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장악해 지구를 지배하라'
미국의 우주사령부가 1996년에 작성한 '비전 2020'에서는 "우주공간을 장악하는 것은 수세기 전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해군을 강화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과거 유럽이 바다를 장악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듯이 미국은 우주를 장악해 패권적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비전 2020'은 1998년 발간된 '장기계획서(Long Range Plan)'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우주 전략 지침으로 ▲정보전에서 우주의 중요성 인식 ▲무한한 우주산업의 성장 가능성 인식 ▲우주가 군사적, 경제적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 인식 ▲적의 우주 접근 예방 등을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작전 원칙으로는 ▲미군의 우주 지배력 강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감시 및 개입 ▲우주군과 타군간의 통합 증대 ▲민간에서 활용되는 우주기술 군사적 이용 강화 등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 이와 같은 우주 전략은 '구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우주 무기 개발이 '돈 먹는 하마'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레이건 행정부가 전략방위구상(SDI)을 앞세워 연간 250억 달러 안팎에 달했던 우주관련 예산이 클린턴 행정부 들어 150억 달러 안팎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우주 전략
그러나 미국의 우주 전략은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다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작년 11월까지 국방장관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도날드 럼스펠드는 국방장관 취임 직전인 2001년 1월에 우주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의 우주지배 전략을 총화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이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지 않으면 '제2의 진주만 사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우주공간에서 군사적 우월성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고, 대통령은 우주무기를 배치할 권한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7년 체결된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조약(Outer Space Treaty)에 미국이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해,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ABM 조약을 파기했듯이, 우주의 군사적 지배를 위해 우주조약에 제약을 받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우주의 군사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우주 지배를 향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국방부의 우주 관련 예산은 레이건 행정부 때의 지출 수준을 회복했고, 2008년에는 29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출범이후 우주전략을 비밀에 붙여왔던 부시 행정부는 2006년 10월 6일 국가우주정책(NSP)을 통해 그 대강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 정책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탄도미사일과 레이저 등을 이용한 위성파괴무기 개발 및 사용을 사실상 승인했고, 우주전 능력 확보 및 강화를 21세기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특히 "미국은 우주 사용 및 접근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새로운 법률에 반대할 것이다. 어떠한 군비통제 조약도 우주 연구개발, 실험 및 작전 등 미국의 권리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밝혀, 일방주의 태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2005년 10월 우주무기를 금지하는 조약 추진 표결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표결에 참가한 유엔 회원국 162개국 가운데 160개국은 찬성했고, 이스라엘은 기권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주 군비경쟁, 어떻게 막나?
물론 부시 행정부의 야심은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 정책 실패를 비롯한 문제투성이 대외정책으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0% 수준이다. 또한 미국 하원은 위성 파괴용 레이저 및 우주 MD 실험 예산 신청을 불허하기도 했다.
또한 우주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미국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전체 세계 위성 845개 가운데 53%에 해당하는 443개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의 보유량은 35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위성파괴무기 개발 및 배치가 본격화되면 미국 위성이 가장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군비통제론자의 지적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미국의 우주무기 개발은 상당한 탄력을 받고 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중국은 위성 파괴 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중국의 이번 실험은 미국 내 우주무기 개발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분위기이다.
미국이 우주 정복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가 그 뒤를 따를 조짐을 보임에 따라, 이제 인류사회는 '우주 군비경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중대한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현재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는 조약은 앞서 언급한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조약'(OST)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 조약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우주 공간에 대량살상무기(WMD) 배치를 금지하고, 달을 비롯한 천체(天體)를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위성파괴무기 등 다른 종류의 우주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은 부재한 현실이다. 새로운 국제조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일례로 제네바 유엔 군축회의에서는 수년동안 '우주 군비경쟁 금지 협약'(Prevention of an Arms Race in Outer Space)을 논의해왔다. 중국과 러시아는 적극 찬성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우주에서의 '행동의 자유'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국제조약 체결 논의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우주 군비경쟁 움직임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이 때에, 한국 역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한반도는 그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정학적 운명을 타고났다.
또한 이러한 인류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성장할 수 있고,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높일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