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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럭 오바마 상원 의원.
배럭 오바마 상원 의원. ⓒ 오바마 의원 홈페이지
미 정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배럭 오바마 상원 의원에 대한 언론들의 검증이 본격화되는 것일까?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는 25일 흑인인 오바마가 과연 같은 피부색을 가진 유권자들의 표를 빨아들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BRI@지난해 7월 현재 미 전체 인구는 2억9844만명 인데 이 가운데 백인은 81.7%, 흑인은 12.9%, 아시아아계가 4.2% 정도를 차지한다. 흑인 유권자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흑인은 민주당 지지성향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흑인표 흡수력이 상당히 중요하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지난해 12월 7~11일, 올 1월 16~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들의 민주당 후보 선호도는 힐러리 60%, 오바마 20%였다. 백인들의 후보 선호도는 힐러리 35%, 오바마 17%였다. 흑인들이 3배나 힐러리를 좋아한다. 또 흑인 민주당원들의 80%는 힐러리를 긍정적으로 봤으나 오바마의 경우에는 54%에 불과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분석했다. 우선 오바마가 피부는 검은색인데 그의 주변 인물들은 거의 백인들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오바마의 지지자였던 로렌조 마틴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참모들은 대부분 백인들"이라며 "대체 그는 누구를 대표하는가? 이게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시카고에서 오바마가 이라크 전쟁에 관해 연설했을 때 청중들은 그에게 많은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청중 가운데 흑인은 단 한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유일한 흑인이었던 목사 허버트 마틴은 "오바마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것인가?"라면서 "그는 계속 아프리칸어메리칸(흑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인종이 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의문은 대선 경쟁이 더 본격화될 수록 더 커질 것이다.

주변 참모들은 모두 백인

정치공학적으로 본다면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는 자신이 흑인 집단과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부각시켜야 한다. 특정 집단에 국한되어서는 득표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흑인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거나 분노하게 만들 것이다.

오바마는 흑인이지만 주변 환경적 인종적으로 다양하다. 그는 지난 1961년 백인 어머니와 아프리카 케냐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아시아계가 많은 하와이다. 그가 두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케냐로 돌아가버렸다. 이후 그는 백인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또 그의 어머니가 인도네시아계 남자와 재혼하면서 몇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살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 <희망의 대담함>에서 "나의 충성도를 인종적 기준으로 제한한 적도 없고, 나의 가치를 부족적 기준으로 판단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흑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것에 제한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중하층이 대부분인 흑인과는 다른 엘리트적 속성이다.

오바마는 지난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진출을 위한 민주당내 예비선거에서 실패했다. 당시 오바마는 급진적 흑인 결사였던 '블랙팬더' 출신인 보비 러시와 경쟁에서 2대 1로 졌다. 러시는 오바마를 "흑인들의 일상과는 멀리 떨어진 하버드 대학 출신의 엘리트"라고 공격했다.

당시 상당수 유권자들은 오바마가 인종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고급 주택가인 하이드 파크에서 살고, 시카고 대학에서 법률을 가르치는 등 대부분의 흑인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으로 봤다. 지난 2005년 오바마가 상원 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일부 흑인들은 "나는 외국인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바마도 <시카고튜리뷴>과의 인터뷰에서 "흑인들 사이에는 나에 대해 '그래 저자는 하이드 파크에 살아', '하바드 대학에 갔어', '하와이에서 태어났어, 진정한 흑인이 아니냐'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1983년 뉴욕 맨해튼의 재정 컨설턴트를 그만두고 시카고에 연 1만달러의 보수를 받으며 종교단체에서 일했다. 중고차를 몰고 흑인들과 어울렸고 흑인 교회에서 흑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아직 물음표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의 흑인표 결집력이 힐러리에게로

지난 2001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이 선서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당시 앨 고어 부통령.
지난 2001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이 선서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당시 앨 고어 부통령. ⓒ 힐러리 의원 홈페이지
이에 비해 힐러리가 흑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미 정치인들 중 흑인표 흡수력에는 따를 자가 없다는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 덕이 크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은 "아칸소주의 빈민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햄버거와 같은 정크 푸드를 좋아하고 색스폰을 연주하는" 클린턴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렀었다. 클린턴은 흑인 인권 지도자인 제시 잭슨 목사나 역시 흑인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보다도 더 흑인들에게 인기가 있다.

클린턴은 1946년 가난한 노점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3개월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재혼했으나 의붓아버지는 노름꾼에 알콜 중독자였다. 아버지는 클린턴과 그의 의붓동생을 두둘겨패기 일쑤였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던 클린턴은 흑인들의 애환을 잘 알았다.

지난 1965년 암살된 흑인 급진 지도자 말콤 엑스의 30주기를 맞아 그가 다시 부각되었을 때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말콤엑스의 'X'가 새겨진 검은색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이런 환경과 행동, 정책 들이 흑인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확실하게 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힐러리는 고위급 흑인 인사들과 꾸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남편인 빌 클린턴이 여전히 흑인들에게 압도적인 인기가 있다"고 전했다.

흑인표와는 다른 성격의 문제고 미국 대통령 선거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도 힐러리의 인기는 강하다. 25일 독일 N-TV의 여론조사 결과 독일인들의 72%는 힐러리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

한편 한 때 주춤했던 힐러리는 다시 회복되는 모양새다. 미 시사주간 <타임>이 이번 주 성인 1064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주당 대선주자들 지지도의 경우 힐러리 40%, 오마바 21%, 존 에드워즈 전 부통령 후보가 11%였다. 특히 존 매케인 의원과 힐러리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최종 후보로 나설 경우 누구를 찍겠느냐는 질문에 47% 대 47%의 지지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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