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의 어머니는 10여년 전 수행공동체 정토회(지도법사 : 법륜스님)와 인연이 닿아 현재 대전정토회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봉사하고, 보시하는 생활을 삶의 중심으로 받아 들인 지 오래다. 시작은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곽씨의 동생까지 전 가족이 함께 하고 있단다.
도무지 대화를 할 수 없을 만큼 자신과 달랐던 어머니가 내면을 돌아보는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은 처음엔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특히 시험 때 극도의 긴장감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어머니는 "안 해도 된다. 괜찮다"하시며 흔들림 없이 그를 지켜봐 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편안하게 바뀌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발적으로 수행을 시작할 수 있었고,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와 사사건건 부딪혔었다. 그가 바라는 어머니와 현실의 어머니는 너무나 달랐다. 어머니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 지나친 기대에 대한 부담감 등이 그의 마음 깊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가 과중한 공부의 스트레스와 함께 바깥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한 불안정함을 알아주고 치유하는 과정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았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감정이 주체가 안 될 때마다, 마음 깊이 숨어있었던 엄마에 대한 원망심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 집으로 전화를 걸면 어머니는 '엄마가 널 힘들게 했었구나. 잘못했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유급을 당했거나 제 때 졸업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2000년 가을 쯤부터 '천일결사' 수행을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다고 한다. 화를 다스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내면을 고요히 하는데 투자하는 1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단다.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타인과의 조화를 유지하며, 이를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천일결사' 수행을 한다. 매일 1시간의 기도와 보시, 봉사 등의 선행을 1000일간 계속하는 천일결사는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대승적 관점의 수행법이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정신적 재테크 '수행'
"처음에는 100일 중에 50일도 못할 때도 있었고 그 다음에는 70일도 하고, 80일도 하고, 요즘은 거의 90일 이상 하고 있어요.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서 할 때는 정말 드물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시간은 꼭 기도하고 있어요."
그는 요즘도 숙소에서 단체생활을 하지만 기도하는데 망설임이 없다고 한다. 구미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3명이서 같이 방을 써도 시간을 내어 구석에서 수건 두 장 깔아놓고 108배를 했단다.
"서울병원으로 온 뒤에는 숙소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해서 108배 대신 명상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애들이 다 놀라거나 신기해 했지만 지금은 모두들 그러려니 하고 자리를 비켜줘요."
특히 부모님께서 함께 수행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츰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어머니께서 봉사하는 모습은 이제 그에게 자랑거리다.
그는 졸업 전부터 막연하게 돈을 벌게 되면 일정 정도 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머니와 얘기를 해보니, '처음 일을 시작하는 1년간, 남들이 수입의 10%를 기부한다면 너는 90%를 기부하고 10%로 살아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놓으셨단다. 그 역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고,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시작하게 되었다.
곽씨의 부모님은 곽씨에게 물질적 재테크를 위한 종잣돈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정신적 재테크'를 할 줄 아는 기술을 물려주었고 곽씨는 지금 그것을 익혀가고 있는 중이었다.
1년간 '북한 의료 지원'에 2천만 원 기부
그가 1년간 기부한 것을 숫자로 따지면 2천만 원이 넘는다. 그는 이 돈의 전액은 북한의 의료지원사업에 쓰이도록 '지정기부' 했다. 직업에 맞는 기부를 하고 있는 것. 물론 북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창한 '통일염원' 등의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
"인턴이라는 것은 의사가 되는 과정의 일부예요. 비록 의사라는 이름으로 환자들을 만나지만, 환자를 치료해주고 돈은 받는 게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면서 돈을 받는구나. 그렇게 번 돈은 내가 마음대로 쓰는 것보다는 세상에 다시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부를 하면서 달라진 점은 현재에 충실해졌다는 것. 멀리 있고, 보이지 않는 북한의 어려운 이웃에게는 도움을 주지만, 정작 인턴생활하면서 가까운 환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스스로를 보면서 반성을 하게 된다고. 또 인간관계 속에서 힘들어질 때마다 처음의 마음을 꺼내어 보면서 자신을 다스린단다.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편안해지면서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조금씩 연구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 2005년, 본과 4학년 때 비슷한 연구를 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생 정토회' 친구들이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불교대학 강의를 듣고, 마음을 나누며 안정을 얻었다. 특히 그해 여름에 다녀온 중국 선재수련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선재수련은 대학생정토회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봉사프로그램. 매년 여름, 겨울 방학기간 동안 인도, 필리핀, 중국, 몽골 등의 지역에서 봉사를 체험하고 돌아온다.
"졸업 무렵 불교대에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했어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외로운 이를 위로하는 것이 가장 큰 공덕이라는 가르침을 실천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었죠."
삶의 지향이 참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어깨가 구부정하다"고 했더니 "제 스타일이에요"한다. 아직 자유분방한 20대다.
그에겐 의사라는 직업이 참 어울려 보인다. 지금 그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일궈낸 '치유'의 나무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