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지난 1972년 10월 유신에 찬성하는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신대 강인철 교수가 최근 출판한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라는 책 375쪽에는 10월 유신 선포직후인 1972년 11월10일 서울 교회와 경찰협의회 이름으로 발표한 '10월 유신과 평화통일을 위한 우리의 기원' 이라는 결의문이 실려있다.
결의문은 "10월 유신으로 조국의 통일과업과 번영의 기틀을 확고히 하고 모든 부조리를 자율적으로 시정하는 사회기풍을 함양한다"며 "남북 5천만 겨레에게 복음선교로써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고 알차게 발전·육성시켜 민주국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로 이룩되기를 기원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결의문 서명자 명단에 당시 신부였던 이재정 장관의 이름이 들어있다. 이 장관의 이름은 결의문 발표 다음날 나온 <동아일보>에도 실려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결의문을 문서로 본 일도 없고 참여한 일도 없다"며 "신부로 서품받은 날이 1972년 10월24일로 결의문 채택했을 때는 신부가 된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서명자 명단을 보면 한경직 목사, 조용기 목사 등 원로들 위주로 되어있다"며 "29살의 젊은 신부로 교구장 비서를 하고 있는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 자체가 의아스럽다"고 해명했다.
@BRI@이 장관은 "1974년부터 김상근 목사, 오충일 목사,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10월 유신 반대운동을 했다"며 "따라서 명단에 들어있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장관의 해명은 석연치 않았다.
결의문에 실려있는 '이재정'이라는 이름이 본인이 아니라면 동명이인의 다른 신부가 있다는 말이 된다. 당시 신부가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명이인의 이재정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장관은 동명이인의 다른 신부가 있었다고 해명하지 않고 "결의문을 본 적이 없고 서명한 적이 없다"고만 해명했다.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이 장관은 애초 설명과는 달리 "아마도 당시 성공회에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명단을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