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빙그레 웃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에 대한 대국민특별담화를 발표한 뒤, 빙그레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개헌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 대통령은 9일 오전 특별담화에서 '4년 연임제 개헌'을 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자고 제안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 이전부터 논의돼 왔던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론'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현 정부 임기내의 개헌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던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담화에 이어 곧바로 반대의견을 내놨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성사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제안은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나름의 근거도 인정돼 왔다. 때문에 예상돼 온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도 상당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노 대통령이 이번 개헌제안에 이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안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합의수준이 높은 것을 제안한 것"이라면서 중대선거구제 제안 가능성은 부인했다.

노 대통령은 "단임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훼손한다"는 점을 개헌의 필요성으로 제시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고, 또한 국가적 전략과제나 미래과제들이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되기 어려우며, 특히 임기 후반기에는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임기를 맞추는 것에 대해서도 "현행 5년의 대통령제 아래서는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수시로 치러지면서, 정치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여 국정의 안정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87년 이후 대선, 총선, 지방선거가 한 번도 없었던 해는 8년 뿐이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개헌을 하려면, 현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임기가 각각 내년 2월과 5월에 끝나는 시점을 앞둔 지금이 적기라고 밝혔다. 다음 정부로 넘어갈 경우 차기 대통령 임기는 2013년 2월에 끝나고, 차기 국회의원은 2012년 5월에 끝나 9개월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를 1년 가량 줄여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기회를 넘기게 될 경우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같은 해에 끝나는 20년 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설명한 것과 같은 근거로 정치권 인사들과 학계인사들이 현 정부내에서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고 주장해왔다. 영토조항 등 다른 부분까지 확대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우선 시급하고, 상대적으로 논의가 모아져 있는 '4년 연임'문제만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2006년 7.26 재보궐선거일인 26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4동 한 아파트 단지내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1987년 부터 현재까지 대선 등 선거가 없었던 해는 8년 뿐이었다.
2006년 7.26 재보궐선거일인 26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4동 한 아파트 단지내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1987년 부터 현재까지 대선 등 선거가 없었던 해는 8년 뿐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87년 이후 대선ㆍ총선ㆍ지방선거 등 선거가 없었던 해는 8년 뿐

범 여권의 대선 후보들인 고건 전 총리,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 모두 이에 대해 찬성해왔다. 한나라당에서도, 김덕룡 전 원내대표가 2005년 2월 국회대표연설에서 이같은 개헌필요성을 제기했고, 박근혜 전 대표도 대선을 앞둔 개헌논의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나, '4년 중임제'는 그의 소신이라고 밝혀왔다. 권철현·정의화 의원 등도 지난해 대정부 질 문등에서 개헌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민주당도 찬성의견을 보여 왔다.

학계에서도 김형성 한국 헌법학회 회장이 지난해 11월,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부통령제 도입 등을 담은 헌법개정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고, 양건 ·이관희·강효백·박명림 교수 등이 4년 중임제 개헌 등을 주장해왔다. 임채정 국회의장은 이런 의견들을 근거로 지난해 제헌절 경축식 축사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전국단위 선거주기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 기본권의 내용적 보완과 국가운영체계의 개선 등을 통해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면서,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헌법의 개정방향을 연구하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밝힌바 있다.

청와대는 이번 제안이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담화발표와 동시에 '설명자료'를 내고, 임기조정과 권력구조 문제는 노 대통령의 2002년 대선공약이었으며, 당선후 선대위 해단식에서 개헌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개헌을 위해서는 앞으로 3개월이면 충분하다면서,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주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부인했다.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이상 공고하고 공고일로부터 60일이내 국회가 재적의원 2/3이상 찬성으로 의결하고, 의결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실시한 뒤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헌법개정이 확정되기 때문에 "대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서도 개헌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1일 오전 박근혜, 손학규, 원희룡, 이명박 후보등 대선주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남산에 올라 단배식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임제 제안에 범 여권 대선후보들은 찬성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일단 연임제 제안을 반대하고 나섰으나 대선주자들 사이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1일 오전 박근혜, 손학규, 원희룡, 이명박 후보등 대선주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남산에 올라 단배식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임제 제안에 범 여권 대선후보들은 찬성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일단 연임제 제안을 반대하고 나섰으나 대선주자들 사이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범 여권 대선 후보 연임제 찬성

그간의 이런 논의와는 무관하게, 이번 개헌 제안이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 헌법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안을 의결하게 돼 있어, 의석 127석을 가진 한나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일축해왔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제안하는 것은 국민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정치적 노림수'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말을 쏟아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논평했다. 또, "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개헌 및 개헌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차기 정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재확인했다. 대선주자 중 1, 2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도 그동안 같은 입장을 보여 왔다.

이번 노 대통령의 제안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로 탄생한 이른바 '87년 체제'를 바꾸자는 주장을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헌정사에 중대한 사건이 될 전망이다.

또 이번 제안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경우,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을 놓고 갈등하고, 한나라당의 '빅3'가 각축하는 상황을 압도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국의 기본구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현 정부에 대한 평가보다는 개헌여부를 놓고 찬반이 갈리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경쟁하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간에 이 문제를 놓고 균열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단 공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9일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제안 대국민담화를 하자, 한나라당 이날 오후 긴급최고중진연석회의를 소집해 당입장을 논의했다. 강재섭 대표등 한나라당 긴급최고중진연석회의 참석자들은 인사말도 하지않은채 바로 비공개회의에 들어갔다.
9일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제안 대국민담화를 하자, 한나라당 이날 오후 긴급최고중진연석회의를 소집해 당입장을 논의했다. 강재섭 대표등 한나라당 긴급최고중진연석회의 참석자들은 인사말도 하지않은채 바로 비공개회의에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