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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병 환자들을 다루는 프로그램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서 다룬 아이들.
희귀병 환자들을 다루는 프로그램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서 다룬 아이들. ⓒ SBS 캡처

"환자 4명 중 1명 질병으로 퇴직. 구직 활동자 4명 중 1명 '취업 거부' 경험. 보험거부 경험 61.2%"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희귀난치성질환자 생활실태'에 나온 자료다. 총 535명의 희귀질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휘귀질환자 중 상당수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자중 무직이 37.4%이며, 또한 질환 발생 이후 구직활동 경험이 있는 156명 중 구직과정상에서 차별이 있었냐는 질문에 61.5%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또한 61.2%가 보험거부 경험이 있었다. 거부 사유는 질환에 걸렸다는 이유가 77.5%(162명), 장애인이라는 이유가 18.7%(39명)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보험거부 사유 중에서 '장애인'이라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희귀질환자가 곧 장애인인 것은 아니다. 희귀질환자는 장애인도 아니고, 비장애인도 아닌 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장애인으로 차별은 받지만 사회로부터 제도적 지원은 받지 못한다.

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차별, 그러나 비장애인

'유전성 거대 백악종'을 앓고 있는 이영학 씨. 그는 아연이가 태어난 뒤 3년 동안 6번 이사를 했다.
'유전성 거대 백악종'을 앓고 있는 이영학 씨. 그는 아연이가 태어난 뒤 3년 동안 6번 이사를 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대표적인 경우가 '스터지웨버 증후군(몸 일부나 전체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병)' 환자들이다. 인구 1천명당 대략 3명에게서 나타나는 희귀질환으로 포도주를 흘린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포도주빛 반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반점은 환자가 나이 들면서 두꺼워지고 울퉁불퉁해지는 등 눈에 띄게 두드러지지만 다른 신체부위엔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스터지웨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은총, 3)을 둔 박지훈(31)씨는 아들과 함께 밖에 나가면 괜히 위축된다. 가끔씩 외출을 할 때 옆에 지나치기라도 하면 전염병인 줄 알고 자신의 아이를 황급히 끌어당기는 부모들이 있다. 때때로 동네 아이들이 "지저분하다"고 놀리기도 한다. 그는 "환자들 대부분이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간혹 나가더라도 모자와 목도리 등으로 칭칭 감고 다닌다"고 말했다.

'유전성 거대 백악종'을 앓고 있는 이영학 씨는 자전 수필에서 "남들은 날 장애인·기형아라고 놀렸다, 학교가면 친구들이, 형들이, 누나들이 날 마치 사람이 아닌 시선으로 보는 것이 너무나 아프다"라고 자신의 9살 때를 회상했다.

교육에서의 차별도 장애인들과 다르지 않다. 박지훈씨는 "부모들이 거부해 유치원 입학을 못한 환자도 있다"면서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엄지공주'로 알려진 윤선아(골형성부전증)씨도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해 시골학교로 전학한 경험이 있다.

취업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이 병을 앓고 있는 한 20대 여성은 '외모가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지금은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지 멀쩡한데 장애인 혜택 받으려고요?"

희귀병, 난치병... 뭐가 다르지?

국어대사전에 난치병은 '고치기 어려운 병'이라고 돼 있다. 정확한 원인 파악조차 어렵고, 약이나 치료방법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 희귀질환과는 엄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백혈병·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등은 난치성 질환이지만, 혈우병·고셔병·근육병·중증근무력증 등은 희귀질환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종종 희귀질환은 장애나 난치병과 함께 다뤄진다. 각종 언론이 "국내 희귀질환자 숫자는 33만~50만명"이라고 발표하지만 이는 희귀질환자와 난치병 환자가 섞인 숫자다. 이 중 몇 퍼센트가 정확히 희귀질환자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희귀질환자들은 법적으로 비장애인 대우를 받는다.

'스터지웨버 증후군' 환자들은 수시로 고가의 레이저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미용상'이란 이유로 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 영세민 혜택이라도 받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았지만 "사지가 멀쩡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또한 희귀질환자들은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인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또한 비 장애인 시설을 이용하는데도 제한이 있다. 지난 11월 서울에 문을 연 '희귀 난치성 질환자 쉼터'가 현재로선 유일한 공간이다.

정부 정책에서 애매한 위치에 놓인 희귀질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종종 '반쪽짜리 장애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베체트병(구강궤양·외음부 궤양·포도막염 등 징후로 나타나는 희귀질환) 환자인 송영희 씨는 병 때문에 중도실명 상태다. 완전실명 전 상태로 흐릿하게 윤곽만 보인다.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베체트병은 장기간에 걸쳐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며 사망률은 3~4% 정도다.

피아노 조율을 하는 그는 일을 하러 갈 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밝힌다. 하지만 윤곽만 보고 곧잘 수리를 하기 때문에 "잘 보이면서…"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력이 좋지 않다"고 밝히지 않으면 역시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는 지적을 받게 된다. 그들에게 베체트병이라는 병을 설명하긴 쉽지 않다.

10만명당 43명... 병명 확인에만 1~2년

@BRI@그러나 무엇보다 큰 어려움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정의하는 희귀질환이란 '인구 10만 명당 43명 이하로 발생하는 병'이다. 워낙 희귀한 병이기 때문에 정보가 없다. 이 때문에 본인이 병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문의가 없기 때문이다. 1~2년 걸려 겨우 병명을 알아낸 뒤엔 이미 치료비가 상당히 들어갔고, 병이 악화된 뒤다. 심지어 10년만에 확진한 사례도 있다.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에 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자 중 62.2%가 오진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잘못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제대로 치료를 받기 위해선 서울 등 수도권 병원을 찾아야 하지만 대기 시간이 무척 길다. 익산에 살고 있는 박지훈 씨는 "서울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약 1년 정도 대기했었다"며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 또한 병명을 몰라 1~2년 정도 세월을 허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 입대를 앞둔 희귀질환자들은 공포를 느낀다. 의사와 병원,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희귀질환을 확진하고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군 입대 후 병이 악화돼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도 희귀질환인 클론시병으로 의병제대한 김 모씨가 보훈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 관련 기사 보기)가 나왔다.

매월 1회 인천 월미도에선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자선음악회가 열린다.
매월 1회 인천 월미도에선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자선음악회가 열린다. ⓒ 여울돌
희귀난치성질환 어린이 후원모임인 '여울돌' 대표 박봉진(32)씨는 "흔히 장애라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만 생각한다"고 말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사각지대에 희귀질환자들이 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문제"며 "먼저 정부가 각종 희귀질환 정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 보건소에 희귀질환 전담자가 배치돼 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희귀질환자가 몇 명이나 되냐"고 반문했다.

박봉진 대표는 "희귀질환은 난치병이나 장애와 분명히 달라 별도 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약 5000가지 이상으로 보고 있다. 희귀질환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등록한 국내 희귀질환은 107종 200여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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