서야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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