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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의 흉기에 찔려 죽은 몽족 차 방의 생전 모습.
ⓒ AP뉴스 홈페이지
지난 6일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시 인근 야산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차 방(Cha Vang, 30)으로 알려진 이 변사자는 전날 실종 신고가 돼 있었다. 위스콘신 주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야생동물 사냥을 나갔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 시신을 조사한 마리넷 카운티 치안당국은 그가 흉기로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치안당국은 같은 날 인근 병원에서 총상 치료를 받은 제임스 니콜스(28)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치안당국은 니콜스가 다른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그 규정을 어긴 혐의로 일단 그를 체포하고 차 방 사건과의 관련성을 조사중이다.

하지만 치안당국은 이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정보 제공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유는 자칫 이 사건이 몽족이 많은 위스콘신, 미네소타주의 인종 갈등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 백인인 니콜스에 비해, 차 방은 위스콘신주의 가장 큰 아시안계 소수민족인 몽(Hmong)족이다. 이 곳 몽족 주민들은 차 방 사건이 2004년의 인종 갈등 사건과 연관이 있을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인들에 의한 보복?

@BRI@2004년 11월 몽족인 차이 수아 방(38)은 위스콘신주와 맞붙은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시에서 백인 사냥꾼 6명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다른 2명에게는 상처를 입혔다. 당시 트럭 운전사였던 차이 수아 방은 백인들이 자신에게 인종차별성 발언과 욕을 하면서 먼저 총을 쏴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들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서부(Midwest) 소도시에서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이 사건은 백인과 몽족의 인종 갈등으로 비화돼 한 동안 이 지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차 방의 죽음은 몽족에게 과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몽족 주민인 나오 방(60)은 사건 직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는 이 사건이 (백인들에 의한) 보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들은 이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몽족 식품점을 운영 중인 마이타오 뷰 리는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기 오는 손님들 중 일부는 차 방 사건이 인종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나는 (인종 문제가) 아니길 바라지만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치안 당국이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니콜스의 약혼녀 데시아 제임스(20)가 10일 AP통신에 니콜스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치안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몽족 주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데시아는 사건 직전 차 방이 니콜스의 다람쥐 사냥을 방해하는 것 때문에 둘이 다투다가 차 방이 먼저 니콜스에게 총을 쏴 정당방위 차원에서 차 방을 죽였다고 밝혔다.

데시아는 니콜스의 사냥 구역에 차 방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니콜스가 '내 구역에서 나가라'고 했지만 그(차 방)가 가지 않고 다람쥐들이 도망가도록 했다"며 "니콜스는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지만 못 알아 듣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AP통신은 차 방이 영어를 전혀 못해 그런 공격을 유발할 수 없다고 차 방의 부인이 증언한 사실을 덧붙였다. 마리넷 카운티 치안당국도 사건 직후 기자 브리핑에서 니콜스가 혼자 사냥을 했다고 밝혀 데니스가 사건 정황을 어떻게 아는 지에 대해 의문이 남고 있다.

미국에 버림 받고 뿔뿔이 흩어진 몽족

차 방 사건의 이면에는 몽족의 슬픈 역사가 스며 있다. 몽족은 동남아시아 베트남∙라오스 북쪽과 중국 위난성 산악지대에 2000여 년 간 살아왔다. 인구 400만~500만 명의 소수민족이 외세의 유입으로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 건 베트남 전쟁 때문.

미국 CIA는 북베트남과 중국 등 공산권의 남하를 막기 위해 몽족을 이용했다. '비밀부대(Secret Army)'로 알려진 방 파오(Vang Pao) 장군의 몽족 군대는 라오스 북부 롱 청(Long Cheng)이라는 도시를 근거로 미군의 베트남 전쟁을 도왔다. 한 때 인구가 3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이 도시는 번성했지만 1973년 미군의 철수와 함께 수난의 시대를 맞았다.

미국의 지원이 중단된 가운데 베트남, 라오스 등의 보복 공격의 희생이 됐다. 이 때 살해된 몽족은 10만명이 넘고, 30만 가까운 난민이 인근 타이 난민 캠프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살해된 차 방도 2년 전 타이 난민캠프로부터 위스콘신주로 망명한 사람 중 하나였다

미국에 의해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 들었지만, 베트남 종전 후 미국은 몽족을 버렸다. 수 십 만명의 난민 중 미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이 허락된 몽족의 수는 3466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미군 철수 후 2년이 지나고 남베트남이 완전히 무너진 75년에야 이루어졌다.

이후 76년 1만1000명, 78년 3만명의 망명이 허락됐지만 대부분은 비밀부대에서 활동한 남자들에게만 허락됐다. 이들의 가족이 미국에 올 수 있었던 건 10여년이 지나 미국에 난민법(the Refugee Act)이 제정된 80년이 되어서였다.

미국은 그들을 배신했나

미국은 몽족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지극히 소극적일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사지(死地)로 몰아 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90년대 들어서 미국 클린턴 정부의 입김 속에 유엔(UN)은 타이 난민캠프에 있던 몽족을 라오스로 강제 송환하려 했다.

라오스에는 몽족 비밀부대의 후예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고 라오스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라오스군에 의한 군사적 공격, 화학 무기 사용, 강간, 고문 등 인종말살(genocide) 수준의 탄압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한 언론인은 미국의 송환 계획을 '배신(betrayal)'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미국에 온 몽족과 인권단체의 지속적인 반대로 송환 계획은 저지됐지만, 타이 난민캠프 등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던 몽족의 미국 망명은 2004년까지 허락되지 않았다. 대신 몽족은 중국(300만명), 베트남(79만명), 프랑스(1만5000명) 등으로 흩어져 갔다.

차별 받고 있는 미국의 몽족

▲ 전통 의상을 입은 몽족의 여인과 아이들.
ⓒ Jeff Lindsay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몽족은 17만여명(2000 인구 센서스). 특이한 점은 서부와 동부의 해안 지대에 많이 사는 다른 아시안들과 달리, 이들은 미국 중서부 캐나다와의 경계 지대에 많이 산다는 것. 2004년 마지막으로 1만5000여명의 몽족 망명이 허용되었을 때 인구가 적은 위스콘신과 미네소타 외에는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주가 없었기 때문.

지금은 8만여명의 몽족이 이 지역에 살고 있어 지역 최대의 아시안계 소수 민족이 되었다. 나머지는 캘리포니아(6만5000명), 노스캐롤라이나(7000명) 등에 살고 있다. 고향을 상실한 이들은 빠르게 미국 문화에 흡수되고 있지만, 여러 도시에서 이들은 종종 차별의 주 대상이 되고 있다. 기존에 살고 있던 다른 인종들은 몽족 때문에 직업 경쟁이 치열해졌고, 복지수혜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이들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2000년간 살던 아시아의 터전을 떠나 미국에 온 몽족 차 방의 죽음은 그들의 역사를 살피게 했다. 평화롭게 살던 몽족은 외세에 의해 전쟁에 휘말리고, 철저히 버림받고, 수난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의 역사는 반만년 우리 민족의 역사와 너무나 흡사했다. 이들의 언어가 동북 아시아어랑 비슷하고, 한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7조선 중 쥬신족이 몽족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우리와 생김새도 닮았다. 재미 한인처럼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까지도.

차 방의 죽음은 힘 없는 민족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차별과 수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몽족#살인사건#수난사#미국#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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