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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시장 생선이 얼마나 싱싱한지 한번 보세요. 값도 싸답니다.
골목시장 생선이 얼마나 싱싱한지 한번 보세요. 값도 싸답니다. ⓒ 김혜원
포근한 토요일(20일) 오후. '아니 추운 소한 없고 아니 더운 대한 없다'는 옛말처럼 포근한 대한 날. 좁은 바닥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대형 마트들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주택가 사이의 한 골목시장을 찾았습니다.

주택가 골목에 형성된 골목시장은 기껏해야 30~40개 점포와 몇 개의 좌판, 서너개의 포장마차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수백평 규모의 으리번쩍한 대형마트들에 비한다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시장이지요.

손수말리신 무말랭이들 가지고 나오신 할머니는 오고 가는 손님이 반갑다.
손수말리신 무말랭이들 가지고 나오신 할머니는 오고 가는 손님이 반갑다. ⓒ 김혜원
겉모습은 작고 초라하지만 시장 안에 사람 사는 냄새와 오고가는 정 만큼은 대형마트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입니다.

"무 말랭이사요, 내가 집에서 직접 말렸어. 요거 가져다가 맛있게 무쳐 먹어봐. 밥 한그릇 뚝딱이지."

"눈을 떴다 감았다하는 생선사세요. 얼마나 싱싱한지 바다로 뛰어 가려고 해."

"금방 나온 따끈한 떡 있어요. 찰떡, 호박떡, 구름떡, 계피떡..."

시장 초입에 자리를 잡은 좌판할머니에게 무말랭이를 한 봉지 사며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숨부터 쉬십니다.

"경기는 뭔 경기, 손님이 있어야지"

한국 떡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
한국 떡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 ⓒ 김혜원
"경기는 뭔 경기. 손님이 있어야지. 오늘 마수도 못했어. 그래도 오늘은 날씨라도 풀렸지. 추운 날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발꼬락이 얼어 올라오도록 앉아있어도 마수도 못하는 걸. 오늘은 춥지 않으니 사람들이 좀 댕기네."

대형마트가 매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목청을 높이십니다.

"지난 추석에 매출이 3분의1로 줄었어요. 이 좁은 동네에 대형마트가 몇 개씩 생기니 우리 같은 작은 시장 상인들이 견뎌내겠어요? 나도 대형마트에 가 보았지만 생각보다 싸지도 않더구만. 우리 생선 좀 봐요. 얼마나 싱싱해. 대형마트 물건이면 뭐든지 싸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치 않아요. 시장에도 싸고 좋은 물건이 많거든요."

채소와 나물종류는 마트보다 골목시장이 훨씬 싸다는 주부들
채소와 나물종류는 마트보다 골목시장이 훨씬 싸다는 주부들 ⓒ 김혜원
10년 넘게 한자리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있다는 아줌마는 골목시장의 규모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도 살아야지요. 30년 전에는 윗골목, 아랫골목 저 아랫길까지 좌판이랑 가게들이 즐비했었는데 지금은 다들 나가고 골목 두개가 전부에요. 하루 하루 골목시장이 줄어가는 걸 보면 참 안타까워요. 이렇게 하나씩 둘씩 문을 닫으면 골목시장도 사라지는거죠."

사라지는 골목시장을 아쉬워하는 마음은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하러 나왔다는 주부들은 한결같이 마트보다는 골목시장에 정이간다고 입을 모은다.

"값싸고 싱싱해서 골목시장을 이용해요. 특히 야채는 훨씬 저렴해요. 어떤 때는 30% 가까이 저렴한 것도 있더라구요. 대형마트라고 뭐든지 싼 것은 아니죠. 공산품은 몰라도 야채나 생선은 시장이 싸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 오면 정감이 있잖아요."

손주들에게 줄 돈가스를 사러 나오신 할머니
손주들에게 줄 돈가스를 사러 나오신 할머니 ⓒ 김혜원
손주들에게 줄 돈가스를 사러 나오셨다는 할머니도 골목시장 단골 손님이다.

"이집이 맛있어. 며느리가 백화점에서도 사오고 하지만 여기만 못하더라구. 집이 가까우니까 운동 삼아 걸어 나와서 사가지고 가는 거야. 백화점 백화점해도 나는 구식이라서 그런지 시장이 좋아. 얼마나 편해. 다리 아프면 앉아서 쉬었다가 가고 날 좋으면 장사하는 할머니랑 말동무도 하고..."

올해 여든이 되셨다는 야채가게 할머니. 명일동 골목시장의 터주대감이시란다. 말린 옥수수처럼 거칠어진 손, 다 닳아 없어진 손톱, 골목시장에서 반평생을 보내신 할머니도 요즘 같은 불경기는 처음이랍니다.

"골목시장이 살아야 서민이 살지"

거칠은 손이지만 봉지 가득 정까지 담아주시는 골목시장 할머니
거칠은 손이지만 봉지 가득 정까지 담아주시는 골목시장 할머니 ⓒ 김혜원
"장사한지 한 30년 되었나? 여기서 장사해서 6남매 키워 시집장가 보냈다네. 이 찌그러져 가는 천막가게에서 콩나물도 팔고 배추도 팔고... 그렇게 해서 육남매를 다 키웠는데 마툰지 뭔튼지 커다란 시장이 들어온 후론 영 재미가 없어. 날이라도 추워봐. 개미새끼 한 마리 보기 어렵지. 추운데 누가 오겠어. 집에서 그냥 놀기가 뭐해서 나오긴 하는데 뭐가 팔려야지."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손님과 말 한번 나누어보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는 할머니. 푼수 없이 마구잡이로 아는 채를 하며 손을 잡는 기자가 싫지 않으신지 고구마 2천원어치를 달라는 주문에 봉지가 터져라 가득 담아주십니다.

"밥은 먹은 겨? 점심은 따시게 먹은 거여? 밥은 먹고 댕겨야지. 이거 가져다 구워 먹어봐. 아주 달아."

주부들의 반찬걱정을 덜어 주는 골목시장 반찬가게.
주부들의 반찬걱정을 덜어 주는 골목시장 반찬가게. ⓒ 김혜원
싱싱하고 저렴한 물건은 물론 따뜻한 인정이 살아 숨쉬는 골목시장. 거친 할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길. 골목시장 취재를 나왔다는 기자에게 상인들의 당부가 쏟아집니다.

"골목시장이 살아야 서민이 살죠. 골목시장 좀 많이 이용해주세요."
"골목시장 많이 알려주세요. 큰 시장, 대형마트, 백화점만 좋아하지 말고 동네 작은 골목시장도 찾아와 주세요."
"이번 설에는 골목시장 물건도 좀 팔아주세요. 값싸고 좋은 물건 많은 골목시장이요."

2005년 중기청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는 1700여개의 재래시장이 있다고 합니다. 이중 15%이상의 점포는 비어있으며 나머지 상점들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합니다. 주변 중소상인들을 생각치 않고 공격적으로 들어서고 있는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들과의 경쟁때문입니다.

일반 재래시장에 비하면 골목시장은 훨씬 더 작은 규모의 시장입니다. 그러다보니 대형마트와의 경쟁은 아기와 어른의 싸움처럼 그 결과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과 골목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대형마트에서는 만날수 없는 우리의 떠뜻한 이웃과 그들의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아니 한달에 한번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재래시장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은 기본 사람사는 냄새와 이웃의 정은 덤으로 드린답니다.

규모는 작아도 있을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골목시장
규모는 작아도 있을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골목시장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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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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