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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홍지영 기자] 가족·친족간 성차별적·여성비하적 호칭의 대안을 찾자는 캠페인이 때 아닌 성대결 논란에 휩싸여 취지가 희석되고 있다.

지난 12월 말부터 시작한 한국여성민우회의 온라인 캠페인 ‘호樂호樂 캠페인’은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호칭에서 벗어나 보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자는 게 취지다. 그러나 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사이트에는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우월로 가고 있다” “아직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등 비난의 글이 쇄도하며 어원에 대한 시시비비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우회는 여성이 여성을 부르는 호칭부터 바꿔보자며 며느리, 올케, 아가씨 등을 성차별 호칭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고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며느리’는 기생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게 딸려 기생하는 존재’라는 말이며, ‘올케’는 ‘오라비의 겨집(계집)’이 줄어든 말로 가부장제 아래서 주된 역할을 맡은 ‘오빠’에게 시집 와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이를 통해 여필종부의 문화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남성 배우자의 자매와 형제를 가리키는 ‘아가씨’ ‘도련님’도 지나친 극존칭과 존대말을 사용한 예라고 지적했다.

민우회 김선화 간사는 “과거 ‘편부모’ 대신 하나로도 온전하다는 뜻의 ‘한부모’로 명칭을 바꾼 선례가 있었다”며 “이번 캠페인은 좀더 친근한 호칭을 써보자는 취지 아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창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안적 호칭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전에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 등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민우회가 우리말 어원사전을 동원해 단어를 해석한 것과 관련해 상당수 네티즌은 또 다른 어원을 근거로 제시하는 등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네티즌은 “‘마누라’의 어원을 살펴보면 과거 극존칭으로 사용됐다. 민우회 의도대로라면 ‘부인’ ‘아내’ 대신 ‘마누라’라고 고쳐 부르는 운동도 해야 되지 않느냐”며 비판했다.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어원을 제대로 밝히는 것 자체가 힘든 작업이며, 민우회가 근거로 내세운 어원도 많은 학설 중 하나”라며 “현재 ‘며느리’ ‘올케’와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비하하는 의미로 쓰지 않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즉, 어원을 따져 ‘단어’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힘들 뿐만 아니라 어원에 근거를 둔 논의들은 현실에 비추어볼 때 별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하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도 “‘매춘’을 ‘성매매’로 사용하는 것은 현실을 개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만, 논란을 몰고 온 민우회의 캠페인을 보면 마치 보통사람들이 쓰는 말을 두고 규율부가 갑자기 나타나 잘잘못을 가리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대중에게 반감을 사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우회가 오버한 측면도 없지 않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여성운동이 대중과 멀어지는 길이 아니겠느냐”며 우려를 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논쟁의 초점은 캠페인이 아닌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로 변질되는 등 지난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된장녀 논란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우회측은 이에 대해 당혹해 하면서도 추후 논의를 거쳐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캠페인은 지난해 민우회를 비롯해 여성가족부, 한국여성개발원이 함께 진행했던 ‘양성평등한 미디어 언어 개발을 위한 모니터링’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민우회 '호樂호樂 캠페인' 어떤 제안들 올라왔나
남편·부인 대신 ‘옆지기' 어때요

"제가 활동했던 블로그에선 ‘남편’이나 ‘부인’이라는 호칭 대신 ‘옆지기’라는 표현을 썼어요. 말도 예쁘고 성별 구분도 없고 의미도 어렵지 않더라구요."

한국여성민우회는 가족 간에 사용하는 호칭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자 이런 경험을 털어놓고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온라인 캠페인(hoho.womenlink.or.kr)을 펼치는 한편, 네티즌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 받고 있다.

눈에 띄는 아이디어는 바로 ‘따우’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이 제안한 ‘옆지기’다. 이 말은 상대 배우자를 뜻하는 말로 “우리 아들 옆지기예요” “제 옆지기 동생이에요” “우리 오빠 옆지기예요”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 의견에 대해 ‘나르’라는 아이디를 쓰는 또 다른 네티즌은 “지금은 생소하지만 자꾸 쓰면 익숙해질 것 같다”며 호응의 뜻을 밝혔다.

민우회는 이밖에도 남성 배우자의 형제를 가리키는 ‘아가씨’ ‘도련님’ 대신 ‘부제’ ‘부남’을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며, 기분 좋게 부를 수 있는 친근한 호칭을 함께 찾는 것이 캠페인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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