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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참석한 친구들의 모습. 뒷편 좌로부터 병재, 경애, 미숙, 영구, 정희, 외옥
ⓒ 정학윤
어제(25일)는 초등학교 다닐 적에 6학년 같은 반 친구들과 모임을 했습니다. 대구 모 대학의 교수로 있는 친구가 미국에 교환 교수로 가게 되어서 환송회 겸 식사나 한 끼 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소집하는 모임에는 얼굴이 바뀌면서 대충 7∼10여 명 정도가 참여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벌써 30년이 더 지났건만, 우리들의 모임은 늘 초등학교 시절의 게걸스러운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소란함으로 가득합니다.

그 시절에 있었던 기억들이 많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어서,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수준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늘 새롭고 늘 재미나게 들립니다. 모임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서 살아가니깐 특별한 전제가 없는 이런 모임이 주는 편안함에 쉽게 취하는 것이겠지요.

날치기를 당한 인도의 전경. 범인은 인도 쪽 1번 지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2번으로 걸어가던 친구의 가방을 날치기해서 도로로 달아남
ⓒ 정학윤
▲ 날치기 범죄가 일어난 곳에서 약 1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대구 수성경찰서 전경
ⓒ 정학윤
저는 약간 늦게 모임에 도착했습니다. 4명이 저보다 먼저 와 있었는데, 사건이 하나 발생했더군요.

여자 친구 한 명이 지하철을 타고 도착해서 모임장소인 식당에 들어오기 직전 오토바이를 탄 날치기꾼에게 손가방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친구가 오후 7시경 지하철 통로를 빠져나와서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범인이 대담하게도 인도 안쪽 편에 업무가 종료되어 불이 켜 있지 않은 빌딩 앞의 약간 컴컴한 곳에서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두고 대기하고 있다가 손가방을 날치기한 다음 도로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보통 오토바이 날치기 수법은 범인이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도로에 가까운 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신종 날치기수법이라고 봐도 될 듯했습니다(이 범행수법에 대하여 많이 알려주세요). 더구나 날치기를 당한 장소는 대구 수성경찰서에서 불과 150여 미터 떨어진 지점이었으니 범인은 실로 간이 큰 사람입니다.

현금 피해액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112에 신고를 해서 형사들이 출동하고, 날치기를 당한 친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신용카드 사용정지 신청을 하고, 같이 있던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피해를 본 친구가 워낙 털털하고 넉살 좋은 사람이어서 이내 분위기는 진정이 되었습니다.

▲ 친구들 모습
ⓒ 정학윤
다 모이고 보니 7명이 왔더군요. 식사를 끝내고, 술이 몇 잔 오가는 가운데 이내 사는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공대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어!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년당 10반 정도에서 두서너 반이 문과고 나머지는 이과 반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의 비율이 거의 같거나 역전되어 있거던. 아무도 공대를 가려고 하지 않아. 이과교육이 이토록 무너지면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둘째가 말이야.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용돈을 받아서는 여자친구 선물 사주기에 바쁘더라구. 그 시절 우리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잖아? 얼마 전부터는 녀석이 조용한데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나봐."

"야 이 녀석들아! 모임이 있거나 소식을 전할 일이 있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답 좀 해라. 답장을 하는 녀석들이 없어도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없잖어. 우리 첫째에게서 문자를 편리하게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니 요즘 참 편하다. 휴대폰 기능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는 거 아니가."

"참 세월이 빠르다. 이제부터는 여기저기 친구의 아이들 결혼식장에 다녀야 할 나이가 되었네. 그나저나 반창회 참석만 하지 말고 전체 동창회 모임에도 얼굴 좀 내밀어라."

"경제니 뭐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번 대통령은 그야말로 원칙을 지키는 대통령이 뽑혔으면 좋겠다. 세상이 아무리 밝아졌다 해도 합법을 가장하여 구조적으로 편법이 용인되는 구석이 너무 많아."

"나는 얼마 전에 어떤 봉사단체 카페에 가입했어. 처음 모임에 나가니깐 너무 머쓱하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치열한 주장이나 행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게 아니야. 따뜻한 가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평범하더라.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공연을 한다거나 여러 가지 봉사를 하는데 정말 대단해. 그들이 가진 따뜻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이고 버텨주는 힘이야."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에 간직했던 또 듣는 첫사랑이야기, 또한 날밤을 새워도 못다 할 그 시절이야기가 그득했었습니다.

입을 가리지 않고 목젖이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을 수 있고, "입에 고춧가루 좀 떼라"는 말도 쉬이 할 수 있고, 남녀 서로 이놈 저놈 하거나 툭툭 치거나 때론 팔짱을 쓰윽 끼워봐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그런 나이가 된 우리들입니다.

▲ 대구 동신초등학교 2회. 34년 전에 12살(?)이었던 친구들 1
ⓒ 정학윤
대구 동신초등학교 2회 12살(?) 친구들 2
ⓒ 정학윤
대구 동신초등학교 2회 12살(?) 친구들 3
ⓒ 정학윤
이렇게 보낸 우리들의 시간을 굳이 작명하자면 '중년들의 저녁식사' 정도로 이름을 지어야겠지만, 모두가 30여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서 서로 12살 코흘리개로 대하는 자리이니 '12살 아이들의 저녁식사'로 불러도 되겠지요?

(미국 가는 친구가 잘 다녀오라고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화장품'이었으니 그 증거는 더욱 분명합니다. 출국선물이라는 것도 조금 생소하지만, 그 소박한 마음은 12살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유명인이 된 사람이 어릴 적 친구를 찾는 것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모두가 항상 건강하고 잘 늙어가는 모습으로 오랫동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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