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을 읽으면서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전형적인 서사의 방법으로 평이하게 풀어나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 작가가 이상문학상 수상자라는, 그것도 꽤 현란한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는 기억이 무의식중에 화려한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었나보다. 하지만 2권을 읽어나갈 쯤부터는 나도 모르게 지루함을 잊게 되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끝장까지 읽어나갔다.
책을 덮고 나니 작가가 그려낸 자신의 어린시절이, 성장해가는 어린아이의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왔을 인생의 많은 비밀들이, 그 비밀들과 만나던 순간 아이가 품었을 공포감이, 공포감 후에 계절의 순환처럼 찾아왔을 성숙이 마음 한켠에 스며들어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생이 죽은 다음 동생의 발을 보며 작가가 고통스럽게 인생의 실체를 깨닫는 장면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 중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 동생. 그의 죽음이 작가의 의식에 못박혔고 이제 다 자라 성인이 되어 이름을 날리게 된 작가가 자신과 동생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
@BRI@자기 인생 최대의 화두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화가, 음악가, 작가… 자신과 자신이 만났던 이들이 함께 만들어냈던 순간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그들 예술가 그룹에게 크나큰 부러움을 느꼈다. 작가의 동생은 세상을 떠났지만 작가의 손에 의해 작품속에 살아나 영원히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닌가.
그동안 참 특이한 구성, 재기발랄한 문체, 강렬한 이미지로 메시지를 압도하는 소설들을 너무 많이 읽었나보다. 영화같은 소설들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이 책의 전통적인 서사구조에 하마터면 1권을 읽다가 중단해버릴 뻔 했다.
그래도 빨리 읽히는 책이라 끝까지 잡았는데 이렇게 동생의 영혼과 마주하게 되니 정말 놓아버리지 않길 잘했다 싶다. 자신의 동생을 세상의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하는데 작가는 성공한 것이다. 읽고 나니 마음에 노을이 들어찬 듯 은은해진다. 매혹적으로 단숨에 읽어치웠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보다 더 오래 오래 떠올릴 것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