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가 자신의 칼럼을 '해설'하는 칼럼을 쓰기란 불행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신문기자로 살아온 편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칼럼에 대해서 쏟아지는 비판에 답하는 것이 인터넷 시대의 문법이니까요.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신년 인사를 했는데 저는 돼지 한 마리를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돼지는 어디 가 버리고 보도에 나온 것 보니까 꼬리만 딸랑 그려놨습니다. 그것도 밉상스럽게 그려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입니다. 이어 "찍힌 거지요, 제가?"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4일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의 고위 공무원들과 나눈 오찬에서 한 마무리 발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통령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부실하고… 부실한 상품이 돌아다니는 영역이 어디지요?"라고 물은 뒤, "내 생각에는 미디어 세계"라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이어 '소비자 주권'을 강조했습니다.
한미FTA가 다음정부에 넘길 '좋은 보따리'인가
노 대통령이 정확히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신년인사에 대해 저 또한 "대통령이 국민 평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칼럼을 썼고, 그 칼럼에서 자신의 지지도 추락을 언론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했기에, 마땅히 답하는 게 언론인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저의 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비슷한 맥락에서 언론학 교수 김동민은 저에게 '대통령의 말을 그렇게 들었느냐'며 "비열한 책임회피" 운운한 반론을 썼습니다. 그 반론을 <오마이뉴스>가 돋보이게 편집함으로써, 다른 인터넷신문은 제가 "친여성향의 인터넷신문"에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해 "마녀사냥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마운 염려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제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네티즌들과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함께 소통하고 싶어서입니다. 솔직히 초기 노사모 회원들의 순수한 열정에 다가서고 싶기도 합니다.
<청와대 브리핑>은 대통령의 신년인사 제목을 "다음 정부에 좋은 보따리 넘겨주겠다"고 편집했더군요. 아마도 그것이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잘 그린 돼지 한 마리"였겠지요.
하지만 묻겠습니다. 어떤 보따리인가요? "국민 평가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발언을 비판한 가장 큰 이유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겠다는 그의 고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모르쇠한 채 밀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은 저의 분석이 틀린 것일까요?
만일 제 분석이 옳다면, 어떤가요? 바로 그것이야말로 언론이 마땅히 그려야 할 '신년인사의 돼지'가 아닐까요?
김동민의 글엔 웃고 말지만, 대통령의 '따따부따'는...
논점이 엉뚱한 김동민의 글에는 지난해 한 시민언론운동 단체 대표에서 물러난 감정의 앙금이 여전히 발견됩니다. 저를 "비열하다"고 공격한 대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무늬만 '진보'인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생게망게하게도 진보세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썼습니다.
노 정권에 대해 수구신문은 언제나 '좌파'나 '진보'로 몰아세웠습니다. 심지어 '진보세력 집권 10년'이라는 황당한 말까지 대중적으로 유포되어 있습니다.
그게 수구세력의 의도적 왜곡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진보세력은 아직 정권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 모두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김동민은 또 "비정규직 문제는, 적어도 손석춘이라면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정규직 중심의 대기업 노조와 민주노총의 집단이기주의를 질책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썼습니다. 저를 잘 못 보았습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정부 탓하기에 앞서 민주노총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교수 김동민의 주장에는 그저 웃고 말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주장은 그럴 수 없습니다. 다시 따따부따하는 까닭입니다. 불량품은, 소비자가 주권을 찾아야 할 곳은, 물론, 언론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뿐일까요? 아닙니다. 한국 언론만이 아닙니다, '가장 부실한 상품이 돌아다니는 영역'은.
'최고 불량품'이 뭔지 콕 집어서 말하라
보십시오. 한국의 정치판 전체를. 우리가 "이 사람이다" 싶은 '상품'이 있습니까?
그래서이기도 합니다. 불량품을 거론할 때도 '언론'이나 '정치'로 싸잡아 이야기하면,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어떤 언론, 어떤 정치냐고 따져야 옳습니다. 소비자가 주권을 제대로 찾아야 할 곳은, 대한민국 곳곳에 있습니다. 그 주권 찾는 길을 네티즌들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