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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기희 기자의 '아직도 서서 쉬 하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놓고 댓글을 통해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에 반대 의견을 냈던 분들도 있었지만 기사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내용이 대세였습니다.
강 기자는 '남성다움이란 게 고작 서서 쉬?'라는 후속기사에서 이런 논란을 정리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 이후 우진용 기자가 '아직은 서서 쉬하고 싶다'라는 기사를 통해 강 기자의 의견에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 기자의 기사는 출고된지 얼마 안돼 '네티즌 편집판' 2위까지 올랐습니다. 이런 논란을 보며 정말 우리가 헤아려봐야 할 참뜻은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우선 두 분 기사의 댓글이나 추천사에서 등장하는 '어설픈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을 하는 분들이 페미니즘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바는 삶의 전 영역에서 그 동안 점유해오던 남성의 지위를 모두 빼앗아 오겠다는 야심이라기보다는, 여성들이 부당하게 빼앗겨왔던 부분을 회복하고 그 동안 그들이 수행해온 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새롭게 평가받아냄으로써 남성과 대등한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설픈 페미니즘이라면 '남성의 지위를 빼앗아 역전시키겠다'는 것이라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이라면 또 다른 불평등과 소외를 낳으므로 페미니즘의 근본 목적과 배치되는 것이겠지요.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근본 목적이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의 해소라 할 수 있기에 페미니스트들 중 많은 이들은 아동, 노인, 이민자, 동성애자, 동물, 평화, 환경 등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합니다.
그럼 남자들도 앉아서 오줌 누자는 것이 단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또 다른 불평등을 낳게 될 어설픈 페미니즘인가요? 강 기자가 앉아서 쉬하자고 한 근본 목적은 잦은 화장실 청소의 부담을 여성에게 떠안기지 말고, 변기 사용 후 흔적과 냄새를 지워 남들이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뜻일 겁니다.
그렇다면 앉아서 쉬 하던지, 조준을 잘 하던지, 주변청소를 하고 나오던지, 화장실 청소를 나누어 하던지 상호배려의 관점에서 각 가정에서 편한 방법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 그 때 그 때 마음 가는대로 방법을 취하면 될 것입니다. 잠시나마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을 때는 앉아서 쉬 하고, 빨리 볼 일 보고 나가고 싶을 때는 서서 조심스레 쉬 하면 되겠지요.
어차피 대변을 볼 때는 앉아서 '쉬'하는 남자들에게 굳이 앉아서 쉬하는 방법만 고집하며 그 방법에 익숙해지도록 따로 훈련시킬 필요도 없는 일이고요. 또한 일반 가정이 아닌, 공공장소의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까지 좌변기로 바꿀 필요도 없겠지요.
'앉아서 오줌 누기'는 미국에서 2000년부터 시작된 운동
'아직도 서서 쉬 하세요?'라는 기사를 두고 남자들이 오줌을 눌 때 '앉아서 누라'는 것만으로 받아들인다면 공방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강 기자가 정말 서서 오줌 누는 남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오줌 누기라는 사소한 행위 한 가지를 통해 상호 간의 배려의 필요성을 얘기하고자 했으리라고 대변해 봅니다.
사실 '남자들이 앉아서 오줌 누기'는 미국에서 2000년부터 이미 'www.mapsu.org'라는 시민단체가 생기며 시작된 운동입니다. 독일에서는 공공 화장실에 홍보 벽보가 붙어 있고, 일본에서는 이미 2004년에 15%의 남자들이 실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006년 11월 27일자 <한겨레신문> '미래를 여는 실천 대안생활백서' 15편에 이 운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된 바 있습니다. 녹색교통운동의 정영철 간사는 우연히 잡지에서 이 운동에 대한 내용을 읽은 후, 마침 큰 일을 보기 위해 좌변기에 앉았다가 엉덩이가 축축했던 일을 겪고는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기꺼이 변기에 앉는 또 한 명의 남자, 희망제작소 안진걸 팀장은 "서서 오줌 누다보면 자기 몸에도 튀고 가까운 세면기에 튈 때도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거친 남성' 이미지의 영화배우 최민수씨도 TV에서 "아내를 위해 앉아서 소변을 본다"고 했다고 합니다. 배뇨장애 환자는 앉았을 때 더 쉽게 오줌을 눌 수 있다고 하는군요.
'cpns'란 아이디를 가진 독자는 강 기자 기사에 다음과 같은 댓글로 이 운동에 대해 설명을 잘 해주었습니다.
"MAPSU 운동이 미국에서 시작한 지 벌써 오래죠. 저도 오랜 전부터 앉아서 일 봅니다. 그건 혼자 화장실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죠. 아니 오히려 혼자만 전용 화장실을 쓰다보면 오히려 앉아서만 볼 일을 보게 됩니다. 자신만의 공간이고 또 민감하게 청결에 대해서 느끼게 되니까 자연적인 거죠.
물론 모두 다 똑같다는 말도 아니고, 또 모두 앉아서 볼 일 보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문제는 타인을 위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에티켓과 정서적 배양의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겁니다. 타인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화장실에서부터 청결을 생활화하는 이는 다른 모든 일에서도 마음 자세가 정결하고 또 실제로 내면적으로도 충실합니다.
