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3일)에 선생님 세 분과 저를 포함하여 네 명의 제자들이 새해를 맞이하여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굳이 술자리를 핑계 삼지 않아도 이런저런 일들로 자주 만나고 있지만 밤이 늦도록 함께 하지는 못하기에 큰맘을 먹고 함께 모인 것이지요. 그렇게 모인 자리에 이번에 동시집을 낸 분이 계셨습니다.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펴낸 시집에는 학교 이야기, 농촌 이야기, 시골 버스 이야기,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 등이 정감 있게 담겨 있습니다.
지리산 너른 품에 아이처럼 안겨서 시를 쓴 시인은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 교사로 있는 남호섭 시인입니다. 굳이 그의 시를 두고 시냐, 동시냐 하고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어른이건 어린이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웃음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시는 그 구분의 경계를 허문다고 하지요.
1995년에 처음으로 <타임캡슐속의 필통>을 내고 12년 만에 낸 시집 <놀아요 선생님>은 놀면서 배우는 우리시대에 꼭 읽어야 할 교과서 같은 시들 60여 편이 실려 있습니다. 처음 낸 시집에 있는 좋은 시들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시인입니다.
12년 만에 낸 시집을 맥주잔을 앞에 두고 읽으며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 년에 열 편 씩만 써도 시집 두어권은 냈을 텐데, 십이 년에 육십편을 썼으니...”
시를 읽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면 나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저랬지’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게 하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의 간디학교 생활을 보여주는 간디학교 연작시에 ‘교문 없는 학교’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문 없는 학교에는 / 교문만 없는 게 아닌 걸 알고 / 동네 개들도 다 모여든다. / 교문 없는 하늘에서 새들이 자유롭게 날듯 / 학교에서 가장 따스한 자리에 / 개들이 네 다리 쭉 뻗고 잠들어 있다.'
- '교문 없는 학교' 부분
마치 어느 전쟁터의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도시의 학교들과 많이 비교가 되는 모습입니다. 군대의 출입문처럼 교문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과 사람 키 보다 큰 철문을 닫고 수업을 하는 학교들. 그런 학교에 어린 학생들을 가두어 두고 지식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시인이 있는 학교는 다릅니다. 시인의 전화기에는 제자의 이름이 ‘내 여자 친구’라고 적혀 있고, 날씨가 좋아 놀고, 비가 와서 놀고, 공부 많이 해서 놀고 하는 ‘놀아요’ 선생님입니다.
'우산을 같이 씁니다. / 동무 어깨가 / 내 어깨에 닿습니다. // 내 왼쪽 어깨와 / 동무 오른쪽 어깨가 / 따스하게 서로 만납니다. // 우리 바깥쪽 어깨는 / 사이좋게 비에 젖고 있습니다.'
- '사랑' 전문
참 멋집니다. 어느 누가 사랑을 저토록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마 우산도 함께 들었을 것입니다. 한쪽만 비를 적게 맞으려고 우산을 자기네 쪽으로 당기기도 할 것이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상대쪽으로 밀어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함께 걸어가며 함께 따스함을 느끼고 함께 젖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 이야기와 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농촌과 자연을 담은 남호섭 시인의 시들은 동시라고 하여 아이들만 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들입니다. 아니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읽으면 더 좋은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