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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날아다님을 쉴 때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김민수
새해 첫 주간 안녕하셨는지요? 어떤 분이 '작심삼일'이란 '삼일에 한 번씩 작심하는 것'이라고 색다른 해석을 하시더군요.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삼일에 한 번씩 작심을 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때로는 말뜻 그대로 '작심삼일'로 끝나야할 계획들이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BRI@새해의 다짐이나 새해에 대한 계획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매체마다 새해 계획으로 넘쳐나고 시무식에서도 올해 이루고자 하는 거창한 계획들과 구호가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달려가자'는 구호만 있지 '쉼'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야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내용도 없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봅시다." 혹은 "봄이 오면 하루에 한 번씩 꽃님들과 눈맞춤을 합시다." 뭐 이런 이야기는 없고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니 신들메 동여매고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갑시다" 하는 류의 이야기들만 넘쳐납니다.

새해 첫날부터 숨이 찹니다.

▲ 쉼의 시간을 가진 잠자리가 맞이한 새 날 하늘을 날 것입니다.
ⓒ 김민수
이제 첫 주간을 보냈는데 벌써 '빨리빨리' 살아오면서 지친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쉼'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이라는 말이 '게으름'과 동일시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인식되어 쉼의 시간조차도 남들이 먼저 자기를 앞질러 갈까 봐 불안해하면서 온전한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는 길 멈추고 "무엇을 위해서 쉼 없이 달려가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때론 숨가쁘게 가야할 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숨차게 달려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가끔 우리 삶에 들어오는 특별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숨가쁜 시간이 일상이 되었고, 자기의 삶이 속도로 살아가는 것은 퇴보하는 삶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세뇌되었습니다.

겨울밤이 여름밤에 비해 긴 이유는?

▲ 쉬지않고 날아다니는 나비가 없습니다. 쉼은 회복의 시간입니다.
ⓒ 김민수
겨울밤이 여름밤에 비해 긴 이유를 아시는지요? 겨울은 쉼이 더 많이 필요한 계절이기 때문에 밤도 긴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인공의 빛으로 인해 밤을 잃었습니다. 24시간 아니 그 시간도 모자라 25시라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입니다.

쉬지 않고 날아가는 새가 없고, 쉼 없이 날아다니는 나비가 없습니다. 쉼의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또 다른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쉼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쉼의 장소도 중요합니다.
ⓒ 김민수
그렇다면 어디에서 쉬어야 할까요? 인공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자연의 품에 안기면 자연이 가진 신비스러운 힘이 삶에 지친 우리들 안에 들어와 순화를 시킵니다. 자연이 가진 에너지를 우리 안에 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자연은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에 빠져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푸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잃어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망각한다는 것과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것은 아주 다르지요.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쉼을 통해서 떠밀려 살아가는 삶에서 내 스스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 혁명전야와도 같은 꿈틀거림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 쉬는 모습도 다양합니다. 남과 똑같은 쉼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 김민수
남들이 바다로 간다고 바다로 갈 일이 아닙니다. 남들이 산으로 간다고 산으로 갈 일도 아닙니다. 새해 일출을 보겠다고 명소를 찾아갔다가 새해 첫날부터 인파에 시달려 쉼이 부재한 쉼을 가진 이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쉼'이란...

'쉼'이란 부담이 없어야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고, 먼 길을 가더라도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나서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 쉼의 장소가 때로는 재래시장일 수도 있고, 도심 한복판일 수도 있습니다.

▲ '쉼'은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 김민수
'쉼'은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쉼'은 자연인인 자신과 하나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잃어버린 지금 여기에서의 삶, 쉼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네 현실은 쉼 없이 돌아갑니다. 싸움도 잠시 쉬면 시들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네 현실이 아옹다옹 돌아가는 것도 쉼없는 싸움 때문입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싸우기를 그치고 쉼의 시간으로 들어간다면 그 싸움을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자신이 가장 편안한 것이 쉼입니다.
ⓒ 김민수
간혹은 이해 못 할 쉼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쉬는 날만 되면 흙을 만지러 시골로 갑니다. 가끔은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 앉아 머리로만 살아갔으니 쉬는 날에는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가끔은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할 때도 있지만 육체노동을 통해서 흘린 땀방울 속에 나를 위협하는 독소들이 하나 둘 땀방울과 함께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남들이 보기에 편안한 쉼보다는 자신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쉼입니다.

▲ 아주 오랫동안 쉼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 김민수
그 쉼의 시간이 조금 길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때론 원하지 않게 오랫동안 쉼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의적인 쉼의 시간이야 마음 편할 수도 있겠지만 쉬고 싶지 않은데 쉬어야 할 때에는 고통입니다.

일터를 옮기면서 본의 아니게 서너 달씩 쉬게 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쉼의 시간이 오면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는데 막상 쉼의 시간이 주어지니 불안했습니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갈 줄 모르는데 익숙해진 결과입니다.

황소걸음, 달팽이걸음이 결코 느린 것이 아닙니다

▲ 쉼의 시간은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느릿느릿 걸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 김민수
쉼의 시간만큼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어가기를 권합니다.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천릿길을 간다고 합니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빨리빨리 살아가다 보지 못하던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황소걸음, 달팽이걸음이 결코 느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장 편안하게 걸어왔을 뿐인데 뒤돌아보면 어느새 천릿길을 걸어온 것이지요.

자동차속도로 질주한 이들이 먼저 왔다가 다음 목적지로 갔는가 살펴보면 앞서간 이들보다 아직도 천릿길에 이르지 못해 숨차하는 모습을 볼 때가 더 많습니다. 천천히 걸어가십시오. 그것이 가장 빠른 걸음걸이입니다.

▲ 쉼의 공간 중에서 자연만큼 좋은 곳이 또 있을까요?
ⓒ 김민수
새해 계획 중에 휴가 계획 말고 쉼의 계획이 들어있으신지요? 하루에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쉬는 시간을 계획표에 넣어두셨는지요? 없다면 새해 벽두에 계획표 안에 넣어주십시오. 그러면 올 한 해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남은 붉은 열매들을 따 먹기 위해 산 새들이 나뭇가지에 날아왔습니다. 그들이 열매를 따 먹을 때마다 나뭇가지가 춤을 춥니다. 그래요, 몸부림이 아니라 춤으로 느껴집니다.

쉼의 시간,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입니다.

태그:#쉼, #새해, #작심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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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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