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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상자로 만든 썰매에 손녀를 태우고 있다. 썰매에서 내린 손녀가 ‘하지, 한머니 타!’라고 하는 뒤 트렁크에 삭힌 풋고추와 배추도 정겹다.
할머니가 상자로 만든 썰매에 손녀를 태우고 있다. 썰매에서 내린 손녀가 ‘하지, 한머니 타!’라고 하는 뒤 트렁크에 삭힌 풋고추와 배추도 정겹다. ⓒ 최종수
이 세상에 행복한 일이 많겠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처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의 크기와 도움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요일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점심을 준비하는데 사용하라며 배추와 풋고추를 가져가라는 전갈이 이웃에게서 왔습니다. 손수 농사지은 배추를 신문지에 싸서 보관하고 감식초와 소금물에 삭힌 풋고추였습니다.

섬진강 댐을 발아래 두고 80~90의 노인들 네 가구를 돌보며 50대 후반의 부부가 사는 사양리입니다.

그 부부는 조금은 더듬고 설익은 말로 종알거리는 손녀의 재롱에 하루가 짧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녀는 하늘이 내려준 천사와 같은 선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뽀뽀를 하고 할머니에게 재롱을 피우는 손녀 솔우.
할아버지에게 뽀뽀를 하고 할머니에게 재롱을 피우는 손녀 솔우. ⓒ 최종수
잠시라도 부모의 품을 떠나 있기에는 어린 세 살배기 솔우. 한국 무용가인 엄마가 해외공연을 가야 하는 기간에는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생활합니다.

@BRI@솔우는 할아버지 볼에 '쪽!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하고, 앙증맞게 볼을 물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쟁반에 담아온 반찬 그릇을, 할아버지가 닦은 밥상 위에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하나씩 놓는 손녀입니다.

밥과 국그릇을 앞에 두고 혼자서도 야무지게 밥을 먹고, 할머니가 준비한 과일 접시를 들고 조심조심 걸어오는 어린 손녀는 할머니의 도우미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아빠다! 아빠!"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후다닥 수화기를 듭니다.)
"아빠야!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전화수화기로 ‘아빠 힘내세요!’ 노래하고 있는 솔우
전화수화기로 ‘아빠 힘내세요!’ 노래하고 있는 솔우 ⓒ 최종수
아빠와 떨어진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그리움과 사랑은 그칠 줄 모릅니다.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세 번을 반복해서 부르더니 반절은 알아들을 수 없는 흥분된 목소리로 종알거립니다. 행복이 쏟아져 나오는 통화였습니다.

"아빠 오늘 처음으로 콩을 먹었어요. 닭고기도 많이 많이 먹고요. 아빠 오늘 저녁에 한머니랑 하지랑 기도했어요. 내일 또 아빠를 위해서 기도할 거예요."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는 손녀의 풍경은 내 입가에도 잔잔한 웃음꽃을 줄줄이 피어나게 했습니다.

"우리 솔우가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네 가구에 남아 사시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길가에서 만나면 달려가서 '안녕하세요?' 배꼽 인사를 하니, 동네 어른들에게 인기가 짱이래요."
"손녀 자랑은 팔불출이라 했는데 솔우 자랑은 팔불출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네요."


양치질을 하고 거울 앞에서 로션을 바르고 있는 솔우. 고추를 마주 보며 들고 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뒤를 개밥을 들고 따르는 솔우.
양치질을 하고 거울 앞에서 로션을 바르고 있는 솔우. 고추를 마주 보며 들고 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뒤를 개밥을 들고 따르는 솔우. ⓒ 최종수
식사를 마치고는 할머니가 가져다준 칫솔을 들고 '치카치카'를 합니다. 세수를 하고 얼굴과 손에 로션을 발라주자 의자에 올라가 거울을 보며 골고루 얼굴에 바릅니다.

'울고 때 쓴다고 다 받아주지 말기!! 꼭!', '혼낼 건 혼내기(단호하게)'라는 아빠가 벽에 붙여놓고 간 손녀 보육비법은 아빠의 지나친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신문지에 싸서 마루에 쌓아놓은 배추를 포대에 담는 할아버지, 감식초에 삭힌 풋고추를 큰 비닐봉지에 가득 담는 할머니, 그 큰 비닐봉지를 나란히 마주 들고 자동차로 가는 부부. 멍멍이 밥을 들고 따라오는 손녀.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에 있을까요?

트렁크가 하늘로 열린 자동차 앞으로 상자로 만든 눈썰매를 끌고 나오는 손녀. 할머니가 끄는 썰매가 눈이 녹은 곳에서 멈추자, 손녀가 썰매에서 나오며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말.

"하지, 한머니, 타! 타! 썰매 타!"

"하지, 한머니 사랑해요!"
"하지, 한머니 사랑해요!"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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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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