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시인 장석주 선생님의 산문집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제가 썼던 글을 관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고르게 됐습니다."
지난 13일(금) 저녁, 첫마디부터 수수한 솔직함을 풍기는 수필집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프다>의 저자 신미송(48)씨를 만났다. 2006년 한국문인에 '민달팽이'란 소설로 등단한 늦깎이 문학도다. 그런데 첫 작품집은 수필이다.
"처음엔 수필이었죠. 그런데 일종의 한계점도 느껴지더군요. 수필문학이 정화란 차원에선 좋지만 늘 자신을 돌아보며 모범적으로 반성을 해야 하는… 사람이 그렇게 살지만은 않잖아요. 그래서 소설로 갔다가, 지금은 딱히 장르를 구분하는 건 아닙니다."
기획물 도서가 범람하는 시대다. 급조되고 왜곡된 기억이 유려한 표현의 색동옷으로 포장되기 일쑤인 것이 현실. 하지만 작가는 책에 담아낸 건 단순히 한 두 해의 경험이 아닌 지난 15년 간 삶의 자취라고 말한다.
"그간 살아오며 관계 맺었던 이야기들을 풀고 가고 싶었습니다. 흔한 이야기로 미움도 사랑이라고 하잖아요. 남편, 아이들, 사회의 인연들… 내가 아닌 관계죠. 나이 40이 훌쩍 넘어 돌아보니 모든 관계의 바탕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책에는 살며 만났던 모든 이들에 관한 모습이 담겨 있다. 가족과 이웃, 휴가길에 만난 이들, 모래펄의 조개, 때로는 바람처럼 떠나버린 여행길 거울 속 자신의 모습까지. 다른 점은 끝없이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여느 수필과는 달리 그 모든 사물들과 부단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아키코가 소중한 사람이라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스키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딸 같은 아키코가 염려되어 혹시 애인이냐고 물었다.(중략) 아키코는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내 사람으로 가질 수 없어요. 가정이 있어요. 이를 어쩌나 철없는 아가씨야. 외롭다는 아키코를 안아주고 다독거려주었다. 아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 '아키코를 보내며' 중에서
일본 대학생으로 자신의 딸과 한일 청소년 교류를 가지며 집에 머물던 여학생과의 인연이다. 부정(父情)을 그리워하는 소녀의 심정, 그리고 그녀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흡사 피천득의 <인연>처럼 담백한 문장 속에 나열되어 있다.
긴 호흡으로 가져가는 문학청년의 꿈
해마다 새해 1월 1일을 목마르게 기다리다 절대다수는 비탄에 젖어 한숨짓는 이들이 있다. 바로 문학청년들이다. 신미송씨 역시 처녀시절 신춘문예 공고만 보면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던 것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노라고 고백한다.
"분명 고루한 답이라고들 하시겠지만… 굳이 작가의 길을 걷지 못하더라도 한때 자신이 무언가에 중독되고 미칠 수 있었다는 것.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것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 그리 떨리지만은 않는다고 한다. 많이 팔리는 것 보다는 책을 읽는 독자가 "이 사람은 이런 식의 인생을 살았구나"하고 공감을 해준다면 만족한다며 무엇보다 내면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안개터널을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다. 안개는 극세사의 긴 자락을 사방에 늘어놓고 여유를 부린다. 한번 밀어내봐. 쉽게 밀리지 않을 걸, 배짱이 두둑하다. 뒤로 가로등 불빛이 주춤거리며 멀건 표정으로 내 꽁무니를 구경하고 있다.
- '문득, 새벽에 길을 나선다' 중에서
한편 생동감 넘치고 뛰어난 묘사력 역시 책장 사이사이마다 숨 쉬고 있다. 마치 긴 시간 호흡으로, 세월의 해변에서 반짝이는 언어를 건져낸 듯하다. 한편의 산문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운율감도 뛰어나다.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바람을 들어보았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품지 못하는 관계의 아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설사 상대가 위해를 가해오더라도 그 기저에는 관심과 사랑이 자리한다고 믿고 싶다고 전한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제목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왜? 사랑은 증오보다 조금 더 아프냐고.
"사랑은 너무 많은 복선과 상징들이 존재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명징해지죠. 그래도 버릴 수 없으니까… 싫다고 버릴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