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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부터 꾸려진 대책위원회 임시건물.
ⓒ 이지영
"대한민국 대포 도시"

'무건리 훈련장 백지화 대책위원회(이하 무건리 대책위)'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파주시를 이렇게 부른다. 파주시에 215만 평의 스토리 사격장, 175만 평의 대규모 전차 훈련장인 다그마노스 훈련장 등 각종 군사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대책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적성면 무건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 마을에는 550만 평 규모의 무건리 훈련장이 있다.

적성면 무건리와 법원읍 직천리 일대에 무건리 훈련장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80년. 그리고 1997년부터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연간 13주씩 주한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공용 훈련장이 됐다. 지금 무건리 훈련장은 한국군과 미군이 공동으로 전술훈련이나 사격, 대포 등 중화기 사격을 하는 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80년대 초반 무건리와 직천리에 살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제대로 된 이주 대책 없이 훈련장 건설을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 주민들은 바로 옆 마을인 오현리에 새로 보금자리를 틀었다.

장갑차는 다녀도 사람 다닐 길은 없는 곳

▲ 550만 평에 이르는 무건리 훈련장 모습. 이 곳은 1100만 평의 대규모 종합훈련장으로 확장될 계획이다.
ⓒ 이지영
문제는 1996년 국방부가 기존 550만평 무건리 훈련장을 2배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무건리 훈련장을 파주시 법원읍 직천1리, 오현1, 2리, 양주시 비암리 일대의 길이 19km, 폭 5km의 1100만 평에 걸친 다목적 훈련장으로 만든다는 게 핵심내용이다. 훈련장 때문에 이주한 오현리 주민들이 또 다시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 결국 오현리의 150여 가구 주민들은 대책위를 결성했다.

"우리의 요구는 땅값 보상이 아니다. 불필요한 훈련장 확장을 그만두고 마을 주민이 이곳에 계속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

무건리 대책위 주병준 위원장의 말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이미 550만 평의 훈련장이 있는데 그것을 2배로 확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훈련장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1군단 사령부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해 6월 훈련장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서 군 관계자는 훈련장 확장 이유로 ▲ 경기 북부지역 개발에 따른 군용지 축소 ▲ 포 사거리(射距離) 확장 등 장비 증강에 따른 훈련장 확보 필요 ▲ 훈련장 '확장'이 아닌 무건리, 노야산, 비암 지구 훈련장의 중간에 있는 지역을 1979년부터의 계획대로 확보하는 과정이라는 점 ▲ 연합토지관리규정(LPP)에 따른 미군과의 공용 훈련장 확장 필요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같은 훈련장 확장과 주민 이주를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훈련장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사과는커녕 훈련장 확장에 대해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는 것.

주 위원장은 "마을에 직접 찾아와 대책을 내놓고 사과해도 해결을 장담하지 못하는데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주민 설명회, 공청회를 반복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주민들은 무건리 훈련장이 들어서면서 오랫동안 생존권 위협을 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0년 부지 매입이 시작되고 1986년까지 총 550만 평이 훈련장 부지로 들어갈 때까지 주민들은 항의 한 번 할 수 없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강제로 토지 매입을 추진했기 때문.

1996년 훈련장 확장 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민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오현리 등 일대가 군사작전지역으로 설정되면서 각종 인허가 규제를 받게 된 것. 영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축사를 개축하거나 단순히 집 앞 도로를 포장하려고 해도 국방부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등 사적소유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주 위원장은 "아버지 세대에는 다 내주고 당하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세월이 변한 만큼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대화 통로가 마련돼지 않아 결국 극에 다다랐을 때는 대추리와 마찬가지로 폭력으로 터져 나오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주민의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

"안전 때문에 이주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 위원장은 "몇 십 년간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안전 운운하며 떠나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보다 주민공동체와 훈련장이 공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취해 달라"고 주장했다. 훈련장 때문에 주민 안전이 우려된다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하면 된다는 것.

특히 무건리 훈련장 일대에는 수시로 이동하는 장갑차 등을 피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인도조차도 전무한 상태. 다만 2002년 미군에 의해 미선, 효순 여중생 사망사건이 일어난 지점에만 인도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주민들은 앞으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면서 군전차 차량 이동을 위한 우회도로와 주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인도를 개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몸뚱이만 불리는 군사시설, 긴장만 고조된다

▲ 축산업에 종사한는 주민들은 지나가는 탱크의 소음과 총소리로 피해를 보고 있으며 축사를 개축할 때도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요구했다.
ⓒ 이지영
문제는 또 있다.

무건리 훈련장 토지 매입은 '협의매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다른 군사 부지처럼 정부가 직접 토지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공사와 주민이 개인 대 개인으로 계약하고 있어 훗날 훈련장 부지가 해제된다고 해도 다시 원소유자에게 돌아갈 확률이 낮아진다. 이와 달리 국가와 직접 토지를 매입하면 다시 원소유자에게 반환하도록 되어 있다.

미선, 효순 사망 사건과 스토리 사격장 문제를 취재했던 사진운동가 이용남씨는 "차라리 훗날 원 소유자가 돌려받을 수 있도록 평택처럼 징발을 하는 것이 낫다. 토지를 매입하는 것은 사적으로 행하면서 협상의 실체는 정작 국방부인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불편 뿐 아니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의 정동석 대외협력국장은 "1100만 평의 무건리 종합훈련장이 조성되면 인제, 통천의 3577만 평의 과학화 훈련장(KCTC)에 이어 연대급 이상의 군부대가 훈련을 할 수 있는 국내 두 번째 규모의 종합훈련장이 된다"면서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무기체계의 변화로 훈련장 규모가 확대돼야 한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더 이상 훈련장을 확장하지 않더라도 군의 훈련계획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운동가 이용남씨는 "무건리 종합훈련장의 면적은 스토리사격장의 5배가 된다. 인근의 다그마노스, 스토리 사격장과 연계된 대규모 훈련단지를 만들면 군사분계선 서부지역은 언제든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도록 자리잡아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방부는 2009년까지 주민 이주를 마치고 2012년까지 훈련장 확장을 완료할 예정으로 올해 무건리 훈련장에 275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고향을..."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소장

▲ 이용남 소장이 만든 '썰매 훈련장'. 얼음이 두껍게 얼면 다른 마을 아이들도 놀러 올 정도로 인기다.
ⓒ이지영

숲 속의 노란 집. 오현리의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노란색 집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을 현장 사진으로 바깥에 알린 이용남 소장의 거주지다. 파주가 고향인 그는 이곳을 '아픔이 많은 동네'라고 했다. 이용남씨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훈련장 확장을 막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건리 종합훈련장은 면적만 해도 스토리 사격장의 5배인 1100만 평으로 계획됐다. 이 소장은 "지금도 장갑차 사고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보상절차나 보험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대책 없이 훈련장을 확장하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또 나올 것인가"라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얼마 전 이용남 소장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겨울철에 마땅히 놀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논바닥에 썰매장을 만들었다. 썰매장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썰매훈련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용남 소장은 "이곳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파괴적인 환경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관사를 올려다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왜 마을을 떠나야 하냐고 부모에게 물었을 때 과연 희망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사진운동가'라는 낯선 개념을 몸소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그는 오는 6월 13일 2002년 이 곳에서 사망한 여중생의 5주기 추모 사진전을 계획하고 있다. 6월 12일부터 한 달간 열리는 사진전에는 총 613점의 사진이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그는 현장사진작업에 대해 "분단국가에서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사진작가보다는 사진 운동가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버거운 숙명이 삶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훈련장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사진집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이 소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마음에서 정리하고 또 다른 싸움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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