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전라남도 무안군의 한 마을은 승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옛부터 산세가 수려하고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로 농가호수가 100호에 이르는 큰 마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마을에 외부사람들의 묘가 하나둘 들어오더니 이제는 1000여 기를 넘어섰다. 마을 이곳저곳은 묘지로 둘러싸여 있다.
요즘 농촌에 가면 대부분 마을에서 장의차량 금지 표지판을 마을입구에 붙이고 묘지 유치를 금지하고 있다. 농촌에 묘지를 유치하는 것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농지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금지는커녕 묘지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묘지 유치 거래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묘지가 없는 밭보다 있는 밭이 더 많아
@BRI@농지보다 묘지로 땅을 거래하면 비싸게 땅을 팔수 있고, 묘지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마을의 자금으로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몇백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다가, 별도의 뒷거래로 얻는 이익이 적지 않고, 묘지 유치 이후에도 벌초를 통한 AS까지 해서 수익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엔 소규모였던 묘지 유치는 요사이에 접어들면서 점차 대규모로 늘어났다. 한번 유치하면 최소 6기 이상이다. 이제 마을의 밭들은 묘지가 없는 밭보다 묘지가 있는 밭이 훨씬 많은 상황. 이것도 모자라 여기에 국유지를 비롯한 타인 소유의 임야에도 불법으로 묘지를 유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묘지 문제로 농촌이 서로 갈등하게 된 것도 큰 문제다. 이곳의 경우, 묘지를 반대하는 윗마을과 찬성하는 아랫마을이 이 문제로 갈라져 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묘지를 유치하면 마을에 150만원 정도가 지원된다. 이 돈은 사람들의 단체관광이나 마을회관 경비 등으로 쓰인다. 그러나 관광을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랫마을이고, 마을회관도 아랫마을에 있다.
군청에 민원은 냈지만...
지난해 12월 중순 국유지에 한 집안의 집단묘지를 유치해서 마을에서 말썽이 생겼다. 급기야 마을회의를 통해 이제 외부인 묘지는 절대로 유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군청 민원을 철회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이장이 바뀌면서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 마을 어귀에 20기 가량의 초대형 묘지가 유치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또다시 군청에는 민원이 접수됐지만, 군청 직원이 현장에 나오면 일을 중단하다 가고 나면 다시 일하더니 이틀째에는 아예 군청 직원이 있건없건 묘지작업을 강행했고 20여기가 들어오고 말았다.
군청은 묘지 규모를 파악하고 있고, 그 뒤 이전명령을 내려서 지켜지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 절차를 밟게 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고, 고발돼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통상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라서, 그보다 많은 이익이 나는 묘지사업이 중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돈 앞에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행정조치도 문제지만 돈맛을 알아버린 마을사람들의 묘지유치사업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마을에서는 묘지 유치를 반대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마을 스스로 통제력을 상실하고 사람들 사이도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