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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눈은 참으로 아름다운 고민입니다. 뽀드득뽀드득 발에 밟히는 눈길은 사랑스러운 편입니다. 그러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다가 밤 사이에 꽁꽁 얼어붙어 빙판이 되고나면 '웬수'가 되고 맙니다.

눈이야 아침 운동 삼아 넉가래로 밀고 대빗자루로 쓸면 그만이지만, 유리알 같은 빙판에는 넉가래도 빗자루도 소용이 없습니다. 괭이로 쪼고, 삽으로 일일이 긁어야 하는데 여간 힘든 노역이 아닙니다. 괭이에 부딪친 빙판에선 거의 불똥이 튀길 지경입니다.

산동네 비탈길도 연탄재 하나로 넘었지요

▲ 눈이 내린 비탈길.
ⓒ 이형덕
집으로 가는 비탈길에 빙판이 지면 여간 낭패가 아닙니다. 아무리 사륜구동 차라도 빙판에는 맥을 못 씁니다. 바로 옆이 개울로 곤두박질치는 비탈이라 늘 아슬아슬합니다. 빙판에 미끄러져 헛바퀴가 돌 때면, 바퀴 밑에 흙이라도 퍼다 뿌려야 하는데, 꽁꽁 얼어붙은 흙들은 돌덩이처럼 굳어 꼼짝도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인왕산 밑 산동네에 살던 기억이 납니다. 가파른 비탈길이었지만 눈이 쌓이든 빙판이 지든 걱정이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문 앞에 수북이 쌓아 두었던 연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던져 놓고 발로 차서 부숴 놓으면 아무리 미끄러운 빙판도 안전했지요. 불기가 남은 연탄재를 던져두면 '칙' 소리를 내며 금세 빙판이 녹아 흘렀습니다.

세상이 바뀌어 연탄쓰는 집을 찾기 힘들어지고, 그나마 어렵게 눈에 띠는 연탄재도 안도현 시인이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를 지어서, 이제는 꽁꽁 얼어붙은 길에도 부숴놓는 연탄재를 만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빙판을 삽으로 쪼아내면서 공연히 심술이 나서 안도현 시인에게 화풀이를 해 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라
너는
미끄러운 빙판길에 한 번이라도 연탄재 뿌려준 적이 있었느냐


연탄 찍던 아저씨, 연탄 나르던 나귀를 아시나요

▲ 연탄재
ⓒ 이형덕
연탄은 도시의 대표적인 땔감이었습니다. 서울 주변의 산들이 온통 벌거숭이가 된 뒤로, 연탄은 많은 서민의 땔거리로 쓰였습니다.

내가 살던 산동네는 평지 마을보다 연탄값이 더 비쌌습니다. 연탄 구루마도 올라오지 못해, 얼굴에 온통 검댕을 묻힌 연탄 배달 아저씨가 지게로 지어나르던 연탄은 장당 얼마씩 배달비를 더 얹어 팔았습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던 어른들은 끼니마다 아이들에게 연탄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저도 아랫마을에 내려가 가운데 구멍에 새끼줄을 꿴 연탄을 양손에 하나씩 사 들고 와야 했습니다. 자칫 미끄러져서 연탄을 깨뜨리면 울면서 주워 담았습니다. 눈물에 젖은 연탄을 주워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깨진 연탄은 따로 모아두면 '연탄 찍어어!'라고 외치는 아저씨가 찾아옵니다. 쇠로 만든 거푸집에 깨진 연탄을 물에 개어 떡메로 내려치면 말짱한 연탄이 만들어지곤 했지요. 새 연탄 사는 것보다는 그것이 헐하여 장마철에 눅눅해지거나 깨진 연탄들을 한 줌 흘리지 않도록 잘 모아 두었지요.

김장철이 되면 집집마다 연탄을 들여놓는데, 몇 집이 어울려서 배달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귀가 끄는 마차에 싣고오기도 했습니다.

전신주에 매어놓은 나귀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곤 했지요. 마부가 연탄을 나르는 동안 아이들은 나귀 목에 달린 방울을 차례로 울리기도 하고, 작대기로 사타구니 밑의 귀물을 건드리다가 나귀에게 물리거나 발에 채여 큰소리로 울기도 했습니다.

연탄 아궁이에서 네루를 거쳐 연탄 보일러까지

▲ 논에 거름으로 버려진 연탄재
ⓒ 이형덕
시골에 연탄이 등장한 것은 아마 새마을운동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 타는 연기와 군불의 따스함이 사라지고,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날 무렵부터 시골도 조금씩 차가워졌습니다.

그러나 헐벗은 산들을 푸르게 하고, 새벽부터 매운 연기에 불을 피우는 노고를 덜어낸 건 단연 연탄의 공이라 하겠습니다. 시골에서는 다 쓴 연탄재를 논이나 밭에 버렸습니다. 산성화되는 토양을 막는 석회가루와 같은 효과가 있다 했지요.

아홉 개의 구멍을 지닌 구공탄에서 시작되었다는 연탄은 서민들의 겨울을 따스하게 지켜준 은인이며, 또한 지독한 연탄가스로 귀중한 생명들을 앗아간 주범이기도 합니다. 허술했던 벽 틈으로 스며든 연탄가스로 겨울마다 중독사고가 빈번했지요.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동치미 국물을 퍼먹이고,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광경을 자주 보았습니다. 연탄 아궁이도 진화하여 '네루'라 하여 화덕 밑에 레일을 달아 방 밑으로 깊숙이 넣어 온방을 골고루 덥게 하는 방법이 대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조금 지나서 나온 것이 '연탄 보일러'입니다.

요즘도 시골에서는 쓰고 있는 집이 있는데 방바닥에 고무관을 넣어 연탄불로 데운 온수를 순환시켜 방을 덥히는 난방법입니다. 이 연탄 보일러는 시공비도 저렴하고, 아궁이를 방에서 떨어진 곳에 두어도 되기 때문에 연탄가스 문제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과열이 되면 높은 곳에 설치해 둔 수조통으로 물이 끓어 넘쳐 수시로 물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올 겨울, 연탄을 차보세요

기름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다시 연탄을 찾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빙판에 뿌려둘 연탄재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혹 지나다가 미끄러운 빙판을 보시면,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도록 한번쯤은 '연탄재를 발로 함부로 차' 주기 바랍니다. 비록 다 타 버린 재일망정 누군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몸을 부수어 발에 밟히는 연탄재의 뜨거운 사랑이 우리 마음도 녹이기를 바랍니다.

▲ 다시 만나 반가운 연탄.
ⓒ 이형덕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탄, #연탄재, #비탈길, #산동네,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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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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