논리를 비약한다 말하는 이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번 실제로 실천해보라고 권고하고 싶습니다. 서서 보는 게 간편하고 쉽다지만, 앉아서 보면 왜 더 간편하고 쉬운지를 빠른 시일 내에 알게 될 것이기에 그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제가 식구들에게 말하듯 '조준이라도 잘 하라'는 댓글과 그동안 느꼈던 괴로움을 호소하는 여성분들이 꽤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많은 주부들이 느끼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나 봅니다. 이미 유럽 남성의 60% 이상이 오줌을 앉아 눈다고 하고 국내에도 그런 남성들이 있다는데, 그들이 모두 남성성이나 개인의 본성을 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
참고로 서구의 예를 들면 꼭 '그들이 그런다고 우리도 해야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마디 합니다. 그런 예를 드는 것은 '유럽인들이라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텐데 우리라고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이겠지요.
물론 과도기적으로 남성들의 좌변기 사용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앉아서 오줌 누자'는 것이 남성의 기를 꺾는 일이라는 생각은 과거의 남성중심주의적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오랜 습관을 바꾸라는 갑작스런 제안에 대한 자연스런 반발심이라 생각됩니다.
여성이 초등교사와 판사직을 선호하는 이유
우 기자는 점차 초등교사가 여성 일색이 되고 있어 아이들이 어느 한 성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걱정하였습니다. 그 점에 저도 공감하는 바가 있으며, 여아든 남아든 남교사와 여교사를 고르게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초등교사를 지원하는 남성이 적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각각의 처지와 관념이 얼마나 다른지를 대변해주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이경 교원정책연구실장은 교직이 여성화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습니다.
"교직의 여성화는 대다수 선진국에서 초등, 중등을 막론하고 심화되고 있다. 점차 교직은 비교우위를 잃게 되어 노동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남성을 유입하지 못한다.
특히 초등 교사의 경우 어린 학생의 교육은 여성들의 몫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이나 아들의 직업에 대한 부모들의 고정관념이나 차별화된 기대도 우수한 남학생이 교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선진국은 교직의 매력을 높이는 장기적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편, 여성들은 다른 직업과 달리 교직의 경우 진입하는 데 있어서 성차별이 거의 없는데다, 직업 안정성과 방학 등 혜택으로 인해 아직도 가사와 육아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하는 여성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우 기자는 새로 임용된 판사의 66%가 여성이라며 "가히 페미니즘 시대"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여성을 우대하기 위한 정책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여성들이 그 방면에 노력을 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또한 성차별이 적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자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아직까지도 전체적으로, 특히 지도그룹에서 여성의 비율은 무척 낮으며 같은 일을 해도 남성들에 비해 대우와 기대를 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혼 남녀 간에 명절에 대한 정서가 정 반대이듯이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부분에 불평등한 풍습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한참 더 여성들을 위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보다 조화롭고 행복한 공동체를 위하여 서로의 관계에 대한 여자와 남자들의 많은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패기 있는 남자라도 대변 볼 때는...
우 기자는 용기, 관용, 의지가 남자만의 덕목인 것처럼 얘기하며, 남자 아이들도 엄마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키우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마마보이'로 키워지는 아이들이 집안일을 거들고 남을 배려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과 동일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부분 양자가 배치됩니다.
오늘날 남자 애들이 나약해지는 원인은 여성을 배려하게 가르쳐서가 아니라, 자녀가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하여 부모가 스스로 경쟁의 쳇바퀴에 뛰어들어 좀처럼 아이들의 숨통을 틔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자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여자 아이들이 좀 나은 것은 부모들의 남자 아이들에 대한 과보호가 더 심하고 남자 아이들은 컴퓨터나 게임에 더 쉽게 빠지며, 여자 아이들이 생리적으로 남자 아이들보다 일찍 성숙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싱싱하고 야성적인 남자, 멋있지요. 마치 섹시한 여성이 매력적이듯이. 섹시함이 현대 여성미의 기준인듯 떠들어대는 것은 싫지만, 때로 남녀 불문하고 섹시함은 성인이 갖는 다양한 매력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처럼 싱싱함과 야성적인 매력 또한 남녀 불문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개성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문득 거친 산을 누비며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풋풋하게 자라 소박하고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산골 소녀의 캐릭터가 연상됩니다.
소위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감성을 가진 남자도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사회운동을 이끌어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소위 남성적이고 터프한 여성도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잘 키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품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있어 살려나가거나 다듬어내야 할 품성은 그의 특성을 섬세하게 성찰하며 가름해내야 할 것입니다.
서서 오줌 누는 것과 관련하여 덧붙입니다. 소년들이 둔덕에서 오줌 멀리 뿌리기 시합을 하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남자들은 아무 곳에서나 지퍼 내리고 볼 일을 봐도 될 것처럼 가르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렇게 각인된 습성으로 인해, 조금만 술에 취해도 벽에 대고 '갈기겠다'는 것을 말리기가 정말 힘이 들더군요.
문정희 시인은 "요새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고 당당하고 멋진 잡놈이 없어졌다"고 하며 그것이 어찌 여권 운동 때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영웅호걸들이야말로 여색을 탐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지 않았습니까. 또한 우 기자가 앉아서 오줌 누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군인들의 역사에서만큼 여성들을 처절하게 유린한 바가 없습니다.
하얗게 빛나는 날 선 장검을 앞에 두고 무릎 꿇고 앉아있는 무사는 멋있게 보이고 '신성한' 배설 행위를 도와주는 오강 앞에서 남성이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 오줌 누는 것은 '좀스럽게' 보이십니까?
남성의 호기로움이 오강에 대고 무릎 꿇고 오줌 눈다고 하여 무뎌질 성질의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씩씩하고 용맹스런 남자라도 어차피 대변을 볼 때는 쪼그려 앉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성품이 사라지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오줌을 서서 누고 앉아서 누는 것 하나로 페미니즘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듯, 저는 그것 하나로 남성성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현재의 생각이 서로들 다르다 하여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