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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책의 표지 ⓒ 도서출판 정음
먼저 일찍 고인이 된 그의 아내 명복을 빈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집을 소개 하고 있지만 나는 여태 이토록 애절한 아내에 대한 사랑 노래를 들은 적이 없다. 책의 끝에 저자가 쓴 글에도 잘 드러나 있다.

"내 영혼의 반쪽인 아내의 자리와 함께 내가 들어갈 자리 하나 마련 해 둔 것이다. 이 크리스털 비석은 기존 무겁고 탁한 재질의 석재를 피하고 반짝이며 투명한 크리스털로 아내의 맑은 정신을 표현했으며 아래로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 담긴 사진을 걸어 놓았다. 그 옆 빈 공간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마지막 사진이 들어가면 우리 부부도 연리지처럼 하나가 되리라."

아내의 납골당 유골보관함은 저자의 마지막 작품이자 아내의 영혼이 쉬는 집이다. 저자는 아내를 위해 지었던 집 모양 그대로 유골보관함을 만들었다. 아내의 영혼이 저 세상에서도 익숙한 공간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책을 보면 저자에게 집이란 것은 오직 아내가 편히 머무를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위암으로 5년을 고생하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의 흔적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책은 집에 대한 놀라운 발상과 솜씨를 만나게 해 준다.

책을 펼치면 먼저 왜건이 있는 창가로 안내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과 푸른 들을 지나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다. 홈바가 곁에 붙어 있고 식탁 테이블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골동품이 '시간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 식구들의 사진도 시간의 벽에 붙어있다.

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준 책

납골당에 저자가 직접 디자인 한 유골함
납골당에 저자가 직접 디자인 한 유골함 ⓒ 도서출판 정음
집 내부에서부터 음악과 영화 그리고 가구 하나하나에 서린 추억들이 곁들인 친절한 안내를 받다보면 어느덧 독자들은 집 모양이 궁금해진다. 이때쯤 저자는 집 설계도를 펼쳐 보여준다. 책의 말미에 집 설계도와 공사 현장이 소개되면서 비로소 아름다운 집의 태생을 알게 된다.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인 저자 변상태는 집 설계는 물론 집안 내부 곳곳을 직접 디자인 했다. 오디오 전문가답게 각종 오디오를 갖추고 거기에 해당하는 음악을 이 책 곳곳에서 들려주고 있다. 아내가 침실에 누워서도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볼 수 있게 천장에 창을 뚫었고 아픈 어머니를 살펴 볼 수 있게 아들의 다락방에서 아내의 침실로 향하는 창도 냈다.

집을 두 채나 짓고 최근에는 집 한 채를 통째로 고치고 있는 나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인 <이런 집에 살고 싶다>를 보고 의당 내가 신조로 삼고 있는 '소박하며 생태적인 집'을 상상했었다. 정작 책을 펼치자 '아무나 이런 집에 살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오디오 하나만 해도 시골 집 한 채 값이 되지 않을까 싶고 집 구석구석에는 가구라기보다는 눈이 휘둥그레 질 예술품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술잔을 넣어두는 찬장도 책을 꽂는 책꽂이도 다 작품들이었다. 이런 집에 살 꿈도 꾸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집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의 상징을 정교하게 디자인 한 음양기법
남자와 여자의 상징을 정교하게 디자인 한 음양기법 ⓒ 도서출판 정음
자기의 솜씨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정성으로 지으면 그게 좋은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니, 능력과 솜씨라기보다는 정성과 발상의 놀라움이 이 집을 구석구석 구경하면서 든 생각이다. 산업디자인전에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등의 수상경력이 화려한 전문 디자이너가 지은 집이라서가 아니라 저자의 발상의 자유로움과 삶의 미학이 엿보이는 집이라서 좋다.

공간개념에 음율을 조화시킨 집

'시간의 벽'이다.
'시간의 벽'이다. ⓒ 도서출판 정음
집을 꾸미고 있는 골동품들이나 장식들도 골동품 점에서 한꺼번에 사 온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틈틈이 구해서 간직해 온 것들이고 일상의 사소한 물품들도 예술품으로 변모시키는 착상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이 집 이름이 세이재(洗耳齋)이다. 야신타(jacintha)가 부른 문리버(Moon River)를 듣고 동료교수가 즉석에서 지어 준 이름이라고 한다. 세상의 소음을 음악으로 씻어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뜻이다.

저자인 변상태 교수는 이 집을 지을 때 몇 가지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외형의 단순화와 창문의 액자화, 열린공간, 빛의 유입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공간개념에 음율을 조화시킨 집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을 보는 동안 저자가 아내와 즐겨듣던 노래와 연주들이 곳곳에서 다양한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곡명을 하나씩 적어 봤더니 28곡이었다. 영화도 4편이 소개되어 있고 책은 7권이 나온다. 모두 아내와의 추억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장식과 가구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솜씨와 정성에 견주어 걸맞은 여러 착상을 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출판 정음. 정가 10,000원. 저자 변상태)


이런 집에 살고 싶다 - 사랑이 있는 풍경

변상태 지음, 정음(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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