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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도로 위에 놓여있는 너구리의 사체와 그 길을 지나는 자동차
차가운 도로 위에 놓여있는 너구리의 사체와 그 길을 지나는 자동차 ⓒ 조태용

지리산과 섬진강이 그림처럼 흘러가는 길은 섬진강 100리 길로 알려진 구례 하동간 19번 국도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 좋은 곳은 동물의 눈에도 보기 좋은지 이곳에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아갑니다.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 멧돼지로 시작해서 곰까지 방사해서 키우는가 하면 이곳은 수달 생태보호 구역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동물들이 여기서는 조금 관심만 가지면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물들이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어제 출근길 너구리가 도로 위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습관적으로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침 일찍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그냥 보고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아무 생각 없이 퇴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출근길에 보니 너구리는 어제 그 위치에서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세우고 너구리를 길 가장자리에 옮겼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너구리의 사체 중 일부는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너구리의 사체 중 일부는 보이지 않았다. ⓒ 조태용


너구리 사체를 양지바른 곳으로 옮기다

@BRI@평소 장갑을 차에 항상 두고 다니는데 장갑도 보이지 않더군요. 다행히 겨울이라서 썩거나 벌레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철에 하루 이틀만 지나도 배 속에 벌레들이 가득한 경우가 있습니다. 너구리를 옮겨서 양지바른 곳에 옮겨 주었습니다.

주변에 돌도 없고 너구리를 덮어줄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서 "잘 가라 너구리야"라고 한 마디 해주고 차로 돌아오는데 자꾸 자동차에 치여 배가 갈라져 튀어나온 시뻘건 살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이미 자동차 교통사고로 얼굴도 사라져 버린 너구리지만 그래도 내가 만일 죽어서 시체가 되어도 내 창자를 다 드러낸 채 있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풀들을 뜯어서 너구리를 덮어주었습니다. 덮어주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하더군요. 이렇게 너구리를 도로 위에서 길 옆으로 옮겨주고 풀을 뜯어 덮어주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한 죽은 생명에게 존엄을 지켜주는 일에 걸린 시간치고는 너무 작은 시간입니다. 제 경험으로 동물의 사체를 옮겨 주었다고 해서 병에 걸리거나 재수가 없거나 하지 않습니다.

작년에도 이 도로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죽어 있었고 그 너구리를 위해 돌무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고작 500m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 길은 너구리의 잦은 이동 통로일 것입니다.

죽은 동물 옮겨주기는 최소한의 예의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도로 위해서 자동차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 동물이 사람에게 위해 동물인지 농작물을 해치는지는 나중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바퀴로 동물을 죽였다면 적어도 길 옆으로 옮겨주는 것이라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생명은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그 생명을 자신의 편리를 위해 이용하는 자동차로 죽였다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국토관리청에 전화를 해서 동물의 사체가 있으니 옮겨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길 옆 양지바른 곳에 너구리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길 옆 양지바른 곳에 너구리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 조태용
그대로 두면 자동차가 사체를 피하기 위해 급정지를 하거나 우회하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야생동물들은 이제까지 인간에 의해 서식처를 파괴당하고 자신들의 영토를 끊임없이 빼앗겨 왔습니다. 거미줄 같은 도로로 인해 동물들은 인접 지역에 마음 놓고 건너갈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했고 길을 건너려면 생명을 건 모험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동물이 도로 위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나가다가 동물의 사체가 있다면 그것이 자신의 애완동물의 사체라고 생각해주시고 측은한 마음을 가져 더 이상 이 바퀴 저 바퀴에 밟히고 짓밟혀서 찢기고 짓이겨져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동물의 사체를 보고 그냥 우회하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 동물을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동차에 의해 죽은 동물들을 더 이상 도로 위에서 분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시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동차가 사람의 시체를 피해 지나가면서 죽어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만큼 끔찍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동물이기 때문에 즉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우회하고 동물을 차로 죽이고도 "에잇 재수 없어" 한 마디를 외치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재수가 없는 것은 그런 사람들과 살고 있는 동물들입니다.

동물도 생명을 가진 존귀한 존재

동물과 사람은 다른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고통이 있고 죽음은 슬픈 것입니다. 어제 죽은 너구리는 다 어미 너구리였습니다. 아마 어린 새끼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이제 막 어린 생명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리산 자락 어디에선가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너구리가 어미를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분명 동물과 사람은 다릅니다. 하지만 모두 생명을 가진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단 하나의 새로운 생명도 탄생시킨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이고도 그것이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도로에 나부끼는 짐승의 시체를 넘고 넘습니다.

나치는 다른 인종이 나치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살하였으며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끔찍한 민족말살 역시 다른 민족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생명이 존엄하지 않다고 여기면 다른 민족 역시 다르다는 이유로 그 생명을 존중하지 않을 것을 용인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모든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평화라는 것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국토관리청 도로이용불편신고센터 신고 번호는 080-0482-000

*이 기사는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와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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